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열일곱 번째 편지
나는 줄곧 네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여겼어.
그래서 기분이 나쁘고 때로는 널 만나고 싶지 않았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됐거든.
어쩜 같은 시간을 지나온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나 다를까.
난 널 아는데 넌 왜 나를 모르니.
매번 널 귀찮아하고, 어쩌다 만나도 너의 얘기만 건성으로 듣다 헤어진다는 것도 모르겠지?
홀로 식어가는 내 마음 속에서 넌 점점 더 형식적인 관계,
그마저도 오래되어 잘라낼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갔어.
그렇게 나 역시 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건 터럭만큼도 안 된다는 걸 깨닫기까지 십 년도 넘게 걸렸다.
아마 작년 쯤인가봐.
나는 또 홀로 분노하며 너에 대해 곱씹어보다가 그제서야 느낀거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지?
그 마음조차 티내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늘 내 방문을 두드려준 너를, 그런 너를.
우리는 대체로 서로를 가늠하고 가만가만 떠올리지.
모른다고 서운해하고, 몰랐다며 놀라는 그 순간들이 너무 소중했다는 걸
미안한 마음 담아 고백한다.
있잖아, 그날 교탁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던 너는
더 이상 자신의 옛날 별명을 불러주는 친구가 없다며
그 별명으로 자신을 불러주면 좋겠다고 서운한 얼굴로 말했어.
며칠이 지나고 너에게 용건이 생긴 나는 대뜸 네 옛 별명을 불렀다.
너는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반겼지.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처음은 그랬어.
아무 이유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