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라투레트 수도원
사실은 놀랄 각오를 하고 갔다. 뭔가 뜨거운 감동 같은 순간이 와락 안겨들 거라고 알고 갔다. 애써 심상한 척했지만 내심은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1960년에 준공됐다는 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도 전의 일이라는 말이다. 이 공의회를 연 요한23세 교황은 당시 상징적인 표현을 했다고 전해진다. “창문을 열어라.” 급변하는 세상의 공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교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의회의 모토는 Aggiornamento, ‘오늘 이 시대에 적응’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교회는 오래 문을 닫았고, 좋든 싫든 역사의 더께가 쌓여 원초의 것을 분별하기가 어려운 지경이었을 수 있다.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묵은 어둠도 햇빛에 내어 말리면서 무엇이 본래였는지, 무엇이 본질인지를 새삼 짚어봐야 할 순간이 왔다. 교황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교회 내부에서는 거부와 반대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 그런 일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이 수도원은 지어졌다. 아직 단단하게 닫혀있던 교회 안에서, 그것도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도회의 건물로.
‘파격’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충격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물이 태어났다. 천 년을 이어온 수도회의 품이 그만큼 넓다는 반증 같았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좀 헛갈렸다. '정문'이라거나 '현관' 같은 느낌인 곳이 없었다. 일단 나 있는 길을 쭉 따라들어가니 수도원 입구가 나왔다.
입구의 돌과 나무 의자.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이 '일주문' 비슷한 콘크리트 사각 터널 주변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 풍경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서 보는 마음도 편안해졌다.
수도원의 외양과 내부. 나야 건축학도도 아니고 건축을 아는 입장도 아니니 건축 자체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 다만 한 사람의 방문자로서, 단 하룻밤을 스쳐지나온 순례의 시간을 쓸 수 있을 뿐이다.(사실 수도원은 가이드투어를 해야 한다. 곧바로 용도를 알기가 어려운 공간들에 대해서 도미니코회 수도승들이 실제로 가이드투어를 진행하고도 있다. 나는 그 건물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서 퍼즐 맞추듯 성당이나 식당이나 지하경당의 위치를 생각해내야 했다.)
오늘 마주서도 적응이 쉽지 않은 이 건물이 공의회 전에 지어졌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문득 르코르뷔지에도 그렇고 쿠튀리에 신부도 그렇고, 도미니코수도회도 너무나 위대해 보일 정도였다. 르코르뷔지에는 “마주친 공간에서 감동적인 충격을 받고, 다음 공간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는 것이 건축”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수도원은 돌아서면 파격, 돌아서면 당혹, 또다시 매혹, 그랬다.
세속 건물이라고 해도 수십 년 전에는 당황스러웠을 것 같은 건물,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에야) 찾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