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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Mar 22. 2024

허락받은 동거

 K의 어머니와 단 둘이 식사를 한 건, 서울시 금천구의 어느 갈비탕집에서였다. 그날 나는 일부러 어머님 댁까지 찾아갔다.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프러포즈를 하고 나면 K의 원룸을 처분하고, 같이 지내자고 할 계획이었다. 반지하이긴 했지만, 방 두 칸에 거실도 있는 전셋집을 미리 구해두었다. K가 원룸에 혼자 지내는 것을 무서워한 것도 이유였고, 당장 같이 살고 싶을 만큼 K가 좋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중으로 나가는 주거비를 줄여 결혼식 비용을 마련하려는 생각이었다. 대신 허락을 구해야 했다. 결혼 전 동거라는 건 아직은 어른들에게 낯선 일이었다. 혼자 찾아갔던 이유는 일 대 일로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허락을 받고 싶어서였다.


 "K에게 결혼하자고 할 생각입니다."

 갈비탕을 주문하면서도 연신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으시던 어머님은,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오히려 안도한 듯 차분해지셨다. 10년이 넘게 사귀었으나, 결혼을 할 거라는 건 어머님도 예상하셨을 거다. 나는 침을 꿀떡 삼키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당장은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K랑 같이 살면서 돈을 모으려 합니다. 같이 모으면 더 빨리 모을 수 있고, 빨리 돈을 모아서 식을 올릴 생각입니다."

 나는 빨리 감기를 한 듯 준비한 말을 뱉어냈다. 문장과 문장 사이 어머님이 놀라거나, 당황할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준비한 말이었다. '동거'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 동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많이 고민했다. 같이 사는 게 동거이고 결혼이지만, '같이 산다'와 '결혼'과 '동거'는 전혀 다른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럼 동거를 하겠다는 거니?"

 어머님은 내 말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으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갈비탕에 밥을 푹 떠 넣으시고, 깍두기를 베어 무셨다. 어머님의 식사는 천천히 진행되었다. 갈비탕의 고기를 발라서 밥에 얹어 드시고, 배추김치를 찢어서 국물에 적셔 드셨다. 나는 국밥을 처음 먹는 사람처럼, 밥을 한술 떠서 입에 넣고, 국물을 떠 마셨다.

 "그래, 요새는 다들 결혼 전에 동거부터 한다고 하더라."

 어머님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먼 곳을 응식하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다시 식사에 집중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수저가 멈추면 따라서 식사를 멈추고, 수저가 움직이면 따라서 식사를 했다. 어머님의 움직임이 멈출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안함을 견디다 못한 나는 결국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이제... 장모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장모님이라고?"

어머님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셨다. 얼마나 격하게 웃으셨는지, 어머님 입안에 밥풀이 내 어깨에 날아올 정도였다. 두 번째 밥풀이 내 얼굴로 날아오자, 어머님은 미안하다는 듯 허공을 휘휘 저으시고는, 입을 가리며 웃음을 삼키셨다.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으시는 어머님을 보며, 나는 내가 실수를 한 건지, 농담에 성공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장모님이라고 하니까 되게 이상하다. 그냥 어머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네 어머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허락받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전까지는 K의 어머니를 어떻게든 호칭하지 않으려 애썼는데 이제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나도 사실은 장모님보다 어머님이 편했다. 장모님은 남의 엄마를 부르는 단어 같지만, 어머님은 '어머니'에 'ㅁ' 받침을 더했을 뿐이기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날 어머님은 집에 들어가실 때까지, '장모님'과 '어머님' 사이에서 고민하셨다. 직접 '장모님', '어머님'을 소리 내 보시기도 하고, 나에게 말해보라고 한 뒤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름 유쾌한 시간이었다. 어머님은, 댁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나를 돌려보내시면서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성관계는 꼭 혼인한 후에 하면 어떨까? 내가 그것만은 허락할 수가 없으니."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어머님에게는 동거보다 더 중요한 규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쉽게 어겨지는 규율인지, 그리고 언제 어겨져 버린 규율인지는 모르시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고는 멀어져 가는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드셨다.

 "잘 가렴, 귀염둥이."


*

 

 그렇게 밝고 인자하셨던 어머님이 지구대 안에 계셨다. 어머님을 처음 어머님이라고 부른 날을 떠올리며,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구대는 일반적인 관공서와 비슷한 구조였다. 안쪽에는 민원창구처럼 테이블이 출구를 마주 보고 이어져 있었고, 출구 양옆에는 벤치가 놓여있었다. K는 테이블에서 경찰들과 함께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보호자에게 인계한다는 내용의 서류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어머님을 찾았다. 대기용 벤치 맨 안쪽에 어머님이 앉아계셨다.

 얇은 아이보리색 패딩에 어울리지 않는 오렌지색 모자. 엉덩이를 의자 끝자락에 걸쳐 않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세가 마치 비행 청소년처럼 느껴졌다. 낯설었다. 평소 웃음 많으시고 다정하셨던 어머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다가가도 어머님은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만을 응시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어어, 추, 추 추기경님이..."

 어머님의 발음이 심하게 뭉개졌다. 평소에도 언어의 명확한 의미보다는 느낌의 전달을 우선하는 말하기 방식이셨지만, 평소와 다르다는 것이 바로 느껴질 정도로 어눌한 말투였다.

 "추기경님이 서, 선물을 준다고 했어."

