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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_라투레트 수도원

by 이아인


사실은 놀랄 각오를 하고 갔다. 뭔가 뜨거운 감동 같은 순간이 와락 안겨들 거라고 알고 갔다. 애써 심상한 척했지만 내심은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1960년에 준공됐다는 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도 전의 일이라는 말이다. 이 공의회를 연 요한23세 교황은 당시 상징적인 표현을 했다고 전해진다. “창문을 열어라.” 급변하는 세상의 공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교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의회의 모토는 Aggiornamento, ‘오늘 이 시대에 적응’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교회는 오래 문을 닫았고, 좋든 싫든 역사의 더께가 쌓여 원초의 것을 분별하기가 어려운 지경이었을 수 있다.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묵은 어둠도 햇빛에 내어 말리면서 무엇이 본래였는지, 무엇이 본질인지를 새삼 짚어봐야 할 순간이 왔다. 교황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교회 내부에서는 거부와 반대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 그런 일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이 수도원은 지어졌다. 아직 단단하게 닫혀있던 교회 안에서, 그것도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도회의 건물로.

‘파격’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충격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물이 태어났다. 천 년을 이어온 수도회의 품이 그만큼 넓다는 반증 같았다.


IMG_7729.JPG 리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도원의 입구는, 아직은 놀랄 게 없다.


IMG_7980.JPG 길을 들어가면 처음 만나는 콘크리트 건물 덩이. 저 벽 안쪽이 바로 성당이고 지하경당이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좀 헛갈렸다. '정문'이라거나 '현관' 같은 느낌인 곳이 없었다. 일단 나 있는 길을 쭉 따라들어가니 수도원 입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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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돌과 나무 의자.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이 '일주문' 비슷한 콘크리트 사각 터널 주변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 풍경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서 보는 마음도 편안해졌다.


수도원의 외양과 내부. 나야 건축학도도 아니고 건축을 아는 입장도 아니니 건축 자체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 다만 한 사람의 방문자로서, 단 하룻밤을 스쳐지나온 순례의 시간을 쓸 수 있을 뿐이다.(사실 수도원은 가이드투어를 해야 한다. 곧바로 용도를 알기가 어려운 공간들에 대해서 도미니코회 수도승들이 실제로 가이드투어를 진행하고도 있다. 나는 그 건물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서 퍼즐 맞추듯 성당이나 식당이나 지하경당의 위치를 생각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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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주서도 적응이 쉽지 않은 이 건물이 공의회 전에 지어졌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문득 르코르뷔지에도 그렇고 쿠튀리에 신부도 그렇고, 도미니코수도회도 너무나 위대해 보일 정도였다. 르코르뷔지에는 “마주친 공간에서 감동적인 충격을 받고, 다음 공간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는 것이 건축”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수도원은 돌아서면 파격, 돌아서면 당혹, 또다시 매혹,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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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건물이라고 해도 수십 년 전에는 당황스러웠을 것 같은 건물,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에야) 찾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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