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인 Oct 16. 2023

그들, 콘베르시의 자리

_르토로네 수도원

그들, 콘베르시의 자리

수도원은 일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일해서 얻은 빵을 먹고 기도로 영혼을 살찌우는 곳이다. 서유럽 수도원의 모태인 베네딕토회의 경우에도 처음에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했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가 그들의 모토였다. 11세기가 되자 연구하고 공부하는 성직수도 사제가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이 모자랐다.


시토수도회는 처음부터 황무지를 개간하며 터를 일구고 자리를 잡았다. 노동으로 얻은 농산물은 수도원 재정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성직 수도자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 건 역부족이었다. 수도원의 손과 발이 되어줄 인력이 필요해졌다. 처음으로 성직 수도자와 평수사가 나뉘었다. 수도원에 입회할 자격이 안 됐던 사람들에게 문이 열렸다. 글을 모르는 지위가 낮은 이들도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됐다. 귀족과 부자들은 자선을 베풂으로써 천국에 보화를 쌓는다는 암묵적인 의미로 토지를 기부하였다. 하지만 가난하고 못 배운 농민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이 없었다. 이제 시토회가 길을 열어 그들에게 일과 음식, 머리를 가릴 지붕이 허락됐다. 당시에는 일용할 양식과 마음 편히 누워 잘 수 있는 숙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도원이 그들에게 일상의 안식처가 되었다.


평수사, 콘베르시에게는 보다 완화된 조건이 요구됐다. 그들은 밭을 경작하고 올리브를 짜 기름을 만들고 포도주를 빚고 빵을 구웠다. 대장장이와 직조공, 석공, 무두질공도 필요했다. 자급자족하는 수도원 생활에는 일상의 모든 것을 해낼 손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들은 일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며 찬미했다. 수도원에서 그들의 자리는 따로 있었다. 성직 수도자와는 다른 세계였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이후 그런 차이들은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평수사는 있지만 그건 선택의 문제다. 지금이야 문해에 어려움을 겪는 이가 별로 없을뿐더러 중세처럼 자격이 안 되거나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수도원 중정을 빠져나와 들어선 곳은 콘베르시의 영역이었다. 부근에 올리브기름 저장고와 와인 탱크 등이 있으니 아마도 올리브와 포도를 옮기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는 효용을 잃은 공간에 햇빛이 가득하고, 가을 햇살의 그림자도 가득했다. 아치들과 돌담과 둥근 원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그 자체로 사유의 길목이었다. 지금은 말끔하게 햇빛과 그림자만 가득한 곳으로 정신없는 노동의 순간이 들려왔다. 그들의 땀 냄새와 수고가 하늘까지 가닿는 찬양이 되곤 했을 그 순간들이 밀려왔다.



수도승들은 하느님의 말씀(Lectio Divina)을 읽고 묵상했지만 대부분의 평수사들은 문맹이었다. 수도승들이 성무일도를 바치고 시편을 노래하고 필사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노래로 자신의 하느님을 만나고 찬미했다. 수도원 안에서도 기도와 전례를 위한 곳을 거룩함의 공간이라고 하면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노동을 위한 속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 차마 신에게 봉헌하기에도 부족하다고 물러서던 이들의 자리, 시토회에는 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콘베르시가 ‘돌아선 사람들’,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향을 하느님께 되돌린 사람들, 즉 회심한 사람들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조금 눈물겹다. 각자 처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저마다 말 못할 사연도 있었을 것이다. 수도원 내부에서도 시행착오를 겪곤 했을 것이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 7,28)

그 엄혹한 봉건사회에서, 신분상승을 꿈꿀 수도 없는 세상에서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원했던 사람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문제적 인간들도 있었을 것이고, 진짜 참회하고 보속하기 위해 수도원의 자발적인 종이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했을까. 신께 이르는 길에서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누구는 삶의 본질을 깨닫고 유려한 언어로 이를 체계화하며 신께 이르고자 했다. 누구는 이 생의 모든 걸 다 벗어던지고 가장 가난한 상태로 처절하게 신께 자신을 봉헌했다. 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나는 그 사랑을 모른다. 내 가슴이 그 사랑을 모른다. 언젠가 그 사랑을 안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알아갔던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 신의 은총이 그를 사랑으로 물들여 고귀한 존재임을 알게 하셨음을. 신은 스스로를 낮추는 이를 높이셔서 고귀한 자존감을 갖게 하셨음을. 무엇보다 신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음을 알게 하셔서 그 죽음으로 영원히 풍요로워졌다, 그 가난한 자들은!      

질펀한 취기로 하루를 보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날에는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내가 살아 있는,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문득 은총처럼 영혼에 쏟아지는 물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학식의 문제도 아니고 재물과 권력이 조건도 아닌 우리 모두에게 가능한 본질적인 지혜의 죽비니까. 누구에게든 그런 물음은 찾아오니까. 그래서 어떤 날, 그는 다른 날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했을 것이다. 질문을 쫓아가는 길, 그 길이 여기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공간은 습관을 만든다. 어떤 공간들, 비가시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는, 찰나가 아니라 영겁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는 질문이 내재돼 있다. 둔감하게 살다가도 문득, 공간에 배어있는 질문이 뒤통수를 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영원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수도생활에서 시간을 정해 함께하는 기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물들이는 일이다. 부족한 상태인 너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신을 찬미하고 찬양할 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메아리처럼 서로에게 찾아들어 잠시라도, 잠시라도,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된다. 그런 시간들은 쉽게도 끝나버린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습관이 배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랑도 습관이 되는 것이다. 다정한 말과 미소, 격려와 공감은 몸과 마음에 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길처럼 흐른다.

수도원이 이상적인 사랑의 공동체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꼭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어떤 지향을 가진 이들의 공간은 공간 자체에도 그 지향이 배는 것 같다.  




점심때가 됐다. 배가 고팠다. 다행히 수도원 주차장 작은 매점에서 샌드위치와 로제와인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옛날엔 평수사들이 빚어준 와인을 마셨을 테지. 마치 그들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엷은 빛깔 와인을 한 모금 아득하게 마신다. 그들의 머리카락에 닿았던 햇살이 잔을 물들인다. 햇빛이 예측하기 어려운 빛을 만들어내고 멋진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제는 사라진 옛 사랑의 그림자. 벌써 수백 년 전 끊어진 열절한 사랑의 자취가 불어오는 달콤한 바람결에 스러진다.      


나는 그들이, 지상에서 수고한 그들이, 산들바람 속에 하느님이 거하실 때 덩달아 같이 동산을 거닐며 영원한 평화에 잠겨 복락을 누리리라 간절히 기원하고, 고픈 배를 채웠다. 수도원에서 지상의 양식을 얻었다. 무척 거칠고 소박했다.    



   

르토로네 수도원은 여전히 ‘복원’ 중이라고 한다. 복원. 성당과 회랑, 지하 공간과 중정. 그리고 덧붙여야 할 것은 없을까? 르토로네 수도원의 본질 역시 거기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사람들의 헌신, 이 세상 삶에 대한 자유, 진리와 지혜. 그들의 지향과 갈망. 그것은 어떻게 복원되어야 할까.  


이전 18화 폴롱의 그림처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