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9
비가 오고 배가 고프다. 초콜릿으로 만든 동그란 눈알이 붙어있는 오레오 케이크를 주문하면서, 달짝지근한 디저트와 함께 하기엔 오늘 빌린 책들이 너무 자극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와 <여성 연쇄살인범의 초상>이 나란히 손에 들려있다. 둘 중 무엇을 읽고 이번 주의 일기를 쓸 것인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를 열심히 보는 요즘이라 연쇄 살인범 쪽에 좀 더 흥미가 있기는 했다.
처음의 마음과 달리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읽게 된 이유는, 우연히 펼친 페이지가 지나치게 슬펐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동 학대 피해자의 생존기록인 줄 알았다. <Ghost boy>라는 원제도 그런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그런데 막상 읽은 ‘유령 소년’의 정체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원인 모를 병 때문에 마비된 신체에 갇힌 소년이었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의 저자는 12살에 사지가 마비되는 퇴행성 신경증을 앓다가 돌연 식물인간이 된다. 그러나 16세 무렵 의식을 되찾고, 3년 동안 서서히 완전한 의식을 되찾는다. 그러나 19세의 마틴이 의식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니까, 의식은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상태로 6년을 지냈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의학 드라마에서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신체가 마비되었으나 의식은 멀쩡히 살아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에피소드였다. 뇌사 판정을 받을 뻔했으나 괴짜 천재 의사의 고집으로 의식이 있음을 판정받고 이내 회복한 환자는 집으로 돌아간다.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에피소드를 보는 동안 환자의 입장에서 장면이 전개될 때마다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변의 상황에 초점을 맞출 수도 없었고, 환자의 의견은 물론 기본적인 감정조차 등장인물들에게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이 가상의 환자는 그의 의식이 살아있음을 인지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나 ‘유령 소년’의 경우는 달랐다. 6년 간 알아주는 사람 없이 홀로 마비된 신체에 갇혀 있어야 했던 것이다. 6년이라니.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긴 고독 끝에 ‘버니’라는 간병인의 다정 덕분에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 소년, 마틴의 이야기이다.
책은 드문드문 떠오르는 마틴의 의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곧 그는 완전히 의식을 찾는다. 그런데 마비된 몸에 갇혀있는 그를 주변인들은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거칠게 몸을 일으켜 세우거나 내동댕이 치고, 적절하지 않은 온도의 음식을 먹이는 식이다. 그나마 그런 정도의 ‘무관심’은 차라리 나을 지경이다. 어떤 범죄자는 그를 성적으로 희롱했고 또 다른 범죄자는 그를 학대했다.
물론 이 모든 순간에 그의 의식은 깨어있다. 항의하거나 저항할 수 조차 없다. 신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고작해야 움찔거리는 것이 전부인 오른손과, 느리게 시선을 옮길 수 있는 눈동자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요약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틴에게 기적이 찾아온다. 간병인 ‘버니’를 만난 것이다.
버니는 마틴이 마비된 환자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말을 걸어온다. 얼마 간의 소통 끝에 버니는 자신이 말을 걸면 ‘유령 소년’이 때로 미소 짓거나 시선을 돌리는 등의 반응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이토록 다정한 일이었다니!
버니는 주변인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스위치와 전자기기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했다. 그리고 유령소년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부모가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일이 시작된다. 보완대체의사소통센터에서 검사를 받은 마틴은, 드디어 그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후 마틴의 끊임없는 노력과 다정한 주변인의 도움이 그를 회복시킨다. 단순히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업을 갖고 강연을 하고 독립도 한다. 그리고 사랑. 사랑의 결실까지 맺는다!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자극을 준다. 평범한 내 현실에 감사하게 되기도 하고, 귀감을 받아 열정을 태우게 되기도 한다.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주에 읽은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의 저자가 생각나 그런 생각을 의도적으로 멈추었다. -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는 뇌성마비 환자이자 장애인권운동가가 그녀의 장애를 쉽게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일침이다. -
대신 그가 덤덤히 털어놓은 갇혀있던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정상’의 범주에 갇혀있는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과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신체를 조절하지 못해 침을 흘리고 있는 사람과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어떤가? ‘정상적인’ 사람들은 정말 소통을 하고 있긴 하는 걸까?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는데 이는 사람들이 저를 믿어주었기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의사소통은 우리를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의사소통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
끔찍했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마틴은 항상 다음을 생각한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엄마를 용서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상황, 그러니까 마틴의 다른 형제자매들과 그들을 돌볼 의무가 있는 그녀의 역할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또 그를 비인격체로 대했던 수많은 간병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이만큼 강한 사람이 또 있을까?
우주는 그의 친절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세상에 회의감을 갖고 냉소하는 것은 쉽지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간직하기는 어렵다. 마틴은 사랑을 놓지 않았다. 사랑을 놓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또 끝내 결실을 맺고야 마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틴의 상황을 동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연민보다 필요한 것은 친절과 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인내다. 버니처럼 눈을 마주치고 웃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다정을 갖는 것.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는 것이 마틴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