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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Mar 26. 2024

예수와의 숨바꼭질

어머님은 험난한 하루를 겪으신 게 분명했다. 머리카락은 떡이 져서 가르마 사이로 두피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였고, 검은 바지에는 어디서 넘어지셨는지 쓸린 자국을 따라 진흙이 말라 붙어 있었다. 손은 차갑고 끈끈했다. 얼굴에도 피곤이 가득했다. K가 어머님의 가방을 살피자, 그날 구매한 마스크 5개 묶음과, 영수증이 나왔다. 음식을 사드신 영수증은 없었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날씨, 댁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환승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먼 곳에 가셨던 어머님은 정말 많이 힘드셨을 테고, 무서우셨을 거다. 그러나, 피곤과 긴장이 이런 비 논리적인 증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예수랑 신부들이 내 몸을 몰래 훔쳐봤어. 이거 성범죄 아니야? 난 고발하고 싶어 경찰서로 가자."

 심상치 않은 문장이었다. 엄마의 짐을 살피던 K가 다가왔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어머님의 입을 지켜봤다. 어머님의 입술이 꾸물거렸다.   

 "빨리 경찰을 불러달라니까 뭐 하는 거니?"

 "어머님, 누가 어머님의 몸을 훔쳐봤다고요?"

 "예수랑 프란치스코 신부 그리고 바오로 신부."

 "예수요? 그 하느님 아들 예수요?"

 "그래 그 예수."

 "프란치스코랑 바오로는 성당에서 일하는 신부예요?"

 "그래. 네가 생각할 때는 어때? 나한테 옷을 벗어보라고도 했어."

 "프란치스코랑 바오로는 어머님 다니시던 시흥 5동 성당에 있던 신부들이에요?"

 "그래."

 "지금도 거기 있어요?"

 "아니 지금은 그만뒀어. 일을 그만두고 할 게 없으니까, 우리 집에 찾아와서 나를 훔쳐보나 봐. 그럴만도 해 신부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사니까 호기심이 많을 거  아니니."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틀림없었고, 나는 그 문제의 시발점이 성당에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예수와 프란치스코와, 바오로로 상징되는 어떤 존재들이 어머님을 해코지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다시 질문을 드렸다. 어머님에게 있었던 일을 추적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어머님, 예수랑 신부들이 어떻게 했어요?"

 "내 몸을 훔쳐봤다니까? 내가 씻을 때 쳐다보고, 내가 변을 볼 때는 음부를 다 훔쳐봤어."

 "그놈들이 훔쳐보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창문으로 얼굴을 봤어요?"

 "그건 아니지만 소리를 들었어. 변을 볼 때 '시원하다.' 라며 좋아하더라고, 씻을 때도 '다 보인다'라며 키득거렸어."

 "잠깐 엄마 씻으면서 소리를 들었다고?"

 어머님은 심한 수준의 청각장애를 가지고 계셨다. 보청기가 없으면 귀에서 30센티 이내 거리에서 크게 말해야 겨우 알아들으셨다. 어머님과 가장 소통하기 힘든 순간은 샤워를 하실 때다. 샤워기 물소리가 큰 것은 물론이거니와, 샤워할 때는 보청기를 빼야 해서, 아무리 크게 말해도 듣지 못하신다. 그런 어머님이 몰래 훔쳐보는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샤워하면서 들으신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 사람들이 엄마 집에 온 거 맞아? 실제로 본 적이 있어?"

 "우리 집에 올 필요가 없지. 인터넷으로 다 보는데."

 "인터넷이요?"


 수원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기 5일 전, 토요일이었다. 나는 K와 어머님을 뵈러 갔다. 어머님은 며칠 전부터 K와 나를 찾았는데, TV를 바꾸고 싶다고 하셨다. 몇 달 전부터 어머님은 TV와 씨름하셨다. 처음은 셋톱박스로 가는 신호에 문제가 있던 것으로, 통신사에 연락을 해서 송신 신호를 점검하면서 해결됐다. 두 번째는 요금미납이 원인이었다. 3개월째 요금이 미납된 상태였고, 미납된 요금을 납부하자 다시 TV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TV의 문제는 아니었다. TV화면엔 ‘신호없음’ 글자가 둥둥 떠다녔는데 셋톱박스 전원을 누르자 마법처럼 실시간 뉴스가 방송되었다. 어머님은 며칠 동안을 셋톱박스가 꺼진 상태에서 TV를 켜고, TV가 꺼진 상태에서 셋톱박스를 켜는 것을 반복하셨지만, 안타깝게도 TV도 켜지고, 셋톱박스도 켜지는 행운이 없었다. 하지만 TV를 볼 때마다 행운을 바랄 수는 없었다. 나는 어머님에게 IPTV에 대해 설명드리기 시작했다.

 "어머님, 이제는 아날로그 방송이 없어졌고, TV를 보려면 인터넷으로 봐야 해요. 여기 이 구멍이 무슨 구멍인지 아세요?"

 "전화선이지."

 "맞아요. 그리고 옆에 구멍은 아시겠지만 유선방송을 연결하는 구멍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전화선도, TV선도 필요 없게 되었어요. 여기 창문으로 들어오는 이 선을 보세요. 이게 바로 인터넷 선인데요. 인터넷 하나면, 전화도, 컴퓨터도, TV도 다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정보를 전달하는 속도도 엄청 빠르고요. 그래서 이제 TV 선도, 전화선도 다 안 쓰는 선이 됐어요."

