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는 요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사람 Nov 21. 2020

차크라사나가 왔다, 불안에 지지 말라고

전기세 12,310원. 인터넷 26,396원.. 어제 오늘사이에 빠져나간 자동이체 내역을 보며 생각했다. 아 며칠 뒤면 또 월세 내야 하는데. 통장잔고는 내게 여유로운 삶을, 여유로운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 프리랜서의 기본 옵션은 ‘불안’이다. 슬프게도 불안을 베개처럼 끌어안고 잠들어야 하는 삶이다. 난 이제 그만 불안해하며 살고 싶은데, 생활의 불안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일을 쉰 지 겨우 두 달이 되어간다. 겨우 두 달, 육십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인데 그 시간을 한 달 단위로 쪼개보면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핸드폰 요금, 보험금, 인터넷, 월세, 후불 교통카드까지 알차게 타이밍을 나눠 나를 쪼아댄다. 십만 원도 채 남지 않은 잔고를 보며 ‘일해야겠지’와 ‘일하기 싫은데’ 두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하지만 어느 마음이 이긴다고 해서 딱히 소용없는 게 프리랜서의 삶이다. 딱히 뭐 지금 자리도 없는걸. 영끌하면 버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친한 친구 중 하나는 나와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일주일만 쉬어도 불안해하는 나와 달리 지금 2년 가까이 일을 쉬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불안이 없다. 물론 동종 업계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나는 그 불안 없는 성격이 너무 부럽다.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몇일 날 뭐 빠져나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삶 역시 부럽다. 주위를 둘러보면 별거 아닌데 온통 부러운 것 투성이다. 나만 왜 이렇게 불안하게 사는 걸까. 


속상하게도 불안이 찾아오면 아주 쉽게 자존감을 다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하면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벽을 쌓고, 그 작은 틀 안에 나를 있는 대로 구겨 넣는다. 그 많던 질문들은 다시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래서 넌 앞으로 뭘 할 수 있는데?’ ‘앞으로 뭘 할 건데?’ 그 어려운 질문을 매일의 관문으로 받아들이며 솔직히 나는 자주 지친다. 남들은 쉴 때 자기 계발도 잘하고, 여행도 곧잘 다니고, 밀린 약속들도 잡으며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불안만 쌓이는가. 


친구들은 말한다. ‘야 네 경력이 뭐 어디 가냐’ 그렇게 듣다 보면 ‘그래 내 경력 나쁘지만은 않아’ 하다가도 ‘근데 뭐 좋지도 않아’ 하고 삐딱선을 탄다. 신이시여, 왜 나를 이리도 작은 마음으로 만드셨나이까. 그까이꺼 쯤!!! 하면서 호탕하게 사는 사람으로 좀 만들어주지. 되든 말든 지르면서 좀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어렸을 때는 나도 분명 뭔가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할까 말까 망설이고 될까 말까 맘 졸이는 콩알 같은 사람으로 자란 걸까. 



이거 해도 될까 내가? 이거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내가? 아주 구질구질한 각주가 붙는다는 게 불안의 가장 큰 폐해다. 평생 글 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신의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을 맘껏 재단하며, 결국 오늘 하루도 노트북 앞에 앉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지 하는 걱정만 또 밥 대신 먹었다. 그러다가 또 ‘그래 내가 착하게만 살지는 못했어도 악하게 산 인간은 아닌데, 센스 있게 살지는 못했어도 꼼수 쓰며 살아온 인생은 아닌데, 인생 어떻게 되겠지. 죽으란 법은 있겠어?’ 억지로 맘을 크게 질러도 본다. 


당근에 뭐 팔 거 없나 옷장을 휘릭 훑으며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맞다 400유로! 남자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은행에 가서 환전하는 대신 그의 400유로를 한국 돈으로 바꿔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나도 프랑스 갈 때 귀찮게 환전 안 해도 되니까 하며 바꾼 400유로였다. 지금 환율을 검색해보니 1,300원대 얼추 50만 원. 와 그래도 내가 50만 원 정도 되는 비상금은 갖고 있구나. 그게 또 위안이 됐다. 다음 달 월세까지는 어떻게 저떻게 막아볼 수 있겠어. 불안해하지 말자. 죽으란 법은 없는 거야. 


