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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Oct 12.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착취도시, 서울

23.07.29


빈익빈 부익부, 무전유죄 유전무죄…. 이 암울한 슬로건을 유난히 체감하는 요즘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가 퇴행하는 것 같다. 모두 "투기를 통해 벼락부자가 될 거야. 벼락부자가 돼서 싸가지 없이 살아야지. "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부동산에 관심 없는 주변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은 기본이고, 사기에 가까운 부동산 문제에서 피해자는 조명되지 않는다. 모두가 몇억 벌고 벌금 조금 냈을 뿐인 사람들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다. 욕구는 거세되고 욕망은 섬겨진다. 택배 기사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으며 어린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없다. 세입자의 정당한 요구는 묵살당하고 임대인의 권리는 철저하게 존중받는다.


이게 정말 21세기 현대 사회 풍토인 걸까?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닐까? 미친 과학자에 의해 어떤 실험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토록 천박한 부동산 열풍 속에서 <착취 도시, 서울>은 보다 더 노골적인 착취 구조를 파헤친다. 내게는 ‘달동네‘로 좀 더 익숙한 쪽방촌의 문을 열어 가난을 등쳐먹는 현대 세태를 고발한다.


자신은 쪽방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시길. 쪽방은 우리가 '달동네'로만 생각하는 그 쪽방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재가 나면 도망갈 길 없는 고시원과 불법 증축한 대학가 원룸 역시 ' 현대판 쪽방'이니까.



자. 다시 생각해 보자. '쪽방촌'은 정말 가난할만한 사람들이 가난해져서 가게 되는 지옥 같은 것일까? 아니면 교묘히 설계된 착취 구조에서 제 발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늪인 걸까? 우리는 과연 '빈자의 품성'을 지녔는가?


<착취 도시, 서울>은 크게 2개의 장으로 나뉜다. 먼저는 고시원과 쪽방의 현실, 그리고 그 뒤에서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포식자를 다룬다.


나는 쪽방촌이 주거 형태의 마지노선인 만큼 월세가 무척이나 쌀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왠 걸.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게는 40만 원까지로 생각보다 비쌌다. 아니, 많이 비쌌다! 1인 최저 생계 미용이 약 120만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최대 1/3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쪽방촌의 '이곳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는 특징 때문인지 세입자들은 바닥의 타일이 깨져도,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도, 비가 새거나 화재가 발생해도 집주인에게 말조차 꺼낼 수 없다. 한겨울에 방 안에서 입김이 날 정도가 되어도 ‘쫓겨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당히 월세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집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쪽방 덕분에 병을 얻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구조에서 쪽방촌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한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쪽방을 없애자고? 그럼 수많은 쪽방촌 사람들은 거주지를 잃은 노숙인이 된다. 가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쪽방촌의 수입은 모두 현금이고 별도로 세금을 부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기꾼들이 입맛을 다시는 사업 아이템이다. 실제로 저자가 발로 뛰어 축적한 자료를 보면 '쪽방촌 비즈니스'는 대를 이은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업의 주인들은 모두 유명한 부유촌에 사는 부자들임은 물론이다.




비슷한 구조는 대학가에서도 이어진다. 대학교에 기숙사가 지어지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는 건물주들은 내가 학생일 때에도 있었다. 심지어 내가 다닌 학교에서도 같은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누구를 처벌하거나 누구를 보호하는 법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아직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타 지역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또 타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가난할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다. 기숙사를 포함해 여러 가지 주거형태를 전전했었다. 특히 보증금 100만 원도 마련할 수 없었던 가난의 시절, 부동산 아주머니와 함께 냄새나고 경사가 심한 동네의 반지하 방을 전전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내 경험상 자본은 의식주 중 그 무엇보다 ’ 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대학가의 쪽방, 불법 증축 원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이 화가 났다. '갓물주'로 불리는 그들이 제공하는 주거공간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했다면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침대에 몸을 뉘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4평짜리 공간을 집이랍시고…. 이제 갓 사회에 나와 세입자의 권리가 무엇인 줄도 모르는 어린 청년들의 목에 빨대를 꽂고도 뻔뻔하게 밥이 넘어가시는지 궁금하다.





자본주의의 천박함 쯤이야 미래의 내 신분 상승을 위해 눈을 감아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기사를 읽다 보면 모두가 미래의 부자 지망생이다. 언젠가 부자가 될 날을 '계획'하고 부자들에 자아의탁을 한다.


다들 하우스 푸어 같은데, 사람들은 모두 집값이 떨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임대 주택을 짓는다고 하면 '범죄자'들이랑 어떻게 한 동네에 사냐고 시위한다. 청년들은 젊으니까 4평, 5평짜리 방을 지원해 주는 것도 감지덕지지 않느냐 한다. 택배 기사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고, 경비원은 에어컨을 쓰면 안 되고, 어린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놀면 안 된다. 층간소음이 심해 싸우고 손찌검하고 살인도 나는데, 건설사에 항의하는 정치인 하나 없다. 법도 유명무실하다. 이 나라의 주인은 시민들이 아니라 부동산 같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모두를 동화시킨다. 멀쩡한 사람도 오염될 정도로 부동산 바이러스는 사회에 만연하다.


사람들은 사람답게 살 욕구를 통제하고 부자가 될 욕망을 부풀린다. 그러니까, 욕구보다 욕망이 우선시되고 있다. 어느샌가 우리는 내 집 마련보다 부동산 투기를 통한 벼락 부자 되기를 간절히 욕망하고 있다. '야, 너도 투기 잘하면 부자 될 수 있어'를 외치면서.



<착취 도시, 서울>을 읽으면서 걱정되었던 점 중 하나는 빈곤 비즈니스를 뿌리 뽑아야 할 사회 악이 아닌 내가 투자할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 여겨 뛰어드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2020년 책이었는데 이 부도덕한 비즈니스를 제재할만한 법적 근거나 처벌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한 때 꽤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방치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어쩌면 빈자의 등에 빨대를 꽂고 무럭무럭 몸집을 부풀린 부자들이, 이번에는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사회 이곳저곳에 마수를 뻗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쁜 게 아니야, 돈 많은 게 죄야? 나는 집 빌려준 죄 밖에 없어. 대신 돈을 벌지. 너도 돈을 벌고 싶잖아. 나를 못 본 체하면, 야, 너도 할 수 있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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