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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꾸미 Feb 26. 2022

퇴사 후 첫 카페 아르바이트와 3개월 만에 잘린 썰

밥벌이는 쉽지 않다

지인들은 몸이 편한 사무직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3년 동안 매일 컴퓨터 책상 앞에 8시간씩 자가격리를 해왔다. 무엇보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몸은 편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고 머리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제일 힘들었던 건 딴짓을 하면서도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대놓고 딴짓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여유로운 아르바이트는 당연히 카페라고 생각했다. 편안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다가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려서 타 주면 된다. 진상 손님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나에게는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 면접을 봤고 단번에 합격을 했다. 역시 나는 첫인상이 좋은 편이군 하는 생각과 함께. 프랜차이즈 카페는 아르바이트생을 많이 뽑기도 하고 나름 체계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게다가 내가 일하는 카페는 규모가 작은 편이어서 주로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손님들이 많은 곳이었다. 사장님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서 딴짓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때 카페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이미 10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인수인계를 받았다. 나만 30대이고 나머지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었다. 나이가 많은데 뚝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조금 창피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의 카페 적응기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우선 외워야 하는 음료 레시피가 약 50여 가지로 정말 많고 복잡한 데다가 시즌별로 신메뉴가 새로 나와서 메뉴가 자주 바뀐다. 게다가 브레드가 들어오면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도 사용해야 한다. 다음에는 멤버십, 기프티콘, 개인 컵 등 각종 복잡한 할인과 적립 시스템들이 있어서 계산할 때마다 손님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테이크아웃이나 매장 이용객, 배달 주문 등 다양하게 주문이 들어와서 생각보다 쉬는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점심시간 30분이 그날 카페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오기도 하며 단체 주문도 많이 들어온다. 그때는 혼자서 음료를 다 만들 수 없으므로 두 명이서 일을 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문제는 주문이 밀리기 시작하면 내가 패닉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음료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온몸이 긴장되면서 다 만든 음료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엎지르면서 주방이 난장판이 되었다. 속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5분 정도는 기다려주실 수 있을 거야 생각을 하면서도 점점 찡그려지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는 내 심장은 다시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필요 이상의 긴장이었다. 바쁜 날에 실수가 생길 때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조금씩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음료가 늦게 나오기도 하고 레시피가 틀리기도 하고 주문이나 계산 실수도 늘어나면서 고객들이 컴플레인을 걸었고 그때부터 사장님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누구나 완벽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잘못을 했을 때에는 질책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성숙한 어른이라는 것을 머리는 잘 알지만 현실에서는 이론이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 늘 문제이지 않은가? 사장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에게 일을 맡기는 게 불안할 것이다. 매출에도 영향이 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문에 나도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주눅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사장님이 내가 세 달 안에 레시피를 외우지 못하면 더 이상 같이 일 하지 못할 것 같다며 점검을 하러 오시겠다고 했다. 사장님의 신뢰를 잃었다는 생각에 나는 이미 잘린 목숨이라고 생각이 됐다. 사장님이 자르기 전에 내가 그만두겠다고 할까? 알량한 자존심은 건질 수 있겠으나 그 일이 근무 조건이나 시간대가 나에게 잘 맞았고 코로나 기간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그날 밤 친한 친구가 나의 자취방에 놀러 왔다. 친구는 나에게 본인의 경험담을 얘기해주며 내가 회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잠을 자기 직전에도 열심히 레시피를 외웠다. 시럽 n스푼, 가루 n스푼, 얼음 한 스쿱, 믹서 n번, 휘핑 n번, 토핑 n스푼, 드리즐 n번


그날 결국 사장님이 카페에 오셨다. 레시피는 완벽하게 숙지했기 때문에 제조 실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내가 주방을 어지럽게 한다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던 중 작은 계산 실수가 나왔다. 할인을 적용해서 음료를 주문한 고객이었는데 본인 컵 할인(500원)도 같이 해달라고 했다. 나는 할인은 중복이 안 된다고 배웠기에 중복 할인은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갑자기 나를 창고로 부르셨다.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 말만 하셨어도 나 또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결과에 수긍하며 조용히 앞치마를 벗으려고 했다. 사장님은 뒤이어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내가 지금까지 4년 동안 수많은 아르바이트생을 봤는데 내 손으로 아르바이트생을 자른 건 네가 처음이다.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딴 데 가서도 일 못해!”

"네"

그러고 나는 조용히 앞치마를 벗고 나왔다. 앞치마는 조용하게 벗는 것이라고 배웠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무서워졌다. 나이 먹고 나서도 취직 못해서 부모님한테 빌붙어서 방바닥만 긁고 있는 거 아니야? 나처럼 알바에서 잘린 사람들이 또 있는지 확인을 해야 뭔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초록색 창에 검색을 했고 다행히 나와 비슷한 사례들이 보였고 마음에 안정이 되었다. 그중에는 정말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대한민국의 모든 아르바이트생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 세상에 쉬운 밥벌이는 없구나.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행위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사장님이 말한 대로 내가 정말 모든 일을 불성실하게 대충대충 처리하는 사람인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심지어 완벽주의적 강박까지 있는 사람이다. 만약 내가 사장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해버렸다면 그 사람의 말이 곧 나인 것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였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사장님은 굳이 그런 자존감 깎아내리는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항상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성향이기에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사장님은 나를 자르는 게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본인의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내 탓을 해야 했던 것이다.


본인이 제대로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맞는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몰랐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면서 온갖 면접에서 떨어지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60대에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면 그때도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 연결고리를 끊고자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나는 또다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뭘로 먹고 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나 여건 속에서도 내가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이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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