 "추기경이요? 추기경이 선물을 준다고 해서 여기 오신 거예요? 오빠를 만난다고 오신 게 아니셨어요?"

 "..."

 내가 되묻자, 어머님은 말을 멈추시더니 더 이상은 불러도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거짓말을 하려다 실패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보이스피싱이 맞았던 걸까? 어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으니, 사기꾼들이 추기경을 사칭하며 어머님을 꼬드겼을 수 있었다. 나는 신뢰를 드리기 위해 어머니의 손을 가져와 꼭 잡았다.

 "저한테만 말해주세요. K한테는 비밀로 할게요."

 어머니의 손은 차가웠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이 내 심장까지 전해지는 듯 마음이 불안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물어보기를 포기했다.

 "어머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요. 우선 밥 먹으러 가요."  

 나는 지도 앱에서 설렁탕을 검색했다. 차로 5분 거리에 24시 설렁탕집이 있었다. 주차장도 넓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엄마, 수원은 왜 온 거야?"

K의 목소리가 경찰서에 울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K가 다음 말을 꺼내려는 데 한 경찰관이 다급하게 나섰다.

 "어머님이 엄청 시장하실 거예요. 아무것도 못 드신 거 같더라고요."

 K는 따질 것이 많이 남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경찰서에 죽치고 앉아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대는 엄연히 경찰들의 장소였고, 인계 서류를 작성한 시점에서 경찰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는 나와 K의 몫이었다.

 "근처에 설렁탕집이 있는데 아주 맛집이래."

 나는 K를 달래며, 지구대 밖으로 내밀었고, 다시 어머님을 모시고 나와 차로 안내했다. K는 경찰서 주차장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설렁탕집 입구에서 어머님을 붙잡고 왜 수원에 온 건지 따졌다. 어머님은 그럴 때마다 땅바닥만 내려보며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빨리 밥 먹으러 가."

 

 설렁탕집은 해장하러 온 취객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어머님은 갈비탕을 시키셨고, 나와 K는 설렁탕을 주문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K에게 당부했다.

 "어머님이 지금 많이 놀라셨을 거야. 식사하시고 안정을 찾으신 뒤에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마 먼저 이야기를 꺼내실 거야."

 K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마를 짚었다. 긴 한숨도 내뱉었다.

 어느새 어머님의 갈비탕이 나왔다. 나는 집게로 고기와 뼈를 분리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두었다. 어머님이 화장실에서 돌아오셨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시작하고서야 나는 몇 시간 전 고기를 잔뜩 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밥이 입에서 삼켜지지가 않았다. K는 먹은 게 없어서 배고프다고 했지만, 그녀 또한 몇 술 밥을 뜨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반면 어머님은 즐겁게 식사를 이어가셨다. 갈비탕의 고기를 밥에 얹어 드시고, 배추김치를 찢어서 국물에 적셔 드셨다. 늘 하던 어머님의 식사였다.


 식사가 끝나고 나오면서 K는 본격적으로 취조를 시작했다.

 "엄마, 여기가 어딘지 알아?"

 "몰라."

 "수원이잖아. 엄마 여기 왜 왔어?"

 "너 보려고 왔지."

 "난 수원에 살지도 않는데 무슨 소리야?"

 "너 왜 이렇게 멀리서 사니? 찾아가기 힘들게."

 "무슨 소리야? 엄마 외삼촌 만난다고 모텔에 찾아갔다며! 경찰 아저씨한테 그렇게 말했다며."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얘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네."

 "무슨 거짓말이야? 경찰 아저씨들이 다 말했어. 모텔에서 신고해서 엄마 경찰서 갔다 왔잖아!"

 "내가 왜 경찰서에 가니? 아유 짜증 나 빨리 집이나 가자."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님이 뭔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숨겨두고 계신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셨다면, 속은 것이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실 수 있었다. 뭔가를 숨기려는 게 아니라면 저렇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면서도 억지를 부리실 이유가 없었다.

 날이 추웠다. 나는 K와 어머님을 달래서 차에 태웠다. 경찰서도, 설렁탕집도, 주차장도 안심하고 비밀을 말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한숨 돌리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하시지 않을까? 나는 내비게이션에 우리 집 주소를 입력했다. K는 어머님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고 있었다.

 "어디 가려고?"

 "우리 집."

 "엄마 집에 안 모셔드리고?"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집엔 소파도 있고 거실도 있으니까 같이 이야기하기 좋을 거야."

  11시가 넘은 시간 경기도의 도로는 한산했다. 나는 마음껏 액셀을 밟았다. K는 어머님 핸드폰의 통화 기록을 살폈다. 어머님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자동차의 풍절음 때문에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안양시 학의천 둑길에서 빌라들이 빽빽한 골목으로 진입하자, '화이트 빌라'가 쓰인 하얀 건물이 보였다. 그 화이트 빌라 B02호가 우리 집이었다. 내가 앞장서고, 어머님과 K가 뒤를 따라왔다. 나는 얼마 전에 사둔 거실 조명을 켜고 바닥에 러그를 깔았다.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자, 붉은 거실 조명과 푸른 TV 불빛이 묘하게 아늑한 느낌을 자아냈다. 소파에 앉으신 어머님에게 따뜻한 녹차를 타서 쥐여 드렸다. 어머님은 녹차를 내려놓으시고 나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어머님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예수랑, 신부들이 내 몸을 훔쳐봤어. 그놈들을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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