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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Jan 03. 2024

10주 차 임산부의 저질체력

두 명을 이끌고 다닌 남편

임신을 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고, 졸음이 많이 쏟아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게 나에게도 무진장 해당되는 말일줄은 직접 겪어보고야 알았지만.


평소에도 체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9시 - 18시 근무를 마치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은 그저 평범한 K-직장인이었으니.


공무원 3년 차 정도 되니 퇴근 후 저녁 먹고 헬스를 갈 정도의 짬은 생겼지만.


그럼에도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금방 몸살에 걸려버리고 마는 저질체력 그 자체이다.







그런 내가 임신을 하고 나니 더욱더 저질체력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임신 초기 아직 임신인걸 몰랐을 때, 오전 베이킹 수업을 하고 오면 점심 먹은 후에 어마어마한 졸음이 쏟아졌다. 베이킹 수업 자체가 3시간 정도 서서 하는 거라 그에 따른 체력 소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오후에는 1-2시간 정도 낮잠을 퍼질러 잤다. 그땐 이미 공무원을 그만두고 백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정도는 자줘야 다시 정신을 차려 일어날 수 있었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을까.


임신임을 알게 된 5주 차쯤부터는 더욱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입덧이 오기 직전 떠난 가족들과의 강원도 2박 3일 여행에서도 밥만 먹었다 하면 졸음이 쏟아지고, 차만 타면 이동시간 내내 거의 잠만 잤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어찌 그리 피곤함이 몰려오던지. 매일 밤 숙소 거실에 모여 수다를 떠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먼저 방으로 들어가 숙면을 취했다.


멀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도 체력을 썼겠지만, 운전자인 아빠에 비해 너무 지쳐있는 내가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무려 비행기를 4시간이나 타고 해외를 가다니.


입덧으로 인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장장 6박 7일의 다낭 여행을 남편과 단 둘이.


이미 예견된 일이겠지만, 여행 내내 남편은 본인 몸과 우리의 모든 짐을 챙기고 거기에 나와 뱃속의 새벽이 까지 케어해야 했다.


혼자서 두 명을 데리고 다닌 셈이다. 저질체력의 임산부와 그에 딸려있는 10주 차 아기까지.


여행 일정을 이 두 사람에게 맞추느라 남편이 꽤나 고생도 하고 포기한 것도 많았을 거다.


처음으로 함께 간 해외여행의 일정을 아주 헐렁-하게 잡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건 바나힐에 갔을 때였다.


바나힐은 다낭에서 그랩으로 대략 40분 정도 가면 있는 테마파크로 어마어마하게 큰 손이 다리를 받치고 있는 골든 브릿지로 유명한 곳이다.


전날 호이안에 가서 하루종일 돌아다닌 터라 오전 일찍부터 일정을 잡는 건 힘들 것 같아 오후부터 움직이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오후 3시에 바나힐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바나힐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는 모르고 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거긴 정말 말도 안 되게 규모가 큰 테마파크였다. 내가 중국에 와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거진 대륙의 스케일에 가까운 규모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코 케이블카.


바나힐 입구에서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게 장장 20분간을 올라간다. 그것도 평평한 라인을 따라 수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몇십 개의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상당한 각도의 오르막이다.


처음 그랩에서 내리고 입장권을 제시하고 들어온 입구가 점점 조그맣게 보이더니 이내 산봉우리에 가려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건지 그 끝도 보이지 않아 남편과 둘이서 탄 케이블카 안에서 조용히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정상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그날은 하루종일 하늘이 흐린 날씨였어서 점점 산으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지고 심지어 비까지 왔었다. 건기인 한 여름에도 바나힐은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 바람이 시원하다고 하던데 그날은 깊은 산속의 산신령이 몇 명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그렇게 도착한 바나힐 정상은 추웠다.