그렇게 불안과 함께 북 치고 장구 치는 하루를 보내고, 요가 갈 준비를 했다. 내가 유일하게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요가 매트 위에서의 시간. 내 삶이 불안한 건 불안한 거고, 그럼에도 그 매트 위에는 매일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의 설렘은 ‘세투반다사나’이다. 두둥- 드디어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마지막 진도를 받는 날. 세상에 내가 아쉬탕가 풀 프라이머리를 수련하는 사람이 되는 거란 말이야? 매트 위에서 몸개그만 하던 그 인간이!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다가 팔꿈치에 멍이 든 걸 발견했다. 뭐야 왜 멍이 들었지? 내가 차투랑가를 팔에 멍이 들 만큼 잘못하고 있는 건가 기억을 더듬다, 아 ‘가르바핀다사다’구나 했다. 파드마를 짠 다리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서 360도 굴러 올라와야 하는데, 아직 팔이 팔꿈치까지 완벽하게 들어가지 않는 터라 구를 때마다 나는 조금 과장해서 팔이 잘릴 것 같은 아픔을 참고 굴러 올라 온다. 어쩐지 복숭아뼈가 팔꿈치를 너무 찌르더라니. 아 몰라 멍들어도 좋아. 좋은 거 어떡해. 언젠가 멍 안 들고 팔 쑥 넣고 가볍게 360도 굴러 올라 올 수 있겠지. 내가 살면서 뭔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간다. 멍 들어도 간다. 


가르바 핀다사나
세투반다사나 / 차크라사나 (출처 : ashtangayoga.info)

그렇게 내게는 영영 먼일 일 것만 같았던 세투반다사나 진도를 받고, 선생님이 말했다. ‘차크라사나로 굴러 올라오세요’ ‘흐규흐규 선생님 저 아직 차크라사나가 안 돼요’ 그렇다, 나는 차크라사나가 ‘아직도’ 안 된다. 차크라사나는 아쉬탕가에서 누워 있거나, 다리를 머리 뒤로 넘긴 자세에서 (몸을 다시 앞으로 롤링해서 올라올 필요 없이 그대로) 뒤로 굴러 올라오는 건데, 쉽게 말하면 뒤구르기 같은 거다. 근데 매일 연습을 해도 난 뒤로 구를 때면 목에서 턱 막혀서 굴러올 수가 없는 거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내 엉덩이를 뒤로 쭉 당겨주면서 ‘팔로 밀면서’ ‘아니 배에 힘은 그대로 주고’ ‘아니 다리를 뒤로 밀고’ 하는데, 아니 선생님 그걸 어떻게 한 번에 해요. 팔로 밀면서 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뒤로 보내면서 이게 어떻게 동시 동작이 가능한 거냐구. 속으로 ‘안 돼요. 안 돼‘ 단언하면서 오늘도 다시 앞으로 굴러 올라올 준비를 하며 발을 뒤로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차크라사나가 되는 것이다. 뭐야 내가 어떻게 뒤로 굴러 올라온 거지? 찰나의 어벙벙함이 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데요. 뭐지? 이거 뭐야? 와 된다! 된다 된다! 마음속에는 또 시끌벅적한 낯선 아이가 와 있었다. 선생님은 ‘뭐야 할 수 있네요. 원래 그렇게 얻어걸리는 거죠’하고 쿨하게 사라졌다. 와씨 얻어걸려도 좋아, 우연이라도 행복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다음 차크라사나도 할 수 있게 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투반다사나 진도를 받은 것도, 아쉬탕가 풀 프라이머리를 수련하게 됐다는 것도 뒤로한 채 차크라사나가 갑자기 됐다는 게 난 너무 기뻤다. 그게 오늘 종일 자꾸만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되뇌던 내게, 나 자신이 주는 선물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할 수 있잖아 엉엉 왜 할 수 없댔어 엉엉하면서 찌질하게 울면서 집으로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혹은 쉽고, 집중은 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