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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Oct 16. 2020

친구가 자살을 시도했다.

부끄러운 일기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거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작가 중 한 명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뭐야? 왜 그래?”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이어진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설리가 죽었대” 아직도 그 순간의 정적을 떠올리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이 때로 너무 가까이에 있다.


방송작가를 시작하고 일이 년쯤 됐을 때, 당시 프로그램을 같이했던 MC의 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나이도 연차도 어렸던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소식을 전해 들었던 것 같다. 메인 작가 언니와 메인 피디가 급히 장례식장을 향하는 모습을 멍하게 봤던 것 같다. 엠씨라고 해도 나와 직접 말을 섞어본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기실에서 스튜디오에서 보던 먼 이였는데 그의 생을 휘청이게 한 죽음이 내 생에 낯선 방식으로 함께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그해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생애 처음으로 부산영화제를 갔다. 온종일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는 사이사이 바닷가에 앉아 멍 때리고, 밤이 되면 아침까지 술을 마시며 청춘을 즐겁게 낭비하던 시절. 숙취에 시달리던 어느 아침, 친구가 TV 뉴스를 보다 “뭐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최진실이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였다. 누군가 뒷통수를 홱 낚아챈 기분이었다. 그저 “왜”라는 의문만 가득한 채, 그날 본 영화에는 온통 최진실이 끼어들었다. 왜,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그리고 어제 요가를 가는 길, 친구로부터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야기가 담긴 장문의 메시지. 사실 얼마 전 친구와 말다툼을 한 터였기에 우리의 그 삐걱거림에 대한 일종의 해소의식(?) 같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글거리는 걸 못 견디는 편이라 “갑자기 뭐냐 ㅋㅋㅋㅋㅋ” 따위의 답장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마이솔 수련을 마쳤다.


수련을 마치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한 순간, 불안한 기운이 무섭게 엄습했다. 또 다른 친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오늘 00이랑 연락했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모든 친구에게 그렇게 마지막 인사 같은 메시지를 한 통씩 보냈고, 친구가 캡처해준 그녀의 카톡 프로필에는 오롯이 자신의 탓으로 떠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유서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제야 내가 받았던 메시지는 뜬금없는 화해 문자도 아니었고, 떠남을 준비하던 친구의 마지막 인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얘 전화도 안 받아. 설마 무슨 일 아니겠지?”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집으로 오는 내내 손이 떨렸다. 차마 전화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설마,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나는 두려움을 핑계로 또 비겁해졌다. 얼마 전 만나자고 했던 친구의 연락에 또 우울을 한 바탕 받아들고 지쳐 돌아오게 될까 봐 다음에 보자는 말로 외면했던 내가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친구는 마음이 오래, 많이 아팠다. 진료를 받으며 그녀가 회복되길 바랐고 여전히 바라고 있지만, 자꾸만 마음과 다른 길을 걷는 친구를 보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괴로웠다. 화가 났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같이 아프고 속상하고 응원하며 버텼지만, 이 모든 마음을 져버리려고만 하는 친구에게 화가 났다. 어느 날엔 손목을 그어 피투성이가 된 사진을 보내오고 어느 날엔 허벅지를 긋고 무심코 열어본 카톡 방에서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상황이 나아지길 바랐지만, 친구는 꾸준히 죽음을 이야기하곤 했다. 다 잘 될 거라고 버릇처럼 응원하는 한편, “미친년 너 죽으면 장례식도 안 가 죽긴 뭘 죽어”하며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야 내 장례식은 우울하게 하지 않을 거야 와서 좋게 술 마시고 가”하며 웃었다. 언젠가부터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이 자꾸 화로 바뀌었다. 지친다.


다행히도 어제 친구는 생을 떠나지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 그의 메시지에 불안함을 느껴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을 동원해서 찾았다고 한다. 어제는 그런 이유로 “경찰서야”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하루가 지난 오늘에야 걱정 끼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목에 상처가 남았다는 이야기를 단톡방에 털어놓는 친구에게 “많이 힘들었니? 조금만 더 힘내보자”하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나쁜 년인가보다. 티비 뉴스에 온갖 드라마에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렇게도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던데 나는 또 화가 났다. 왜, 왜, 왜, 자꾸 생사를 두고 그러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이렇게 많은데 왜. 왜, 자꾸 걱정시키는 거야. 하지만 화가 난다는 이야기를 차마 친구에게 할 수 없었다. 화가 나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나 너무 화가 난다”라고. 친구에게 “아 개빡쳐 존X 걱정했는데”란 답이 왔다. 부끄럽지만 그 한 마디가 내겐 위안이 됐다. 나도 속으로 한 마디를 더 뱉었다. 그러니까, 얼마나 걱정했는데.  