얇은 여름 원피스에 혹시나 추울까 얇은 긴 옷을 가져갔지만 그거까지 다 입고도 산속의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거기에 비도 오고 깊은 산속에 안개가 끼니 순간순간 한 치 앞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3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입장권을 미리 예매해서 갔는데, 바나힐에 도착해서 보니 벌써 분위기가 살짝 폐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더해져 더욱 쓸쓸한 느낌이었다.


입구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오후 4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하고, 정상에 올라가 구경하려고 했던 루나파크는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바람에 길을 헤매며 찾아가다가 폐장 소식을 듣고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추운 산속에서 안개와 바람과 비를 맞으며 골든 브릿지를 구경하고, 루지를 타고, 바나힐을 돌아다니다 보니 10주 차 임산부의 체력은 금세 바닥이 나고 말았다.


사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서 이미 20분 내내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는데 온 신경을 썼던 터라 정상에 도착해서부터 급 피로함이 몰려왔었다.


거기에 차가운 바람과 안개, 그리고 비까지 더해지니 아무리 우비를 입었더래도 이겨낼 힘이 없었다.


급하게 나의 입덧푸드인 감자튀김을 욱여넣고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당 충전을 해봤지만 추위에 지친 몸이 다시 살아나긴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기념사진을 남기겠다고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지금 다시 봐도 표정에서부터 벌써 아무 힘이 없는 게 느껴진다.


그런 나를 이끌고 그 광활한 바나힐을 돌아다녔던 남편도 꽤나 고생을 했을 거다.






우리가 예매한 티켓에는 바나힐 정상에 있는 비어 플라자에서의 저녁 뷔페도 포함이 되어 있어서 부랴부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다행히 비어플라자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따뜻했다. 음식은 가짓수가 많았지만 입덧하는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건 제한적이어서 몇 가지의 음식만 골라 담았다.


그래도 따뜻한 곳에서 앉아 식사를 하니 얼었던 몸이 녹고, 떨어졌던 텐션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재밌는 공연까지 더해지니 흥이 올라 기분 좋은 디너파티가 되었다.


다양한 음식과 과일을 먹고 과일 음료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으니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화려한 조명의 따뜻한 비어 플라자를 뒤로하고 나오니 이미 해가져 어둡고 안개 끼고 추운 바람이 부는 산 정상의 바나힐만 있었다.


설상가상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닫고, 직원들이 퇴근해서 거리엔 사람이 드물었다.


이 와중에 입구까지 내려가는 케이블카는 대체 어디 있는 건지 지도를 보고 찾아가도 이미 문을 닫은 케이블카들이 많아서 도무지 내려갈 방법을 못 찾고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다시 안개 낀 길을 헤치고 비어 플라자로 돌아가 직원에게 물어물어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겨우 탔다. 그것도 한 번에 내려가는 게 아니라서 중간에 내려 마감하는 직원의 다급한 안내에 따라 다른 케이블카로 환승해야 했다.


순간 그 높은 바나힐 정상에 갇히는 줄 알고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제야 왜 비어 플라자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이끄는 가이드로 보이는 분이 본인의 고객들에게 저녁식사 후 꼭 6시 30분까지 입구로 모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때가 아마도 마감 전의 마지막 케이블카 타임이 아니었을까.






환승을 통해 탄 두 번째 내려오는 케이블카도 정말 길고도 길었다.


이제 주변이 모두 어두워져 풍경이 보이진 않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종의 항공뷰랄까.


한참을 내려온 후에야 겨우 바나힐 입구와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높고 추운 바나힐에서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폐장하는 테마파크가 주는 쓸쓸한 느낌에서 겨우 벗어난 것 같았다. 미친 오르막을 자랑하는 케이블카의 덜컹거림도 이제 없으니 정말 안심이다.


미리 예약해 둔 그랩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둘 다 곯아떨어졌다. 추운 산속 날씨를 견딘 임산부도, 그런 임산부를 케어하느라 도리어 제 몸은 돌보기 힘들었던 남편도. 모두 고생했다.


다시 따뜻한 지상으로 내려오니 덥고 습한 다낭의 날씨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니 쾌적한 방이 얼마나 감사한지.


바나힐 투어는 그렇게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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