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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21. 2023

최초의 순례자

_르퓌앙벌레이


최초의 외국인 순례자는 프랑스 중부 지방에 있는 르퓌앙블레 주교 고테스칼크였는데, 그는 950년 말을 타고 산티아고를 순례했다…

<교황 칼릭스투스의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


11세기에 쓰인 이 책에 산티아고에 이르는 세 가지 길이 기록돼 있는데 지금도 대략 비슷하다. 고테스칼크 주교가 순례에서 돌아온 이후 르퓌에서도 카미노로 가는 길이 시작됐다. 이 길은 르퓌의 생트마리 성당, 콩크의 생트푸아 성당, 무아사크의 생피에르 성당을 지난다….





어느날,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의 르퓌앙벌레이에 도착한 당신은 저토록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절벽을 올려다보며 어떤 자세였을까. 가파른 절벽 끝에 세워진 생미셸의 성소에 오르며 당신도 살아가는 일의 많은 고됨을 털어내려 탄원하고 호소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왜 떠나왔을까? 왜 고향을 떠나 험한 길을 나섰던 것일까. 저마다의 이유 중에 당신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늘에 조금씩 가까워지던 순간, 당신의 마음에 천국이 물들었을까? 그랬기를 바란다.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프랑스는 정말 큰 땅이다. 게다가 남쪽 지방 아비뇽에서 올라가다보니 프랑스라는 땅의 거대한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과 언덕과 크고 작은 마을들. 대체 천 년도 전에 고데스칼크라는 르퓌의 주교는 어떻게 이 길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간 것일까. 


구불구불 수없이 산길을 올랐다가 또다시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고 석양이 물드는 언덕을 지나 마침내 르퓌에 닿았다. 아직 붉은 서쪽하늘에 성상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모상과 대칭으로 세운 성요셉 상이었다. 이미 어두워진 그 밤에 저녁을 먹고 대성당으로 올라가보았다. 성당 외벽이 미디어파사드가 되었다. 아주 스펙터클한 이미지들이 이 도시가 지나온 중세의 시간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둠에 잠겨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는 건 환영 속으로 들어가 덩달아 그 일부가 되는 일이었다. 사라졌으나 존재했던 어떤 일들,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언젠가 이 땅에서 있었던 일들. 눈앞에서 어떤 시간들이 숨가쁘게 흘러지나갔다. 





이른 아침에야 이 도시의 진면목을 만났다. 사진으로만 본 놀라운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로 접어들어 올라가보았다. 생미셸데귈에 올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안개가 도시를 감싸안고 있었다. 화산 폭발이 만들어놓은 분지가 발아래 펼쳐지고 몇 개의 화산 기둥이 봉헌의 손짓처럼 솟아있었다. 아름답고 놀라웠다. 이런 도시, 이런 마을에 와보다니. 아마도 200만 년쯤 전에 이 분지는 호수였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하자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놀라운 회복력으로 또 새로운 생명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험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르퓌대성당에는 성모마리아가 아픈 한 여인에게 나타났던 바위가 남아 있다. 성모님을 만난 그 여인은 병이 나았고 사람들은 그 바위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 대성당 안에는 긴 직사각 검은 바위가 남아 있다. 그 옛날에는 아니스 산이었던 곳에 대성당을 지었다. 그때 7월 한여름에 이 산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순식간에 병이 나았다. 아픔이 사라졌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 누군가 그런 일을 겪으면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에 놀라면서 때로는 두려움, 경외를 느낀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힘이 내게도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간청한다.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드는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이 검은 바위를 윤이 날 만큼 매끄럽게 만들어놓았다. 


전설 속의 그 바위는 대성당에 그대로 있다. 이 성당의 시원을 만나는 순간이다.


르퓌 대성당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이들은 성 야고보, 프랑스의 생 자크에게 '부엔 카미노'를 전구한다.


검은성모상....프랑스에도 많은 검은성모상이 계신다.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후 르퓌의 대성당은 순례자들이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순례를 떠나는 출발점이 됐다. 기적이 일어났던 거룩한 장소에 지어진 성당에는 검은성모상도 모셔졌다. 루이9세가 봉헌한 성모상은 프랑스혁명 때 불타 없어지고 르퓌의 한 수도원에 있던 성모자상을 옮겨왔다고 한다. 해마다 성모승천대축일이면 르퓌 시내에서 검은성모자상을 모신 행렬을 만날 수 있다.  


르퓌의 유명한 코르네이유의 성모상 아래로 자리한 대성당은 마을의 꼭대기쯤에 있다. 한걸음 한걸음 대성당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 길 끝이다. 그리고 서쪽 현관까지 60계단을, 또 다시 60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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