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할 줄 모르는 임산부의 수영 도전기
새벽 비행기로 다낭에 도착한 후 호텔에서 1박을 한 다음 날이었다.
시차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져 허기진 배를 붙잡고 조식을 먹고 나니 그제야 다낭의 아침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밥을 먹고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아침 수영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남아 여행 와서 호텔에서 즐기는 수영이라니, 나의 여행 로망이 또 하나 이뤄지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래시가드를 야무지게 챙겨 입고 큰 타월을 챙긴 채 수영장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에겐 더욱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살짝 날이 흐리긴 했지만, 수영장에서 놀기에는 무리가 없는 정도였다.
바다와 이어지는 파아란 수영장을 눈앞에 두고, 순간 고민했다. 임산부인데 수영장 물에 들어가도 되나? 락스 물이 아기에게 안 좋은 건 아닐까?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해봤다.
임신 초기 수영장의 락스물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들이 있었다. 바다나 계곡, 강 등의 자연에서 흐르는 물은 괜찮을지 몰라도 수영장의 물은 고여있고, 락스 성분도 있고,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기에 장시간 입수 시 면역력이 약해진 임신 초기에 세균 감염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어떤 분들은 임신 기간 동안 수영장 잘 다녔다는 말도 있었다. 너무 뜨거운 물에 오래 있는 거만 아니면, 무리하지 않는 거라면 괜찮다는 말을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들었다는 후기들도 있었고. 물론 다른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봐야겠지만!
결국 우리는 장시간 말고 짧게 1시간 이내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즐기는 정도로 놀아보기로 결정했다.
수영장을 눈앞에 두고도 한참을 고민해야 하다니. 임산부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고민해야 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수영장으로 입수!
발부터 시작해 천천히 들어갔다. 물에 들어가니 시원하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수영장 물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 맛에 여행 오는구나~
보통 수영장에서는 수영을 하겠지만, 나는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총총걸음으로 열심히 수영장 안을 걸어 다녔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마음에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수영을 잘 못하기에 도무지 바닥에서 두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수영을 제법 하는 남편은 벌써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며 온몸으로 수영장을 즐기고 있었다. 부러운 마음에 따라 해보려 했지만 바닥에서 발이 떨어지자마자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기 바빴다.
수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제법 좋던 나에게 수영만큼은 쥐약이었다.
초등학교 육상부 선수도 하고, 중학교에서는 늘 운동회 계주 마지막 주자로 달릴 만큼 땅을 딛고 달리는 거에는 자신 있는데 물에만 들어가면 힘을 못쓰니 나로서도 답답한 심경이다.
예전에 강인지 계곡인지 어디 물이 흐르는 곳에 단체로 놀러 갔을 때가 있었다. 뭍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물 한가운데 큰 바위가 있어서 수영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거기까지 헤엄쳐가서 바위 위에 앉아 있기도 하는 그런 곳이 있었다.
일행들이 하나 둘 큰 바위로 놀러 가니, 나도 일행을 따라가고는 싶은데 중간에 발이 안 닿는 지점이 있어서 수영으로는 못 가고 튜브를 타고 다른 사람에 의지해 졸졸졸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렇게 따라간 바위 위에서 일행과 함께 놀고 쉬며 수다도 떨었다. 한참을 논 후에 다시 돌아갈 때가 되어 내가 타고 온 튜브를 찾으니 이미 그 튜브는 다른 사람과 함께 뭍으로 돌아간 후였다.
주변의 일행들이 하나둘씩 화려한 수영 실력을 뽐내며 뭍으로 돌아가는데 나 혼자서는 도저히 수영할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혼자 바위 위에 고립되겠다 싶어서 주변의 응원을 받으며 힘차게 바위를 발로 차며 앞으로 몸을 쭉 뻗었다.
발돋움으로 인해 어느 정도 앞으로 가는가 싶더니 더 이상의 동력이 없으니 그대로 몸이 가라앉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다리를 움직이고 팔도 열심히 휘저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대로 가라앉는 건가 싶은 순간 옆에서 수영을 하며 가고 있는 언니가 보였다. 그대로 언니를 붙잡고 늘어졌다. 내가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언니는 별안간 물귀신에 잡혔음에도 끝까지 나를 끌고 뭍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가끔 이때 이야기를 나누며 언니는 자신도 함께 가라앉을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때 온몸에 어찌나 힘을 줬던지 물에서 나오고서도 한동안 발에 쥐가 내려 온 발가락이 다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이렇게 수영은 나에겐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발이 땅에 안 닿는 위험은 없으니 수영을 한 번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수영장엔 남편과 나 단 둘 뿐이고, 남편은 수영을 제법 한다.
남편을 일일 수영강사로 임명하고 짧게 레슨을 받았다. 수영장 벽을 발로 차며 쭉 나가는 건 잘하는데 그 뒤가 문제다. 아무리 열심히 파닥거려도 자꾸 몸이 가라앉아 버리니 말이다.
내가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편이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선 앞으로 나갈 때는 몸을 대각선으로 기울여서 팔을 쭉 뻗고, 자신의 손을 배의 노라고 생각하고 물살을 밀어내고, 다리는 매우 빠르게 프로펠러처럼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케이, 이론은 숙지했어.
배운 대로 생각하며 다시 한번 수영장 벽을 발로 밀며 앞으로 쭈욱 나갔다. 이제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일 차례! 팔은 노처럼, 다리는 프로펠러처럼!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내 몸은 노와 프로펠러가 될 수 없다는 걸.
지금껏 수영을 왜 잘 못하나 생각해 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내 몸을 이끌고 갈 체력이 없는 것이었다. (물론 기술도 부족하지만.)
그렇게 한바탕 수영 강습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자유시간을 가졌다.
수영을 잘하면 어떠하리~ 못하면 어떠하리~
그냥 물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만 해도 이리 신나고 기분 좋은 일인 것을.
수영은 끝내 마치지 못한 숙제가 되었지만, 다음번에 또 도전해보리라.
그땐 새벽이(태명)와 함께 배우게 되려나.
그땐 또 어느 수영장에서 배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