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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은아 Sep 14. 2022

수업을 기획하고 기록하기

1. 나는 왜 가성비 낮은 일을 잘하려고 하는가?

처음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하게 된 건 2015년 3월이었다. 석사 전공생이었지만 직장에서 관련 업무경력을 인정받아 강의를 맡았다. 하던 업무 연장선에서 수업은 국제문화교류에 관한 대학원생 대상 수업이었다. 그 뒤로 1년에 한 학기 정도 직장과 병행해도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0년부터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처음 수업을 하게 되었다. 강사 입장에서는 한 번에 10명 내외의 소규모 학생들-게다가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과 경험을 어느 정도 보유한-하고 수업을 하는 것이 가성비가 높다. 학생들이라기보다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나오기 때문에 일방적이기보다는 상호적인 소통이 가능해서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이 학부생 대상 수업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보통 1시간 수업이면 50분 하고 10분 쉬게 되는데 3시간 수업인 경우 150분인데 수업 시간 내내 해야 할 말의 양이 압도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강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주고받는 내용이 있어 배우는 것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어 일하면서 하는 수업이 부담되긴 하지만 즐거운 마음에서 의뢰를 수락하고는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가르친다는 즐거움에 경제적인 보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이면 좋겠지만 실제 처우는 그렇지 않다. 주당 3시간에 총 15회 수업 동안 받게 될 강사료는 다해도 238만 원이다. 세금 공제 전 금액이다. 총 4개월 동안 하니 한 달에 60만 원 조금 안되게 받는다. 3시간 수업이라면 사전 준비에 8시간 정도는 든다. 물론 이전에 수업을 해서 수업 자료가 정리되어 있는 경우로 처음 맡게 될 수업이라면 시간이 곱절로 들 거다. 사전 준비 8시간에 당일 3시간, 다녀와서 수업 정리 대략 2시간-요즘엔 비대면이 일상적이 되면서 학교마다 온라인 수업 게시판이 있어서 수업자료를 수업 전후로 업로드하고 공지도 수시로 올려야 한다- 이외 부가적인 행정 처리(중간 및 기말고사 채점, 출석부 점검 등)를 감안하면 주당 3시간이 아니라 최소 주당 15시간을 15회 즉 총 225시간 일하고 받는 돈인 셈이다. 시간당 10,600원이니 최소 시급 9,160원보다 조금 더 받고 일하고 있다.


양질의 수업을 위해 특별 수업을 기획한다면 특강자 섭외, 수업 관리, 예산 처리 등의 부가적인 일을 더 해야 한다. 잘하려고 하면 더 많은 노동이 들어가는 개미굴에 빠지게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던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하고 쉽다. 경제적 보상만 생각하면 굳이 선택해서 할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이 서비스로 인식되다 보니 하던 대로 관성적으로 수업을 진행해서는 안된다. 그러다 학생들 대상으로 중간 수업 평가, 기말 수업 평가를 받게 되고 3.5점 미만을 받게 되면 서비스 제공자로서 결격 사유가 생겨 2회만 받아도 수업을 배정받을 수 없다. 게다가 일대다의 관계이다 보니 감정 노동의 고단함도 빠뜨릴 수 없다. 시간당 강의료 편차가 약간씩 있어도 강의 제공 노동자로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강의를 제공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공급자는 많고 수요자는 적은 이 불합리한 상황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발산의 욕구 때문이다. 계약서 상 강사 신분이지만 호칭이 학생들에게 '교수'로 불려서도 아니고, 전문가로 인증받아 그 인정을 기반으로 다른 대외 활동을 하는 데 용이해서도 아니다. 가르친다는 일이 형식적으로는 나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학습하게 되어 있다. 특히나 나의 전공 분야라는 것이 굉장히 현실 민감도가 높아서 올해 다르고 내년 다르다. 안 하면 도태되기 쉽다. 소량의 돈이지만 일종의 장학금을 받고 내 공부를 한다는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멀게는 대학 때부터 축적해둔 각종 지식과 경험을 쌓아만 두고 내내 수렴만 하고 있다가 적절하게 발산할 공식적인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고 깨지면서 머릿속에는 늘 대체 이렇게 쌓아만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자주 생각했다. 공부가 좀 늘었구나 스스로 위안하는 것도 잠시고 마음 한편에는 늘 헛헛하고 공허함이 있었다. 이제 수렴을 지나 발산해야 할 때라는 걸 자각하기 시작할 때 강의를 할 기회가 왔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때가 왔으니 채비를 차리고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작년부터 맡기 시작한 강의는 공연기획론이다. 주로 국제문화교류 분야나 예술경영 분야에서 일을 해와서 관련 분야에 대한 강의는 할 만했다. 하지만 공연기획 과목을 강의 의뢰 주셨을 때 처음에는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야에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잠깐 공연기획을 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주로 마케팅 분야였어서 기획 및 제작에 관한 부분을 가르치는 건 잘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강의 요청을 하신 분께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경영 업계에서 일한 당신의 경험이라면 충분하다고 용기를 주셨다. 의뢰하신 분의 안목과 믿음이 있는데 굳이 못한다고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강의라는 게 한 학기 동안 이야기할 범위를 내가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라 생각해보면 늘 해오던 '기획의 과정'이라 못할 이유가 없었다. 덜컥 맡게 되었고 벌써 2회 차 강의를 하고 있다.


앞으로의 글은 강의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강사가 사전 준비부터 실제 15주 차 강의를 진행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실제 전공 공부든 인생공부든 내공을 쌓으면 분명 누군가와 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모색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가성비 낮은 일을 굳이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도 올 것이고 막상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잘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 더불어 공연을 기획하는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도 되어 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노고도 알게 돼서 공연을 또 다른  관점에서 사랑하시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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