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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Apr 23. 2024

치매환자는 어떤 병원을 가야 하나

 어머님은 3시간도 채 못 주무셨다. K가 캐리어를 들고 돌아오기 전부터 허공에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K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급해졌다. 검색해 본 병들 중 어떤 병은 아주 시급한 치료가 필요했고, 어떤 병은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병도 있었다. 무엇이든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어머님에게 옷을 챙겨드렸다. 왜 그렇게 서두르냐는 K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K는 나와 반대였다. 확인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며칠을 보낸 찌개처럼 안에 곰팡이가 피고 역한 냄새가 풍기더라도 끝내 뚜껑을 열어보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이라고 했다.

 어머님은 이 집에 인터넷이 있어서 안 되겠다며, 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마귀의 목소리가 여전히 어머님을 괴롭히고 있었다. K가 이곳엔 인터넷이 없다고 하자 잠시 안심하셨고, 또 다른 환청에 빠져드셨다. 나는 K에게 가보려는 병원의 리스트를 보여줬다. 집에서 5분 거리의 가까운 정신과 의원부터, 서울 금천구의 어머님이 다니시던 정신과 병원, 그리고 작은 병원에서 진단이 어려울 경우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각 병원에서 얻은 정보에 따라 이어질 다음 계획을 미리 세워두었다. K는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 했지만, 나는 최대한 하루에 끝내고 싶었다. 내 계획은 나름 합리적이었지만, K가 고민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정답보다 중요한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때도, 그 이후로도 나는 괜찮아질 거라고만 말했고, 가능한 한 빨리 방법을 찾아서 제시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법이었다. 긍정적인 확신을 갖고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님을 치료하는 일을 신규 사업 또는 프로젝트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덕에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었고, 조금 더 많은 병원비 지원을 받았고, 어쩌면 어머님이 보다 나은 치료를 받으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내 태도는 K의 숙고를 방해했고, K가 슬픔을 받아들일 틈을 막았다. 나에게는 매 순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느렸고, K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빨랐다.


*


 첫 번째로 방문한 병원은 집에서 5분 거리의 신경정신과의원이었다. 곳곳에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지는 건물이었지만, 병원 안은 호텔 같은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허름한 외관에 마음이 불안했다가, 깨끗한 인테리어를 보고 안심이 되었다. K에게도 슬쩍 귓속말을 했다.

 "여기 왠지 진료 잘할 거 같지 않아?"

 "그랬으면 좋겠다."

 병원에 들어서자 수납 간호사가 인사를 건넸다. K가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님 옆을 지켰다. K와 간호사의 대화가 길어졌다. 어머님은 잠시 앉아 계시다가 나에게 말을 거셨다.

 "여기가 어디니?"

 "병원이에요."

 "예수님, 여기가 병원이래요."

어머님은 다시 환청 속 세상으로 빠져 드셨다. 마치 나와 함께 있는 현실 세상을 일부러 외면하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K가 돌아왔다.

 "여기서는 진료를 해줄 수가 없대. 이 앞에 치매안심센터를 먼저 찾아가래."

 K는 치매안심센터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들어 보였다. 나는 방문해야 할 병원 리스트를 뒤로 미루고 치매안심센터를 다음 코스로 정했다.

 병원을 나와 지도 어플을 켰다. 치매안심센터는 가까웠다. 어플에서는 1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나는 지도가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나아갔다.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고, 바닥에 내린 눈은 미끄럽게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앞장서 덜 미끄러운 길을 개척했고, K는 어머님의 팔짱을 끼고 따라왔다. 우리는 마치 극지방을 탐험하는 원정대처럼 조심스럽게, 느린 속도로 거리를 가로질렀다. 동안구 치매안심센터라는 간판이 가까워졌다. 지도 어플이 계산한 도착시간보다 10분이 늦은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치매 돌봄 및 진단은 치매안심센터에서 시작한다. 치매 안심센터에서 1차 선별검사가 이뤄지고, 선별검사에서 치매가 의심되는 어르신들은 2차로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 진단검사에서 치매 의심 소견이 있다면, 상급병원에서의 MRI 검사 비용 10만 원을 지원받는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면 MRI 검사 비용은 35~60만 원 수준이고, 10만 원을 지원받으면 25~50만 원으로 비용이 저렴해진다. 추가로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치매 진단 어르신들에게는 한 달 3만 원까지의 약값 지원, 실종예방서비스(지문등록, 팔찌, 인식표 제공), 맞춤형 사례 관리 및 물품지원, 주 3회 인지프로그램, 가족프로그램 등이 제공된다. 그러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치매 진단을 받아야 하고, 치매를 진단받는 건 지독히도 힘든 일이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안내책자를 읽을 때의 나와 K는 전혀 알지 못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나와 K는 잠시 안도감을 느꼈다. 센터 안은 따뜻했고,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안내 팸플릿이 친절하게, 치매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들을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그곳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어머님의 주소지는 서울시 금천구였기에 금천구 치매안심센터로 가야 했다. 안양시 치매안심센터는 안양에 세금을 낸 안양시민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논리였다. K는 제발 도와달라며 애원했다. 사회복지사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며, 어머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했다.

 "어? 올해 6월에 금천구 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해서 검사하신 기록이 있네요?"

