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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21. 2023

미셸의 성소

_르퓌앙벌레이


정말 바늘처럼 솟아 있는 80미터 높이의 절벽 끝에 아슬아슬 지어진 작은 성소. 원래는 헤르메스의 성소였다고 하는 곳이 미카엘 천사의 성소가 됐다. 날개 달린 헤르메스와 미카엘 천사는 편히 오가겠지만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오르내렸던 걸까.

가장 아슬아슬한 곳에 올라 절체절명의 마음을 하늘에 고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늘 끝 같은 이 성소 말고도 동서양에는 무척 아슬아슬한 곳에 지어진 성소들이 많다. 그곳을 지은 마음과 그곳을 찾았던 마음들. 그 마음들이 도달했던 곳을 오른다.      

시간이 됐다. 표를 사서 계단을 오른다. 하나하나하나… 268개라고 한다. 바늘처럼 가파르다 보니 맨 아래 계단부터 하나씩 만들어가며 마지막에 꼭대기에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드디어 그 옛날엔 고인돌이 있었던 꼭대기에 올라 마지막 계단 앞에 선다. 르퓌 주교 고데스칼크가 카미노를 다녀와 이 작은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덕분에 무데하르 양식이 선명하다.      


거의 수직인 절벽에 아슬아슬 낸 계단을 올라간다. 건너편에 코르네이유의 성모상이 바라다보인다.


'바늘 꼭대기'에 들어앉은 대천사 미카엘의 성소. 까맣게 보이는 저 문을 들어선다. 


이른 아침 아직 남은 어둠 가득한 성당에 들어선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온다. 침묵이어도 좋았을 텐데 성가가 중세의 풍경으로 마음을 이끈다. 가득한 어둠에 잠시 물들고 있으니 조금씩 사물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저마다 다른 모양의 창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의 색유리창에서, 저마다 다른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직 가득한 어둠과 급할 것 없이 스며드는 햇빛이 말도 못하게 고요하다. 이것은 세상과 다른 무엇이다. 매일과 다른 무엇이다. 우리에게 가끔은 필요한 그 무엇. 감사의 맘으로 곱게 받아들여야 할 그 어떤 시간이다. 


프레스코화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 빛이, 작은 색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성당 안 사물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빛이 또 다른 침묵으로 물든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빛을 보게 된다. 어두워야 빛이 보인다. 침묵과 어둠. 어둠 속의 침묵. 당신들도 잠잠해진다.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를 이 순간 우리는 알아차린다. 일상을 떠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비로소 기억한다. 우리는 서로가 뭔가를 만나기를 기다린다. 무엇이었다고 굳이 전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길을 갈 뿐이다. 저 노랑과 파랑과 초록과 하얀 빛이 당신 가슴에 물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저토록 아름답고 고요한 빛이 가슴에 물든 당신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잘 찾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자고, 그런 빛을 구하자고 나선 길이니까. 밥을 먹듯이 또 다른 양식을 얻기 위해 나선 길이니까. 


여기서 평온을 얻듯이 여기서 평화의 화음에 귀 기울이고 마음이 젖듯이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마음을 열어 변함없는 어떤 화음, 고요해져야만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결코 끊이지 않는 영원의 소리, 영혼의 주파수를 맞출 때 만날 수 있는 지고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 그렇지 못해 떠나는 것이다. 찾지 못해 다시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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