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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16. 2023

그곳엔 문을 열던 당시의 본질이 있을 것입니다

_르토로네 수도원



1160년경부터 지어진 르토로네 수도원은 실바칸, 세낭크 수도원과 함께 프로방스의 시토회 세 자매로 불리는 곳이다. 라벤더로 유명한 수도원 세낭크는 못 가지만 르토로네 수도원은 갈 수 있었다. 




레보드프로방스의 후손이 땅을 기증해 1176년경부터 지어진 르토로네 수도원은 특히 검박하다. 태생이 그랬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강조하고 강조했던 것이 이 수도원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의 유럽 성당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성당 안에도 성화나 성상은 물론 열주도 기둥머리장식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모든 부재 가운데 거하는 신. 오직 그만 바라고 그만 바라보고 그만을 향해 매일매일 걷고 먹고 기도하고 잠들던 일상이 있었다. 


무엇이든 차면 넘치는 게 자연이다. 수도원의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된 일이었다. 처음엔 순수한 이상으로 시작된 일도 시간이 지나면 타성에 젖고 느슨해져 또다시 고쳐야 할 일들이 생긴다. 클뤼니수도원의 경우도 그랬다.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놀라운 개혁을 했지만 또다시 첫 마음의 갱신이 필요했다. 처음처럼, 그 첫 기억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시토회를 열었다.  클뤼니수도원이든 시토회든 모두 베네딕토회 뿌리에서 자라난 수도원이다. 


르토로네 수도원이 조금 더 유명해진 건 나중에 갈 라투레트 수도원 때문이다. 이 수도원 설계를 르코르뷔지에에게 맡긴 알랭 쿠튀리에 신부가 설계를 위해 먼저 르토로네 수도원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도미니코회 수사였던 쿠튀리에 신부는 왜 많고 많은 수도원 중에서 르토로네 수도원을 언급했을까.      

아무튼 그 덕분에 라투레트 수도원을 가기 전에 프로방스의 이 수도원을 찾게 되었다. 무엇도 내 의지, 내 뜻대로 계획한 게 아니었다. 프랑스에 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더욱이 자동차여행에 느지막이 ‘끼게’ 될지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 수도사제, 쿠튀리에는 화가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수도승이었으니 종교예술, 성미술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그의 아르사크레(Art Sacré) 운동의 결과는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그곳엔 수도원이 문을 연 당시의 본질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수도원의 본질, 그리고 시토회의 본질.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는 이 수도원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뭔가를 발견했다. ‘본질’을 만났을까. 그래서 르토로네 수도원이 더 유명해졌다. 



‘침묵’을 말한다. 수도원의 침묵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동경 같은 걸 갖고 있다.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갈망의 일부 같기도 하다. 누구나 침묵할 수 있음에도, 선뜻 접어들지 못하는 그 문 앞을 꾹 다문 입술로, 닫힌 가슴으로 지나다닌다. 침묵의 세계는 모두에게 허락된 곳이지만 그 문을 들어서는 이들은 꽤 드물고, 경험치 역시 저마다 다르다. 
이건 정말 공평하다. 자신이 애를 쓰는 만큼 침묵은 되돌려준다. 생을 변화시킨다. 이건 명확한 사실인 것 같다. 그 침묵으로 인해 생이 완벽한 변화를 한 많은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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