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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Aug 31. 2024

남편의 가족은 내 가족이 아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X가 경찰서에 있는 동안 나는 밖에서 나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실은 X가 경찰에게 잡혔던 날, 그 일주일 후가 우리의 이삿날이었다. 이미 새로 이사 갈 집에 계약금은 보낸 상태였고 지금 살고 있는 집 역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예정이라 중간에 취소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문제는 은행에서 잔금을 대출받기로 했는데 그 이름이 X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것. 말하자만 X가 지금 경찰서에 있는 이상, 그 돈을 대출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눈물이 흐를 새도 없었다. 나는 당장 그 돈을 구해야 했다. 이러다가는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시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3천만 원이 부족한데 혹시 도와주실 수 없겠느냐고. X가 나오면 바로 갚겠다고. 시댁은 꽤 유복한 편이었고 그 정도 돈은 시아버지에게 큰돈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걱정하지 말라고 도와주겠다고 했고 시어머니에게 말해둘 테니 저녁때 시어머니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 저녁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는 대뜸 소리를 지르며 대체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한테 폐를 끼치냐고 네가 생각이 있는 애냐고 다그쳤다. 지금까지 벌어둔 돈 다 어디에 썼냐면서 니 이름으로 대출받으면 되지 않느냐면서 몰아세웠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출이 되지 않고 여유가 되지 않으시면 빌려주지 않으셔도 된다라고 조근조근히 말했다. 시어머니는 벌컥 화를 내면서 니들이 돈도 안 모으고 맨날 놀러만 다니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면서 자꾸 이야기를 회피했다. 나는 그제야 시어머니가 나에게 돈을 빌려줄 의사가 없음을 깨달았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뒤 돈은 제가 따로 구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아차 싶었을까 급하게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돈 필요하면 빌려주겠다고.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 대체 시어머니한테 뭐라고 했길래 시어머니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고. 시어머니가 너희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너 그렇게 무례하게 전화하면 안 된다고 화를 냈다.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라고 말해도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돈도 빌려주기 싫었고 그렇다고 내가 시아버지에게 시어머니가 돈 안 빌려준대요라고 말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를 썼다. 미리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무도 무례하게 전화를 해 돈을 빌려줄 수 없었다고 거짓말로 둘러댄 것이다. 


여기저기서 욕을 먹고 나니 속상해서 경찰서 앞 정자 앞에서 엉엉 울었다. 경찰서에 어쩌다가 들른 시동생이 내 모습을 봤다. 내가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의 어머니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들에게 그들의 어머니는 인자하고 자상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달랐다. 그랬다. 난 분명히 그들의 가족이 아니었다. 난 이제 진짜 내 가족에게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사실 친정에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근근이 먹고살고 있는 친정에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이 상황을 알게 되면 분명히 속상해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이 3천만 원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보자. 지금 울 때가 아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생각해 보니 X가 오랫동안 적금 들어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보탬이 될 것이다. 경찰서에서 X의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X가 유일하게 잘한 게 있다면 X의 핸드폰에 내 지문을 등록해 두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언제든 X의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일단 X의 회사로 전화해 건강 악화로 장기간 출근할 수 없음을 알렸다. 회사 내 친한 분이 계시기에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월급까지 바로 지급받을 수 있었다. 훗날 퇴사 처리부터 퇴직금 정산까지 진행이 빨랐던 건 다 이 분 덕분이다. 회사 내에 있는 X의 짐까지도 바로 택배로 받을 수 있었다. 어플로 적금 해지까지 가능했다면 일이 쉬웠겠지만 내가 직접 지점을 방문해야만 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들고 은행에 가서 '남편이 감옥이 있으니 내가 직접 적금을 해지해야만 한다'라고 하면 어느 누가 바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직원은 난감해했다. 나에게 경찰과 통화를 해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경찰서 번호와 담당 형사 이름을 알려주었다. 전화를 받은 형사는 어이 없이하며 이렇게 전화하시면 안 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러니까 은행직원과 나는 욕 한 바가지를 먹고 난 후에야 일을 조금씩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4번의 은행 방문과 2번의 동사무소 방문과 인감증명서 및 여러 가지 증명서를 뗀 후에야 그 모든 것을 겨우 해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유도 묻지 않고 계좌번호를 물었다. 눈물이 났다. 고마웠다. 그리고 나머지 금액은 소액대출을 받아 겨우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Jo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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