생을 마감하려 했던 친구가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엔 “엄마 같은 00아”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그동안 내가 수없이 잔소리를 해왔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어제의 일을 겪고 난 후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 가보란 말도 괜찮냐는 말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무턱대고 다 잘 될 거라고 응원할 수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할 수도, 구구절절 내가 화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고르다 보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썼다 지우며, 아무 말도 연락도 하지 않는 내게 친구는 섭섭하지 않을까. 서운해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제오늘 그렇게 친구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오늘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정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미팅 시간이 되어서야 왜 안 오냐는 전화를 받으며 내 일상에도 균열이 생겼음을 느꼈다. 그리고 또 화가 났다. 친구에게, 동시에 나 자신에게. 나는 그냥 비겁한 거다. 하고 싶은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그냥 회피하는 거다. 아마 나는 나쁜 친구인가보다. 얘가 또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겠지 때마다 불안해하며 지친 것 같다. 이기적인 부탁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살면,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오늘 하루는 모든 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저렇게 힘든데 나는 또 하루를 살아내겠다고 움직이는 게 우스웠다. 친구는 저러고 있는데 나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게 부끄러웠다. 오늘 하루 요가는 가서 무얼 하나. 뭘 위해서 또 매트 위에 서는가. 그러다 종일 무기력하게 있던 내가 떠올렸다. 아니다, 가자. 일어서자. 그렇게 또 마이솔 수련을 하러 갔다. 선생님의 구령도 없이 각자의 호흡을 따라 마이솔 수련장은 여기저기 숨소리로 가득하다. 이들은 무얼 위해서 여기 서 있는 걸까.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 무언가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나는 또 왜 매트 위에 서 있는 걸까. 언젠가 수업 시간에 어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요가의 수련 방법은 뭐가 그렇게 철학적인 걸까. 뭐가 그렇게 추상적인 걸까. 그냥 좀 쉬운 말로 할 수는 없을까. 그날 수련을 마치면서도 선생님이 의도했던 “마음을 몸 뒤에 두고” 수련하는 방법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몸 뒤에 두는 건 어떤 걸까. 그런데 생각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매트 위에 선 오늘, 어쩌면 그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음이 앞서면 자세는 쉽게 흔들린다. 때로는 몸의 흐름을 마음이 따라는 게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자 오늘 하루 매트 위에 서야 할 이유나 매트 위에 서지 않아도 될 이유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매트 위에서 해내야만 하는 몫도 없었다. 그냥 매트 위에 있음을, 지금의 순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생의 엄청난 희열이나 깨달음 같은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살아 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나는 살아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거친 숨을, 누군가는 가쁜 숨을, 누군가는 차분한 숨을, 저마다의 숨은 달랐을지언정 수련실을 가득 채운 숨소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모두가 살아, 있었다.


어쩌면 난 친구가 살아야 할 이유, 죽어선 안 될 이유 같은 걸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러니 죽지 마. 붙잡을 이유가, 친구를 설득할 이유가 필요했던 것도 같다. 가족, 친구, 사랑, 일 모두 이유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게 이유가 되면 친구는 살 수 있을까. 어제 새벽 친구에게 겨우 보낸 한 마디가 생각났다. 고르고 고르다 전한 한 마디는 “죽을 생각 말고 살아”였다. 말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썼다가 지우고 또 쓰고 다시 지워낸 문장엔 “죽을 생각 말고 살아”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 부끄럽게도 나의 살아있음을 느끼며 어제의 그 한 마디를 또 곱씹어본다. 마음 그대로 전해지기를.



비겁한 나는 구구절절 다 설명하며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지만, 겁이 많은 나는 내 말이 행여 독이 될까 멈춰 서고 말았지만, 이 마음이 어느 날에 닿아 우리가 함께 살아 있음에 감사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울한 마음이 친구의 몸을 앞서 이끌며 걷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친구도 마음을 몸 뒤에 두고 그저, 잘,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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