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공무원의 고군분투 생존기
8급이 되기까지 2년 4개월이 걸렸다. 공무원 9급에서 8급으로의 승진 최소 연한이 1년 6개월인걸 보면 빠른 승진은 아니나, 내가 소속된 지자체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걸로 알고 있다. 8급이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의 내 선택이 있기까지 어떠한 시간들이 있었는지를 적고 싶어서 '그렇게 8급이 된다' 시리즈를 시작했다.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느낀 생경함, 어려움을 거쳐 적응기가 있었고, 적응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길을 고민했던 기간이 있었다. 고민만 하고 결정은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에 서있다.
최근 새로운 단어를 하나 알게 되었다. "샐러던트(Saladent)" 네이버에 샐러던트를 검색해보면 영어로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샐러리맨(Salaryman)'과 학생을 뜻하는 '스튜던트(Student)'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나온다.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거나 현재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즉 '공부하는 직장인'이라는 뜻이다. (출처 : 두산백과)
처음 이 단어를 알게 된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이 바로 샐러던트(Saladent)였다. 단어의 의미 그대로 나는 공부하는 직장인 되었다. 직장인이 공부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자기 계발, 승진, 이직 및 퇴직 준비 등. 이유가 서로 다른 듯 하나 한 가지 같은 공통점이 있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점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본인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한 준비도 있고, 나처럼 원하는 곳이 있어 이직을 하기 위한 준비도 있다. 공부하는 직장인 전략을 다른 말로 하자면 '투트랙(Two track)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시생 시절 공부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필기 합격을 한 적 있다. 그런데 내 점수는 딱 커트라인에 걸려있었고, 당시 필기합격자는 모집 인원보다 2명이 많았다. 이제 남은 건 면접인데, 지방직 공무원은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대부분 성적순으로 최종 합격을 한다. 그 말인즉슨 나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최종 탈락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면접 준비를 아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나 정말 호옥시나 면접을 통해 순위가 바뀌거나, 추가 필기 합격된 사람들까지 모두 최종 합격을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 때문에.
그래서 그때 선택한 것이 바로 투트랙 전략이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음번 필기시험도 준비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해서 에너지가 매우 많이 들었지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과는 당시 면접에서 최종 탈락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탈락이라는 충격의 여파는 컸다. 주말 내내 울었다. 그렇지만, 월요일부터 나는 다시 공부를 이어갔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필기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은 덕에 빠른 시간 내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3개월 뒤 치러진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서 최종 합격을 하였다.
공시생 시절 투트랙 전략을 선택한 것처럼, 직장인이 되어서는 샐러던트 전략을 선택했다. 단칼에 일을 그만두고 공부만 할 여건은 안되기에, 힘든 것을 알면서도 샐러던트가 되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요 며칠 경험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걸 느꼈다. 무언가를 하려면 체력이 먼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는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소모가 많고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샐러던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샐러던트였다. 직장인도 있고,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후 퇴근하고 휴식을 취하는 그 귀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러 모였다. 다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도전하고 준비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렇게 길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일까 싶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조금 늦은 것은 아닌지, 왜 나는 이제 와서 진로의 방향을 트는 것인지, 꼭 정말 새로운 길로 가야만 하는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그렇지만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살면서 두고두고 후회와 미련이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늦었다고 보일지언정, 다소 돌아가는 경향이 있을지언정,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첫날, 공부에 임하는 각오 및 마음가짐에 대해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이 자리까지 온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방향을 정했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성실하게 밀고 나가자.
민원의 무자비한 폭언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던 9급은, 1년을 몽땅 직장 생활에 갈아 넣고는 허무했던 9급은, 고민하고, 갈등하고, 안도하고, 발버둥 쳤던 시간을 거쳐 그렇게 공부하는 8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