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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18. 2023

프로방스의 전설

_생막시맹라생트봄

프로방스의 전설

이천 년의 전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이 도시에 이어져 왔다.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고,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이 마을에서는 전해지고 전해져왔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여성 마리아 막달레나는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대부분은 회개하는 창녀의 이미지로 만났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 예수를 따라다니고 많이 사랑한 사람, 마리아 막달레나는 유다인 여성이다. 그는 예수처럼 이스라엘에서 살았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살았다고 한다. 전설 같은 얘기인데 아주 오래된, 거의 이천 년이 된 얘기다. 이천 년 전부터 구전됐다면 그건 사실이었을까 전설일까.


프랑스 남부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그리고 부활한 후) 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강제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예수의 교회 안에서 있었음직한 갈등 때문이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로마제국의 주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야고보 사도가 순교한 후 박해가 더 심해졌다고 하니까.


배를 타고 고된 항해 끝에 마르세유에 도착한 그들, 마리아와 언니 마르타, 그리고 오빠 라자로와 또 다른 마리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각기 다른 지역에 자리 잡고 살았다. 마리아 막달레나, 프랑스의 마들렌은 생막시맹라생트봄(SaintMaximin la Sainte Baume)에서 약 25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산자락 동굴에서 은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지내던 동굴은 북서쪽으로 나 있어서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마들렌은 어둑한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만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들렌이 매일 일곱 번 기도할 때마다 천사들이 그를 하늘로 들어올려 그의 귀는 천사들의 찬송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날마다 천국의 기쁨으로 채워져 지상으로 돌아왔으니 지상의 양식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사하라의 성자 샤를르 드 푸코도 영적 메모에서 그 얘기를 한다.

“영혼을 완전히 비우고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생각, 하느님께 대한 사랑만을 남겨 두도록 할 것, 높게 살아 더 이상 지상의 것에 속하지 말 것. 생트봄의 성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천상의 것으로 살 것. 1897년 11월 14일”


고대로부터 생트보메 동굴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마들렌은 영겁의 산자락에 스스로를 맡긴 채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아가 2,14)처럼 살다갔다.


그리스도교가 확산되면서 마들렌의 자취는 당연히 순례자들의 목적지가 되었다. 몇 세기 후에는 마르세유에 프랑스의 첫 수도원을 세운 요한 카시아누스가 마들렌의 은수처에도 수도원을 열었고 프랑스의 성왕 루이9세도 십자군 전쟁 출정을 마치고 거룩한 동굴을 순례했다. 13세기부터는 도미니코회 수도승들이 성소를 지켰다. 왕과 교황과 성인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산길을 걸어서 생트보메의 동굴을 찾았다. 우리에게는 멀고도 먼 곳이고 어떤 인연도 닿을 일 없었던 이 낯선 곳이 《다빈치코드》로 인해 세간에 알려졌다.   

   



지명의 주인공인 생막시맹은 요한복음 9장에서 치유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으로 예수의 7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는 성 막시미누스다. 성경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복음사가 요한은 9장 전체에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던 사람이지만 예수를 만나 눈을 떴다. 눈을 떴다는 건 비단 보게 되었다는 것을 넘어 ‘보아야 할 것을 온전히’ 보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참으로 눈이 먼 사람’들 속에서 그는 사람의 아들을 알아보고 그를 믿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마들렌 일행과 프랑스로 왔다(고 전해진다.)


엑상프로방스의 초대 주교였던 그는 마들렌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예수와 함께하던 날들을 추억할 수 있었던 그들이 여기 살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 곳에 세워진 바실리카는 우직하기까지 한 그들의 사랑처럼 담담했다. 나무로 만든 생막시맹 상이 낡아가고 있는 벽감 아래로 이곳에 마들렌의 유해가 있다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짧은 은발의 할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표지 아래 앉아 구걸하는 걸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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