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시집을 읽고 그리움의 정서가 움찔거렸다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 생활과 예보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 종암동
시인 박준의 시와 에세이를 좋아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책 제목은 마음을 쿵하고 내려앉게 만들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한 어떤 정서와 감각을 단어로 보여줘서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장마가 오기 전에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읽었다. 유독 나는 시인의 아버지가 나온 '생활과 예보', '종암동'이라는 시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떤 이를 향한 그리움의 정서 앞에 멈춰선 내가 그 시앞에 있었다. 시인의 아버지는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고 과묵한 스타일로 묘사된다. 시인의 아버지가 요즘의 내 모습과 오버랩됐다.
비가 많이 오기 시작하면, 텃밭 걱정이 앞서고 외출하는 일은 아이 등하원과 먹기 위해 마트에 가는 정도다. 아이를 두고 마트에 가는 길에 소소하게 무언가 전화할 이가 없어진 일상. 친정엄마와 셋째동생은 잠자는 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재우느라 여념이 없을 테고... 미혼인 친구들과 연락을 하지 않은지 코로나 3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친구가 없어진 건지, 내가 등을 돌린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친구가 없어도 그냥저냥 살 수 있었다. 아주 가끔 혼자 남겨진 시간에 친구라는 존재의 의미가 선명해질 뿐이다.
결국 남는 건 가족인 건가 싶다가도 뾰족하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떤 날은 말을 하도 많이 해서 한도초과했다는 느낌마저 받는 시간도 있었다. 그럴 땐 집에 와서 내가 뱉은 언어를 검열했다. 말이 뭐라고 그걸 되짚어 봐야 하는가.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내게 짙게 깔린 그리움 혹은 가족과 관련한 의미는 꽤 깊다. 돌아보면 20대 때도 가족으로 주제를 뽑아낸 연극에 깊이 감명받았다. 막상 내 가족을 만들곤 그 테두리가 갑갑해서 발버둥치는 모습도 본다. 내겐 부족한 화목함이라는 정서를 여전히 이상향처럼 꿈꾸고 있는 걸까. 셋째동생이 우리 가족은 셰어하우스처럼 각자도생한다는 말이 비수처럼 돌아온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무심하다고 나쁜 건 아닌데...화목하다고 좋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고향에 갈 타이밍이 점점 목까지 차오르고 있다. 이건 그곳에 발을 내딛고 고향의 향을 맡고 거기에서 만든 음식을 먹어야 잠잠해질 내 그리움의 정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