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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Dec 27. 2023

우기지만 괜찮아

흐린 날씨 속 시원한 바람

첫 동남아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는 여러 나라들을 비교해 보았다.


여러 조건들을 비교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날씨였다.


습하고 더운 날씨엔 잼병인 남편이기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 여름의 동남아는 어딜 가더라도 대체로 고온다습했다. 그래서 고민의 고민 끝에 그나마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괜찮았던 다낭으로 선택지를 좁혔다.


원래 9월 중순으로 예상했던 휴가였기에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시기쯤에 여행을 가게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정이 계속 밀리고 밀리면서 결국 한 달 정도 뒤인 10월 초로 휴가가 결정되었다.


날씨를 찾아보니 10월이면 우기에 속했다.


하지만 동남아의 우기는 우리네 장마처럼 하루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스콜성 소나기가 쏟아지는 거라서 소나기만 지나가면 또 괜찮다고 한다.


찌는 듯한 무더위보다는 약간의 시원한 바람이 부는 우기가 우리에겐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여행을 결정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약간 시원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나라의 가을 느낌은 아니었지만, 여름에 비가 와서 조금 시원한 날씨 정도?


습하긴 했지만 기온이 너무 오르진 않아 적당히 괜찮은 날씨였다.


남편은 한국에서도 햇빛이 쨍쨍한 날씨보다는 약간 구름 낀 흐린 날씨를 더 선호한다. 더위를 무지하게 타기 때문에 조금만 더워도 금세 땀이 나서 그런 것 같다.


반면에 난 추위에 매우 약하고 기분과 컨디션이 날씨를 제법 타는 타입이라 흐린 날에는 왠지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쨍하고 맑은 하늘을 더 좋아한다.


10월 초 다낭의 날씨는 남편이 딱 선호하는 흐린 날의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다소 습하긴 하지만.


여행 시기가 자꾸 늦어지며 날씨 걱정을 제법 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우기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뭐든 장단점이 있는 게 아닐까.






우기라고 하지만 햇빛이 전혀 안 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여행 초기에는 우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비가 잘 내리지 않았다.


가끔은 하늘을 뒤덮은 구름들 사이로 햇빛이 강렬한 존재감을 뿜으며 나와 다낭의 건기를 잠시잠깐 느끼게도 해주었으니.


덕분에 한시장에서 쇼핑을 할 때도, 맛집을 찾아다닐 때도, 호이안의 골목골목을 걸어 다닐 때도, 호텔에서 수영을 할 때도, 다낭의 밤거리를 걸을 때도 건기보다는 제법 시원한 날씨를 즐길 수 있었다.


다낭에서 여러 거리를 걸으며 왜 남편이 흐린 날씨를 더 선호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끔씩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쬘 때마다 이 햇빛에는 거리를 걷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조금만 걸어도 습하고 뜨거운 기운에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의 땀샘은 자동 오픈되어 방금 씻고 나왔음에도 금세 찝찝해졌다.


흐린 다낭의 하늘이 고맙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동남아는 우기라고 해도 기온이 뚝 떨어지지는 않았다.


우기에도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이 가능한 정도의 따뜻함은 유지되었다. 또한 아침 산책을 다녀오면 어느새 내 몸에서 땀이 배어날 정도로 더운 건 비슷했다.


마치 한여름에 하늘에 차양막을 친 것 같은 시원함 정도랄까. 덥지만 햇빛은 없는 딱 그런 날씨.


옷도 반팔에 반바지.


임신으로 인해 몸의 온도 조절이 잘 안 되는 나는 얇은 긴팔을 하나 더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반팔 원피스 하나면 해결되었다.


뜨거운 햇빛을 힘들어하는 남편에게도, 쌀랑한 바람을 싫어하는 나에게도 다낭의 우기는 적당한 날씨였다.


한국은 이때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였는데 다시 따뜻한 나라로 가니 올해는 여름을 더욱 길게 즐긴 기분이 든다.






다만 여행 막판에는 이틀 내내 비가 와 계획했던 스케줄을 조정했던 적이 있다.


스케줄이라 해봤자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날 먼저 롯데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한시장으로 넘어가 마지막 쇼핑을 하고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전날 밤부터 너무 세차게 비가 오는 바람에 한시장은 포기하고 롯데마트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한국에서나 베트남에서나 역시 비 올 때는 쇼핑센터가 최고다. 먹을거리 살거리 구경할거리 쉴 거리가 다 있어서 하루종일 있어도 심심한 줄 모른다.


그리고 비가 너무 많이 오니 그렇게 많던 다낭 시내의 택시들이 잘 안 잡혀 한시장 근처의 마사지샵으로 가는데도 약간 애를 먹었다.


보통 그랩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택시를 부르면 10초가 지나기 무섭게 택시가 잡히는데, 그날은 그랩으로 한시장 근처의 마사지샵까지 가는 택시를 불렀는데 잡히는 택시가 없어 10분이 넘도록 어플이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결국 롯데마트 입구에서 택시요금을 호객하던 사람과의 흥정 끝에 그랩보다는 조금 비싼 가격을 주고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조금 난감한 순간이었지만, 이 또한 해외여행의 추억이지 않을까.






동남아 여행을 계획한다면 우기라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오히려 우기가 더 잘 맞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우리 남편의 경우는 하루종일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건기의 경우, 낮에는 호텔에서 한 발짝도 안 나왔을 수도 있다. 한국의 더위도 힘들어하는데 동남아의 고온다습을 견딜 재간이 있을까.


다낭 우기의 흐린 하늘이 그늘막처럼 선선함을 선사해 주었기에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기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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