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일기 Aug 31. 2024

X의 완벽한 인생


이사를 엄마와 단둘이 했다. 이사업체를 잘못 선정한 것인지 그들은 짐을 나르는 내내 툴툴 거리고 욕을 했다. 적지 않은 돈을 냈음에도 우리에게도 도와달라고 했다. 이미 멘탈이 나간 나에게 그 소리가 들어올리 만무했다. 멍하니 그냥 계속 시간을 보냈다. 뒷돈을 달라고 하길래 싫다고 했더니 그들은 마지막 쓰레기를 발로 차 멀리 날려버리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이사를 다 마치고도 엄마는 끝까지 남아 계속 뒷정리를 했다. 엄마는 아무소리 없이 결혼식 때 찍은 액자를 버려줬다. 여러가지로 고마웠다. 이미 친정에게 모든 사실을 다 말한 후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않았고 그 어떤 탓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나를 도왔다. 


새 집인데 도저히 이 곳에서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삿짐을 그대로 내버려둔채 필요한 물건만 챙겨들고 엄마집에서 살기로 했다. 몇달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몸은 항상 긴장 상태였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 걷거나, 더 일을 하거나.


매일 X를 만나러 갔다. 그냥 감정을 누르고 무덤덤하게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X가 어떻게 지내는지 묵묵하게 들었다. 현실에 치여 사느라 눈물은 말라버린지 이미 오래였고 X를 향한 안타까움이나 분노 및 절망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감정이 사라졌다. X는 경찰서 안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해댔다. 


경찰서 안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범죄자(?)들이 자신을 놀린다고 했다. 방 한편에는 안이 다 보이는 화장실이 있는데 자신이 들어갈 때마다 그 범죄자들이 그 주위로 다 몰려들어 구경한다고 했다. X가 기분 나빠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 안에서 돌연변이와도 같은 존재였다. 


X는 늘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다고 했었다. 대학교 안에서도 컴퓨터를 잘해 늘 과톱을 했다. 운 좋게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잘 나가는 기업에 입사해 다른 동기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다. 일을 잘해 빠르게 인정도 받고 연봉도 많이 올랐다. 여가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과 문화생활을 즐겼고 컴퓨터 동호회에도 가입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그즈음 나를 만나 연애를 했고 너무도 쉽게 결혼까지 했다. 아무런 문제없는 완벽한 삶이었다. X가 처음 맞닥뜨린 이 감옥에서의 삶은 X의 핑크빛 망상을 철저히 망가뜨렸다.


X는 자신의 인생이 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나에게 자신과 이혼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 X의 인생은 X 입장에서는 완벽했지만 오랜 세월 봐온 나로서는 그리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X에게는 늘 사건 사고가 뒤따랐지만 X는 그것이 남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벌인 일이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건 사고를 눈감아주고 덮어왔었다. 이젠 너무 지쳤다. 평생 그렇게 뒤치다꺼리할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렸다. X는 내가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매일 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자신을 정말 떠날 건지, 이혼할 건지.


변호사는 X가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서는 X가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었는지, 얼마나 남을 위해 봉사했는지에 대한 이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X는 자신이 대학교 때 봉사를 많이 했으니 관련 이력을 떼어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떼어다 줬다. 이런 걸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남을 위해 봉사한 것과 성매매를 하고 지폐 위조한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X는 경찰서에서 9일을 머물다가 10일째에 구치소로 넘어갔다. 그는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Ranurte

이전 05화 남편의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