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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l 19. 2023

아주 조금 그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

올해 상반기에는 미래를 걱정하며 매일의 삶을 꾸렸다.

오랫동안 요가를 했다. 그래서 내게 명상도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최근 휘몰아치는 걱정과 고민 때문에 몸에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다행히 별 일이 아니라는 검사결과를 받았지만 그 덕분에 명상, 마음챙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관심은 마인드풀tv 정민과 김주환 교수의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관심이 없었던 끌어당김, 에고  마음이란 무엇인지 공부하는 중이다. 끌어당김과 자기확언은 여전히 뜬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사람들이  명상에 집중하고 빠져드는지 아주 조금 맛볼  있었다. 명상과 관련된 영상을 보면 마음의 짐이 약간 덜어지는 기분이 든다. 덩달아 내가 그동안 이렇게 무언가  쥐고 살았구나 싶어 반성도 했다.


/ 넌 대체 어딜 보고 사는 거니? 


매일 오늘 현재만 산다고 생각했던 삶. 막상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오늘 눈뜨면 내일이 걱정됐다. 현재 대신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래서 부동산과 세상 돌아가는 경제 소식에 혈안이 됐다. 미래에는 지나간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보였다. 이상하게 헛헛했다.


네이버 블로그 경제/비즈니스 분야에서 1등인 인플루언서의 블로그 강의를 들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내 것으로 소화해보려고 애썼다. 1일1포스팅 습관을 만든다는 취지의 서비스에도 동참했다. 그랬더니 2달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와 관련한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은 있지만 주고받는 관계가 끝나니 허무해졌다. 그는 관련 분야 1등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지식창업으로 돈을 벌려면, 끊임없이 고객을 모으고 그들이 돈을 쓸 수 있는 상품/서비스를 만들어야 했다. 내겐 그런 게 전무했다. 그저 1등 인플루언서의 삶을 흉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제/비즈니스 분야 강의 대신 다른 분야를 들었다면 아마 나는 그 분야를 선택했을 것이다. 


/ 거기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잘못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에 따르면, "
세상 모든 것은 사실 동일선상에 있지만 무언가가 다 위에 있고 밑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일이란 절대 쉬어선 안되는 명제이고, 돈이란 벌어야만 하는 당위성으로 가득한 대상이었다. 쉬는 동안에도 어떻게 하면 미래에 돈을 벌 수 있을까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낳고 이상 대신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꿈이나 여행, 여유 이런  먼나라 이야기였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치라고 가볍게 여겹다. 너무 안일했다.


여러가지 역할 중에서 엄마의 역할로만 점철된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하려고 발악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엄마로 사는   어때서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 그게  어때서.


올해 상반기에는 미래를 걱정하며 매일의 삶을 꾸렸다. 다가온 하반기에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졌

.


스스로를 믿는 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걱정은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내 안의 아픔을 먼저 돌봐주세요.

- 아이를 향한 죄책감으로 괴롭습니다.


생각이 처음 일어날 때 내가 그것을 이어가려는 것만 알아차려도 변화하기 시작됩니다. 에고에게 밥을 한 술 떠주며 더 큰 걱정을 만들어내 라고 하는 대신에 생각은 내가 아니야 하고 단호하게 의식을 지금 이 순간에 모으는 연습을 하면 돼요. 지금 바로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며 공기가 코를 지나는 느낌에 집중해보세요. 명상은 내가 무엇에 집중할지 선택하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올 때 생각을 이어가려는 나를 알아차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세요.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의 나래를 펼쳐 괴로움을 선택하려는 나를 알아차리고 눈을 감고 호흡을 거듭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합니다.

-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나요


누군가에게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에고는 너와 나를 분리하고 높은 것과 낮은 것의 경계를 만들어요. 세상 모든 것은 사실 동일선상에 있지만 무언가가 다 위에 있고 밑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죠. 하지만 내 위에도 아래에도 아무도 없도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을 믿기 시작하면 누구의 앞에서도 작아지지 않고 누구 앞에서도 커지지 않아요. 나는 늘 한결같이 존재할 수 있죠.


내가 꿈꾸는 내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 모습일 때 일어나고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나와 소중한 현실의 나를 비교할 때 우리는 큰 고통을 느껴요. 열등감으로 괴롭다는 것은 누군가의 위에 있고 싶거나 누군가의 아래에 있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에요. 그럴 때 눈을 감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온 세상이다 혹은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돼 하고 마음속으로 반복해 말해보세요.


내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와 다를 게 없음을 깨달아야 해요. 내가 아닌 무엇이 되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것을 멈추세요. 이미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나누며 살도록 해보세요.

- 질투와 열듬감 때문에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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