 "이제 TV 선이 없어?"

 "네, 여길 보세요 인터넷 선이 이 셋톱박스에 연결되어 있죠? 그리고 이 셋톱박스에서 선이 나와서 TV에 꽂혀있죠?"

 "그러네."

 "이 셋톱박스는 인터넷 정보를 TV전파로 바꿔주는 장치예요. 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TV가 셋톱박스가 있어야 볼 수 있어요. 제가 셋톱박스 전원을 눌러볼게요. 여기 화면에 채널명이 나오죠? 이걸 보면 셋톱박스가 켜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셋톱박스도 켜지고, TV도 켜져야 방송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어머님은 이제 알겠다며 박수를 치셨다. 나는 이해는 짧고 연습한 건 평생 간다며, 어머님에게 TV를 켜고 끄는 것을 여러 번 다시 하게 했다. 어머님은 성공적으로 TV를 켜셨고, 셋톱박스를 껐다가 켜보기도 하셨다. 나는 이 정도면 TV 수리 기사를 하셔도 된다며 어머님을 추켜세웠다.

"어머님 이 선이 무슨 선일 까요?"

 "인터넷 선이지!"

 "오 맞아요 그럼 이건요?"

 "그건 센터박스!"

 "정확히는 셋톱박스지만 아무튼 맞아요!"

 IPTV와 인터넷 그리고 디지털 세상에 대해 이해하신 머님은 4차 산업 혁명에 대해서도 이해가 간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한국을 보고, 좋아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나도 인터넷으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다고 이게 혁신이라고 거들었다. K는 어차피 엄마는 금방 까먹을 거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까먹지 않으셨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인터넷으로 다 보고 있어. 예수가 말하는 것도 인터넷으로 다 들려!"

 "어머님, 인터넷 있다고 해도, 카메라나 마이크 같은 입력장치가 없으면 볼 수 없어요. 스피커가 없으면 예수가 어머님한테 말도 못 걸어요."

 "내가 다 들었어. 인터넷으로 보는 게 다 느껴진다고. 어머나 여기까지 인터넷이 있나 봐, 예수 목소리가 들려."

 나는 와이파이 공유기에서 전원선을 뽑아서 어머님에게 보여드렸다.

 "어머님 이것 보세요. 이게 공유기거든요? 전원을 뽑았으니까 이제 이곳에 인터넷은 없어요."

 어머님은 집을 둘러보셨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을 살펴보고, 거실의 커튼을 재껴보기도 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님, 여기는 인터넷 없어요.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쓰러지듯 소파에 앉았다. 어머님에게 인터넷을 설명한 게 잘못이었을까? 어머님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다. 예수님이 어머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라면, 신부님들은 어머님에게 연예인이었다. 젊은 시절 성당에 새로 온 신부님을 짝사랑 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도 있다. 그러나 예수도 신부님들도 어머님의 TV를 고치지 못했고, 어머님은 인터넷과 디지털 방송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일한 낙이자 소통창구인 TV를 잃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예수와 무엇이든 해내는 인터넷은 어머님의 망상속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조롱했다. 

 

 나는 거실에 온수매트를 깔고 가장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숙면을 돕는다는 아로마 향수를 뿌렸고, 보일러도 24도로 높였다.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디즈니 OST 피아노곡 모음을 틀었다. 거실에는 커튼을 쳤고, 부엌의 창문에도 이면지를 붙였다.

 "어머님 괜찮을 거예요. 여기는 인터넷 없어요. 걱정 마시고 편하게 주무세요."

 "누가 얘기하는 거야 예수님이야?"

 "저예요. 어머님..."

 어머님은 보청기를 빼셨는데도 소리를 들으셨다. 내가 말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어머니는 듣고 계셨다. 누군가 계속 말을 건다고 하셨다. 프란치스코와 바오로 신부도 찾아왔다고 했다. 예수가 찾아오기도 했다. 어머님은 인터넷을 통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어? 지긋지긋해 아주."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일시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은 너무 추웠으니까,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셨으니까, 일시적으로 혼란속에 계신 것이기를. 따뜻한 잠자리에서 푹 주무시면 아무렇지 않은 듯 깨어나실 것 같았다. 정말 간절히 바랐다. 어머님은 누워서 작게 중얼거리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을 보며 불을 껐다. 불을 끄자 어머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래요. 여기는 K네 집인 거 같아요. 아주 넓은 곳에 살고 있네요."

난 K와 함께 침실로 들어갔고 문을 닫았다. 


 우리는 침대에서 서로를 껴안고 누웠다. 긴 밤이었다. 거실에서는 어머님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어머님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중얼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비명소리가 되고, 울음소리가 되고, 웃음소리가 되기도 했다. 이윽고 어머님은 일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졌다. 커튼을 들추는 소리가 들리고,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딸깍 스위치 소리와, 위이잉 화장실 환풍기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화장실을 찾으셨나 봐."

 내가 작게 속삭였다. K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화장실을 나온뒤에도 발자국 소리는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부엌 싱크대에서 물소리가 울렸다. 냉장고가 열리고, 거실 등 스위치가 딸깍 거렸다. 방 문 틈으로 거실등 불빛이 번쩍였다. 발소리는 그렇게 집안 곳곳을 깨우고 다녔다. 그러다 별안간 발소리가 침실 문 반대편에서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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