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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Mar 29. 2024

마귀의 목소리

  어머님은 밤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거실등 스위치가 켜졌다 꺼지고, 싱크대 물이 쏟아졌다 그치고, 방문이 열렸다 닫혔다. 나와 K가 숨어있던 침실의 문도 여러 번 열렸다. 어머님은 난데없이 벌컥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오지는 않고 가만히 서계셨다. 그러다 K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깜짝 놀라며 다시 문을 닫으셨다. 그런 문 열기를 세 번 이상 하시고 나서, 나는 침실 문을 잠겄다. 문을 잠근 뒤에도 나와 K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대신 우리는 어머님이 지치시기만을 바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님의 증상은 환청과 망상 그리고 불안이었다. 어머님은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 소리는 어머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했고, 어머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가끔은 좋은 말을 하기도 했는데, 목소리에게서 칭찬이 이어질 때 어머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지만, 욕설이 들릴 때 어머님은 화를 내며 반박하셨다. 물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허공에 욕을 하는 어머님의 목소리 뿐이었다. 듣다 못한 K는 방을 나가 어머님을 붙잡고 말을 붙였다.

 "엄마 누구랑 얘기해?"

 "여기 와있잖아."

 "누가 와있는데?"

 "아무도 없어?"

 "여기 엄마랑 나 말고 누가 있어?"

 "이상하다... 어 또 말하는데? 나보고 병신년이라는데?"

 "엄마 그거 다 환청이야 가짜라고!"

 "가짜라고? 아니 나는 들리는데 어떻게 가짜일 수가 있어?"

  환청을 듣는 사람은 그것이 환청임을 알 수 없었다. K가 환청이라고 이야기를 해줘도, 너무나도 생생하고 또렷하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를 가짜라고 생각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어머님의 눈높이에서 환청을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를 해봤다.

 "어머님 그 소리는 마귀의 목소리예요."

 "마귀?"

 "그래요 예수님을 시험에 들게 했던 그 마귀요.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서 뛰어내리라고 했던 이야기 기억하세요?"

 "맞아 신부님한테 들었던 거 같아."

 "그때 마귀가 천사가 구해줄 테니 뛰어내리라고 했지만,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그래 예수님이 다 알고 물리치셨지."

 "맞아요. 지금 마귀는 어머님에게 거짓말과 협박을 하면서 어머님을 시험하는 거예요."

 "아 마귀였어? 날 욕하는 게 예수님인 줄 알았는데 마귀였구나."

 "그래요. 마귀는 변신의 귀재예요. 예수님으로도 변하고 마리아로도 변하잖아요. 나쁜 이야기를 하는 건 모두 마귀예요. 무시하세요."

  "아유, 마귀라고 하니까 안심이 되네, 예수님 죄송했어요. 제가 당신을 의심했네요."

  어머님의 입장에서 환청을 설명하는 시도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어머님의 목소리가 커지며, 욕설을 내뱉으실 때마다 나와 K는 방문을 뛰쳐나와 어머님을 안심시켰다.

 "엄마 또 마귀 목소리 들었어?"

 "어머님 그 목소리는 마귀예요. 마귀는 미운 감정을 먹고 자라요. 어머님이 무시하지 않으면 자꾸 찾아올 겁에요."

 "아아 그래 마귀구나, 아 다행이야."

 마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마귀를 탓함으로써 어머님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마귀를 탓하는 방법은 환청에는 효력이 있었지만, 망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머님의 망상은 모두 성당과 관련이 되어있었다. 예수, 프란치스코 신부, 바오로 신부 등 한 때 긍정적으로 인식했던 인물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생각을 하셨고, 그런 변화에 고통스러워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일부러 불을 끄고 볼일을 보셨고, 자꾸 패딩을 입어 몸을 가리려 하셨다. 나와 K는 어머님이 추워서 저러시나 하고 보일러 온도를 높였지만, 어머님은 덥다고 하시면서도 패딩을 벗지 않으셨다. 망상은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이어졌는데,  어머님은 성모 마리아가 본인을 죽이러 올 거라며 두려워하셨다. 어머님의 망상 속에서,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 예수가 한국의 어떤 여자를 스토킹 하는 걸 알게 되었고, 예수를 꼬신 어머님을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리아가 어머님을 죽이려는 존재라면 하느님은 어머님을 살리려는 존재였다. 하느님은 어머님의 기도에 감동해서 어머님의 통장으로 오조 원을 입금했고, 마귀를 물리치기도 했고, 어머님을 칭찬하며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어머님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시며, 예수와 신부들, 마리아, 하느님이 등장하는 망상의 세계관을 견고하게 구축하셨다.

 문제는 불안이었다. 환청과 망상은 엄청난 공포를 야기했다. 마귀의 유혹이든, 예수님의 배신이든 귀에서 들리는 욕설과 폭언,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망상으로 인해 어머님은 귀신의 집에 온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가끔 자신을 칭찬하는 환청이 들리더라도, 어느새 사기꾼의 목소리가 되었고, 하느님이 입금해 준 돈은 어느새 다른 사람들이 훔쳐가고 있었다. 어머님은 안절부절못하며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비명을 지르고, 가방을 뒤지기를 반복했다.

 "하느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하느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하느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그날 밤 새벽 4시부터 어머님은 똑같은 기도를 수백 번 반복했다. 5시가 넘어갈 무렵, 어머님은 살려주겠노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셨고,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를 드린 뒤, 그제야 잠자리에 드셨다.


*


 다음날 아침 나는 팀장님께 전화를 걸어, 몸이 아프다고 했다. 팀장님은 약 먹고 푹 쉬라고 하며, 연차를 쓰게 해 주었다. 차라리 몸이 아파서 쉬는 거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라도 건강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K는 본인의 자취방에 짐을 챙기러 갔다. 우리는 당분간 같이 지내기로 했다. 사실 그전부터 우리는 거의 같이 지냈다. 내 서랍장 한 칸과, 내 장 한 칸은 K가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K의 집에도 내 옷이 있었다.

 

 K가 집에 다녀오는 사이 나는 검색창에 '환각', '망상' 등의 단어를 검색했다. 가장 먼저 확인되는 질병은 조현병이었다. 어머님의 증상은 조현병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조현병은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었고, 어머님은 만 68세였다. 의사가 출연하는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는 50대가 넘어서 발병하는 조현병 증상은 다른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뇌졸중도 의심이 갔다. 어머님은 불과 5일 전만 해도 평소와 다름이 없이 건강하셨다. 또한 어머님이 수원에서 발견되신 날은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였다. 추운 날씨에 뇌졸중이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뇌졸중은 정신적 증상보다는 신체적 증상이 더 많이 발생되는데, 말을 못 하고 어눌해지는 실어증이나,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연하곤란 등의 뇌졸중 증상은 어머님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치매일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치매는 서서히 기억력이 감소되며, 이렇게 급성으로 발병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잠시 후, K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함께 집 근처의 정신병원을 찾았다. 조현병이든 뭐든 정확한 진단을 받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병을 진단받는 것은 쉽게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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