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햇살 아래...
영원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입 딱 벌어지게 만드는 그 자태는
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섰다.
봄날엔 가벼이 흩날리는 벚꽃 눈발이라면
가을엔 투욱툭 허물을 벗는 노오란 은행잎 눈발이다.
가을이 익을 대로 익어 그 무게를 벗어버리는 날
은행나무 아래 가만히 누워 눈을 감는다.
사르륵 사르르륵 툭
지난봄 벚꽃잎의 가벼움에,
지난여름 눈부셨던 신록의 무게를 더해
머리, 얼굴, 가슴, 배, 팔과 다리에 쉼 없이 와닿는
노오란 은행잎의 허물 벗는 소리
사르락 사르락 사르르락 투둑
어느 순간 마음 가득 은행잎 떨어지는 소리로 가득 차올라 찰랑거리면
나도 모르게 번쩍! 눈을 떠본다.
그리고 보았다.
시간이 멈춘 듯 공중에 멈춘 노오란 은행잎 사이사이 텅 비어있던 대기가
황금가루를 뿌린 듯 온통 노란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1년에 한 번은 꼭!
황금 은행잎 침대에 누워 은행나무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바람 춤을 추며 쌓이고 쌓여
층층이 두께를 더한 황금 은행잎 침대에 누워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들을 투욱 내려놓고
허물 벗은 은행나무를 오래오래 올려다본다.
텅텅 비어버려 쓸쓸하기도...
무게를 떨어 버린 홀가분함으로 자유하기도...
뿌리의 본질에 집중하며 또 다른 봄을 준비하는 은행나무는
자신의 허물 옷을 베고 누운 또 하나의 은행잎이 된 나를
그 커다란 품으로 안아주며
소리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사진 by낭군 #은행나무 #은행나무침대 #가을 #벚꽃 #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