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다. 사람들이 설왕설래하자 예수가 못을 박았다.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준비하려고 한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예수가 말한 것처럼 이제 그여자, 마리아 막달레나는 어디에서나 기억한다. 잘 알지 못하지만 복된 사람이었다.
성당에 들어서자 수백 년 전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시간의 더께가 짙었다.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간 지하 묘지에 사람들의 손길 때문에 윤이 날 만큼 닳은 대리석 석관들이 놓였다. 그리고 중앙에 마들렌의 유해라고 알려진 두개골이 격자무늬 창살 너머에 있었다. 이 죽음의 자리, ‘영원한 안식의 자리’에는 어떤 보고서가 제공되고 있다. 이 두개골의 주인이 대략 50대의 지중해 혈통 여성으로 분석됐다는 결과다. 그래서 저 까만 두개골이 갈릴래아 호숫가 마을 막달라에서 살았던 한 여자, 그였다는 것인가. 누구도 선뜻 믿기 어려운 일이어서 이런 자료도 제시되는 것 같다.
1279년 12월 9일 루이 성왕의 조카 앙주의 샤를 2세가 마들렌의 무덤을 발견했다. 석관을 열자 ‘기이하고 달콤한 냄새’가 퍼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들렌이 예수의 머리와 발에 부었던 향유를 상기했다. 석관에서는 710년 작성한 파피루스 문서도 나왔다. 기록을 보면 사라센이 프로방스에 쳐들어오자 성녀의 유해가 훼손되는 걸 피하기 위해 카시아누스 수도승들이 비밀리에 유해를 감췄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5세기가 지나 그의 무덤이 드러난 것이다.
그 여자,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전히 베일 속에 있다. 사실 성경에 기록돼 전해지는 공식적인 내용 말고는 제대로 알 도리가 없다. 그는 오랫동안 회개한 죄인의 전형이었다. 그가 창녀였다거나 간음하다 고발당한 여자가 된 건 그레고리오 교황 때문이었다. 교황은 예수의 머리 혹은 발에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자와 마리아 막달레나,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동일시했다. 그 때문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참회한 죄인’이 되었다.
중세 화가들은 너나없이 가장 적나라하게 그녀를 그렸다. 그 회개의 장면은 늘 바니타스였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Vanitas vanitatum, dixit Ecclesiastes,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코헬 1,2) 세상의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간다. 소멸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마라, 영원한 것을 기억하라!
허무를 상기시키는 건 좋은데 그 모델이 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주홍글씨가 찍혀 있었다. 그래서 이천 년이 지난 후에도 레이디 가가는 마리아의 목소리로 “난 그들의 돌에 맞을 준비가 돼 있어”라고 ‘블러드메리’를 노래한다.
반종교개혁 시기에도 '회개의 전형'으로 전해지던 마들렌의 정체성이 1969년에야 교황 바오로 6세가 막달라 마리아와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분리하면서 조금 정리가 됐다. 그럼에도 ‘간음한 여자’라거나 그런 뉘앙스가 여전히 마들렌에게 있다. 한편에서는 그가 예수의 아내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간의 호기심과 시간의 바람이 조금씩 그녀의 베일을 흔들었는데, 가장 큰 충격은《다빈치코드》나 《성체와 성혈》 같은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마들렌이 예수와 결혼했고 그들의 딸이 바로 '성배'라는 결론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무수히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마들렌은 어떤 모델이 되어준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흠도 티도 찾지 못할 만큼 그녀는 사랑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여성에 대해 우호적인 기록이 별로 없는 성경에서조차 마들렌에 대한 몇 안 되는 기록은 …배반의, 불신의, 두려워하는, 의구심의, 나약하게 흔들리는, 식별하지 못하는…모습이 전혀 없다.
그는 예수를 사랑했다. 예수도 그를 사랑했다. 그는 예수가 공생활을 할 때 늘 그의 뒤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수난을 당한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에도 함께 있었다. 그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질 때도, 무덤에 묻힐 때도 항상 거기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자신들도 잡혀갈까 두려워 어딘가로 도망하고 피신해 있을 때 마리아는 그저 거기 있었다. 스승 예수가 있는 곳에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묻힌 무덤을 찾아가 비어 있는 무덤의 증인이 되었다. 그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다.
그 새벽, 마들렌은 예수의 무덤이 있는 정원으로 갔다. 그런데 무덤이 비어 있었다. 그는 누가 스승의 시신을 훔쳐간 것인가 또 혼절할 듯 오열했다. 누군가 다가오자 그는 정원지기라고 생각하고 물었다.
“우리 주님을 어디 다른 데로 모신 건가요?”
그가 마리아를 불렀다.
“마리아야!”
그가 부르자 마리아가 알아보았다.
“라뿌니, 나의 스승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예수가 멈칫하며 말했다.
“나를 만지지 마라. 잡지 마라.”(Noli me tangere, 요한 20,17)
Noli Me Tangere, 프라 안젤리코
처음 이 장면을 그려보았을 때 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하던 분이 손을 뿌리치며 말씀하신다. “나를 붙잡지 마라.” 너무나 냉엄해서 그냥 인간적으로 감정이입이 됐다.
이 말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나는 어떤 말이든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번역은 “나에게 매달리지 마라.”다. 마리아야, 나에게 매달리지 말고 홀로 서라. 고해인 이 세상을 홀로 서서 잘 살아라. 나는 이제 떠난다. 떠나는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네가 알게 된 진리, 네가 들어선 자유의 길, 네 안에 뿌리내린 사랑의 삶을 살아라…. 신학적 해석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이 말은 그나마 눈물을 훔치며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오롯이 홀로 서서 예수의 제자로 살았다. 멀고 먼 프로방스까지 와서 겪는 형극의 순간들에도 그는 예수의 제자가 겪은 신비 속에서 한세상을 잘 살다 떠났다. 아마도 그때 마들렌은 다시 한 번 “라뿌니”라고 부르고, 예수는 비로소 “참 잘했다, 마리아야.” 하고 반겨주지 않았을까. 이제 비로소 블러드메리의 호소가 예수의 음성으로 들린다. “자유로워지라, 나의 사랑아”(Líbérate, mi amor)
그토록 열절한 사랑도,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간직한 마음도, 모두 영원한 곳으로 돌아갔다. “모두 한곳으로 가는 것. 모두 흙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흙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삶의 주인에게 돌아간 이의 자취가 남아 있는 프랑스 땅 Baume에서 뜬금없이 봄[視]과 봄[春]을 생각했다. 프랑스말 봄은 ‘도유’라는 뜻이다. 아마도 성경에서 마들렌이 예수의 발에 나르드 향유를 부은 일에서 얻은 이름인 모양이다. ‘기름부음'은 축복이다. 두려움을 동반하는,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할 수 없는 축복.
생각하면 두 ‘봄' 또한 축복이다. 겨울 지나고 오시는 봄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자라게 하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잠든 대지를 깨운다. 세상 만물에 축복이 가득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또 생각하면 ‘바라볼 수 있는’ 봄이란 얼마나 고마운 축복인가. 라생트봄에서 뜬금없이 언어의 유희에 끌렸다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특별한 행위에 앞서 오감을 통해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이 새삼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