 "그래요? 결과가 어떠셨대요?"

 "그건, 직접 가보셔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한번 금천구로 등록이 되셨기 때문에 저희가 도와드리려면 이관 절차를 거쳐야 해요."

 "아니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절차가 그래요."

 

 "너네들 마귀지? 왜 자꾸 나를 따라오니? 물렀거라! 마귀야 물렀거라!"

K가 사회복지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어머님은 환청과 사투를 벌이고 계셨다. 나는 조금이나마 힘이되고자 목소리를 높혀 응원했다. 

 "어머님 잘하셨어요! 나쁜 말 하는 것들은 다 마귀예요. 마귀야 물렀거라!"

K와 사회복지사가 우리 쪽을 바라봤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죄송해요. 방법이 없네요."

어머님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사회복지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머님을 진정시키면서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방법이 없다는 말에 바로 휴대폰 택시 어플을 켰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금천구치매안심센터로 이동했다. 금천구 치매안심센터에서도 나는 어머님 옆에 앉아서 기다리고, K가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했다. 지난 6월 어머님은 금천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선별검사를 받으셨고, '경도인지장애' 등급을 받으셨다. 2차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그러나 어머님은 추가 검사를 받지 않으셨다. K는 당장 진단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출근하는 날에만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하는 수 없이 돌아오는 주 수요일 오전 11시로 진단검사 일정을 잡았다. 당장 검사를 받지 못해 아쉬웠지만, 전날 밤 어머님의 증상을 인지한 이래로 처음 뭔가를 해낸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택시 어플을 켰다. 다음 목표는 어머님이 다니시던 N정신과 병원이었다. 그날 아침, K가 잠시 나간 틈에 나는 어머님 댁 근처의 정신과 병원에 모두 전화를 걸었고 최근까지 다니신 병원이 어딘지 찾아냈다. 운이 좋아 몇 번의 시도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님의 병을 진단받고 치료해 드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고, 병원을 찾아냈을 때는 하면 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N정신과 병원 원장님은 어머님의 상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일주일 전에도 병원을 찾아오셨고, 그때도 평소처럼 밝고 긍정적이셨다고 했다. 처방한 약도 평소랑 똑같은 용량의 우울증 약이었는데, 드시지 않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작은 용량이라고도 했다. 나는 지난밤 어머님에게 있었던 일과, 지금 겪고 계신 증상들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환청을 들으시는지, 어떤 망상을 하고 계시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드렸다.

 "이상하네요. 만약 치매로 인한 거라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수 없거든요. 제가 추측하기로는 뇌 쪽에 뭔가 오신 게 아닐까 싶은데, 혹시 식사는 잘하시나요?"

 "네 어제 갈비탕도 맛있게 드셨어요."

 "말씀이 어눌하거나 하시지는 않나요?"

 "네 신체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세요."

 "흠... 지금으로서는 제가 진단을 내려드릴 수가 없고요. 큰 병원을 가보셔야 할 것 같네요."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병원이 있으실까요?"

 "근처에 S병원으로 가보시죠. 거기가 예약도 빠르고 괜찮을 거예요."

 "한 가지 더 여쭤볼게요. 혹시 병원에 빨리 가셔야 하는 상태일까요? 큰 병원은 예약하고 가려면 며칠 걸릴 거라서, 필요하다면 응급실이라도 가려고 하는데요."

 "그 정도는 아니신 거 같아요. 신체적 증상은 없으시니... 일단은 환각을 줄여 주는 약을 처방드릴게요. 혹시 댁에 계시다가 상황이 위급해 보이면, 구로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거기에 정신과 응급의가 있거든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마치 면접을 준비하듯 의사 선생님의 예상 답변을 만들었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물어봤다. 그 덕에 필요한 정보들을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S병원 정신과를 수요일 오후 3시로 예약했다. 주말에도 진료는 가능하지만 MRI 검사가 불가능해서 의미가 없었다. 오후 3시면, 치매안심센터에서 진단검사를 받고 가면 여유가 있었다. 어머님 상태에서 진단검사 결과는 치매가 분명할 거였고, 그러면 즉시 10만 원 할인이 적용된 금액으로 검사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계획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치매안심센터 진단검사는 결과를 확인하는데 1주일이 걸리고, MRI 검사를 할인받으려면 지정된 병원에서만 검사를 해야 했다. 지정된 병원이 많기에 선택지는 넓지만 대부분 상급 병원이기에 MRI 검사를 예약하려면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치매 진단을 받는 절차는 그렇게 느렸다. 어머님의 증상도 나도 그 느린 절차를 견딜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치매가 맞을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지난 6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신 것으로 봤을 때 치매가 진행 중이셨던 건 분명했다. N정신과 원장님 말로는 경도인지장애는 사실상 초기 치매와 동일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님이 보이신 심각한 환청과 망상 증상은 치매로만 설명하기엔 어려웠다.

 "치매였구나... 엄마 치매였어."

 집에 오는 버스에서 K는 지난여름 어머님 집에 들렀던 날을 떠올렸다. 나도 그날이 생각났다. 나와 K는 최근 몇 년 동안 두어 달에 한 번씩 같이 어머님을 찾아가서 같이 식사를 했고, 그날도 아주 평범한 그런 하루였지만, 돌이켜 보면 모든 게 이상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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