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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디 Nov 08. 2024

03. 다섯 번의 조직검사

암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

얼마 만에 와보는 서울인가!

따뜻한 남쪽지방에 사는 나는 서울에 올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사는 곳은 심지어 겨울에 눈도 잘 쌓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눈이 쌓였던 2022년 12월 23일... 그때 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참 귀엽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 운동을 가려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운동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길가에 만들어진 눈사람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딱 봐도 아이들의 작품은 아니었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이건 분명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사람들의 행동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콘서트나 공연을 보러 서울에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삶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자녀도 없는 사람이 무슨 돈이 그렇게 아깝다고... 좋아하는 공연 티켓 한 장도 손이 떨려 결제하지 못했다. 그런데 병원을 가기 위해 서울에 있다니... 용산역의 공기가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멀리서 오셨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내가 만난 종양내과 교수님은 밝고 친절하셨다. 편하게 대해 주시는 교수님을 만나니 긴장이 살짝 풀어진다. 

교수님은 가져온 소견서와 초음파 판독 CD를 보시고 추가로 CT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림프종 조직검사 방법은 2가지가 있는데, 총 생검(바늘로 조직을 찔러서 내용을 빨아들여 묻어 나온 조직을 채취하여 검사하는 방법)과 절개생검(국소마취 후 암으로 의심되는 부위의 조직을 일부 떼어내어 검사하는 방법)이다. 

총생검으로는 전이된 암인지 아닌지의 여부(원발인지 아닌지 여부)만 알 수가 있고, 절개생검을 해야 림프종인 경우 호지킨 림프종인지 비호지킨 림프종인지 정확히 알 수가 있어서 CT 결과를 보고 어떤 방법으로 조직검사를 할지 결정한다고 하셨다. 이날 난 난생처음 CT를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7월 2일 CT결과 교수님은 절개생검을 하자고 하셨다. 총 생검이 아니라 절개생검을 하자고 하시는 걸 보니 림프종으로 의심이 되는가 보구나... 이때부터 난 내가 림프종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성형외과 교수님을 만나 수술 날짜를 잡고 7월 5일 겨드랑이 절개생검 조직검사를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첫 번째 조직검사) 40분 정도 소요되는 아주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셨기에 그걸로 위안을 삼아 보았으나 라식수술 이후 처음으로 하는 수술이라 긴장되고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수술방은 시원했고 하얗고 밝은 조명 덕분에 더 깨끗해 보였다. 얼굴은 가려졌지만 국소마취라서 모든 게 들리고 느껴지고 진행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왜 수술을 안 하지?" 한 15분을 기다린 것 같다. 초음파 기계가 연결이 되지 않아서 신호가 잡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간호사들은 교수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수술이 계속 지연되자 교수님이 한숨을 쉬셨다. 괜히 나도 긴장이 되었다. 


수술방에 들어간 지 2시간 반 만에 난 대기실에 있는 신랑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40분 만에 나올 거라 생각했던 신랑은 2시간이 넘게 아무 소식이 없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조직검사 못하고 나왔어요. 국소마취로 조직을 떼기엔 너무 깊이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라 전신마취를 해야 한대요" 수술방에 있었던 2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교수님은 절개를 했으니 어떻게든 조직을 떼려고 안간힘을 쓰셨고, 내 겨드랑이를 수도 없이 후벼 파셨다. 국소마취를 했어도 내가 통증을 느끼자 결국 조직을 떼지 못한 채 봉합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내 겨드랑이에는 현재 2개의 봉합 자국이 남았다. 


7월 16일 봉합한 부위의 실밥을 뽑고 추가 검사와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을 했다. (두 번째 조직검사) 이번엔 PET CT를 찍고 림프 총 생검 조직검사를 했다. 종양내과 교수님 판단에 전신마취로 조직검사를 하기보다 비교적 간단한 총생검으로 조직검사를 해 보고 결과에 따라 추가로 절개생검을 할지 보자고 하셨다. 


7월 23일 총 생검 조직검사 결과 전이된 암으로 판정. 겨드랑이의 경우 유방이 원발부위일 가능성이 높아 추가로 목 CT 촬영과 유방 MRI 촬영. 다음날 MRI 결과를 보고 유방 총 생검 조직검사. (세 번째 조직검사- 이때서야 비로소 유방암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7월 30일 항암 하는 날까지 난 추가로 조직검사를 2번 더 했다. 유두 바로 아래 총 생검 조직검사와 (네 번째 조직검사) 피부과 교수님을 만나 빨갛게 발적이 된 피부 표피를 떼어 피부 조직검사 (다섯 번째 조직검사)까지 횟수로 총 다섯 번의 조직검사를 해야 했다. 항암을 하는 날까지 추가로 조직검사 2번을 더 해야 했던 이유는 내 케이스가 유방암 중에서도 희귀한 케이스(염증성 유방암)이기 때문이다. 


염증성 유방암 (inflammatory breast cancerIBC)은 가장 공격적인 유형의 유방암이다. 전체 유방암의 5% 이하로 (한국의 경우 2% 이하) 진단이 될 만큼 희귀하고 공격성이 가장 높아 전이가 빠른 종류다. 염증성 유방암은 종종 감지할 수 있는 덩어리나 종양이 없으며 종종 유방조영술이나 초음파로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초음파나 CT로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염증성 유방암의 경우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도 부분절제술이 아닌 전절제술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유는 이미 피부조직까지 암이 침범했기 때문이다. 피부 조직검사 결과 피부에서도 암이 발견되었다. 고로 난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 


# 유방암 타입 (4가지 유형) 

-호르몬수용체 양성/ HER2 양성 유방암

-호르몬수용체 양성/ HER2 음성 유방암

-호르몬수용체 음성/ HER2 양성 유방암

-호르몬수용체 음성/ HER2 음성 (=삼중음성) 유방암


나는 호르몬수용체 음성/ HER2 양성 타입의 염증성 유방암이다. 그래서 초음파나 CT로 발견하기가 어려웠고 유두 아래 피고름 증상과 피부발적 증상이 있었기에 (조직검사 진행 중이던 7월 중순에 처음으로 증상 발현됨) 추가로 조직검사를 2번 더 했던 것이다. 

염증성 유방암이라고 해서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허투양성 항암제를 똑같이 쓰고 단지 수술만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7월 30일을 끝으로 다섯 번의 조직 검사가 끝난 동시에 5 p.m 항암제가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항암... 항암제가 내 몸에 들어오면 당장이라도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날 것만 같아 무서웠다. 병실에 누워 평온한 음악을 틀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항암제의 실체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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