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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Nov 13. 2020

유혹은 쉽고, 집중은 멀다

마음의 균형

무언가를 채우는 게 그저 행복인 시절이 있었던 거 같은데, 며칠째 텅 빈 한글창을 보며 이걸 어떻게 채웠었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거 같은데,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지? 텅 빈 한글창처럼 백지가 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지금 뭐하니.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나약해서 무능한 자신을 타박하기 전에 재빠르게 유튜브로 도망치는 내가 있었다. 다 봤던 드라마 명장면 모음집은 왜 또 보고 있는지, 잊고 있던 예능을 유튜브 알고리즘은 왜 이렇게도 잘 찾아주는지, 아 이거 다시 봐야겠다. 넷플릭스를 켜고, 왓챠를 열고, 왜 이리도 도처에 유혹인지, 눈만 바빴을 뿐인데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갔다. 


다시 한글창, 어 잠깐만 이거 내가 사고 싶었던 맨투맨인데? 광고 또 뜨네. 살까, 말까. 일단 클릭. 와 외투도 예뻐 바지도 예뻐 아니야 나 백수잖아. 맨날 집에만 있잖아 사서 뭐 해. 됐어. 다시 한글창. 아니 잠깐만 근데 지금 시간 말이 돼? 벌써 하루가 끝났다고? 야 이 도른자야, 그냥 한글창 말고 아무것도 열지 말라고. 늦었으니까 일단 자고, 내일은 꼭 지키자. 아니 근데 이 생각 어제도 하지 않았니? 오늘도 하루의 끝에서 “아무것도 안 한 너 정말 지겹다” 또 자존감 짓밟는 대사를 구간 반복으로 뱉으며 노트북 앞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스스로의 한심함에 면죄부를 주는 건, 요가뿐.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몸뚱이를 요가원에 데려다 놓는 일이다. 오늘도 무탈하게 이 한 몸을 요가원에 데려다 놓자. 그곳에선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다들 뭔가를 쏟아내는데, 내 안에는 뭔가가 쌓이는 기이한 경험을 하는 곳. 마이솔을 등록할 때만 해도 아쉬탕가 풀 프라이머리를 수련하는 날이 나한테도 올까?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부지런히 출석 도장을 찍었더니 어느새 ‘우르드바무카파스치마따나사나’까지 진도를 받았다. ‘세투반다사나’만 받으면 풀 프라이머리 진도를 다 받는 게 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몸개그 수준으로 하는 몇몇 아사나를 떠올리면, 선생님이 진도를 왜 벌써 여기까지 줬을까 싶지만, 염치없이 빨리 다음 진도를 받고 싶다는 욕심도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매트 위에 선다. 오늘 하루 차곡차곡 쌓인 부정한 생각과 나약한 마음과 자신의 못남만 증명한 하루를 비워내자. 내 안에 빛을 깨우자. 


하.지.만 - 

매트 위에서도 유혹은 쉽고, 집중은 멀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곁눈질한 눈에 양손 합장을 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서서 속으로 뭔가를 외는 이들이 들어왔다. 저들은 설마 오프닝 만트라를 속으로 혼자 하고 있는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야 저들도 똑같이 ‘오늘은 무슨 무슨 아사나 되게 해주세요’ 이런 생각 할지도 몰라.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저 내 안에 비겁함만 덜어내자는 다짐으로 오늘 섰건만, 에이 뭘 시작하기도 전에 부끄럽다. 그렇게 집중 못 할 때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수련하며 들었던 선생님들의 말들이 한마디씩 생각나는 것이다. “자 마음에 눈을 내 안에 두세요” 그래 마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집중, 마시는 숨에 손을 머리 위로 합장. 수리야나마스카라 A부터 시작한다.


요즘 수련하면 할수록 모든 아사나들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고쳐야 할 나쁜 버릇들만 생각나고 자꾸만 숨을 잊게 된다. ‘아, 또 어깨를 쓴 것 같네’ ‘손목에 기대버린 것 같아’ ‘등을 더 펴야지’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런 와중에 요즘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면, 너무 천천히 하지 말자는 것이다. 속도가 느려질수록 다음 아사나로 넘어가는 게 자꾸만 부담으로 다가왔고 ‘이다음엔 더 힘든 거, 또 더 힘든 게 기다리고 있잖아’하는 생각이 기어 올라와 몸을 축축 늘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집중을 못 해서인지 그런 날엔 집에 가는 발걸음이 찝찝했다. 아쉬탕가는 흐름을 중요시하는 수련이기 때문에 최대한 흐름을 깨지 않고 처지지 않게 에너지를 쭉쭉 밀어 올리자 다짐했다. 그런데 그게 또 삑사리를 냈다. 


자누쉬르샤사나 B (출처 : ashtangayoga.info)


어느덧 스탠딩 시퀀스가 지나가고, 자누쉬르샤사나B를 마무리할 때였다. 선생님이 다가와서 한 마디 하시는 거다. “다시 해 보세요” 응? 뭘까 내가 또 뭘 틀렸길래 다시 해보라는 걸까. 맞게 한 거 같은데, 긴장하며 아사나를 다시 이어갔을 때 선생님의 지적은 아사나가 아닌 ‘숨’에 있었다. “고개 들고 팔 풀기 전에 숨 내쉬고 그다음에 이어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고개를 든 후에 숨을 뱉지 않았다. 그러네. 숨이 젤 중요한데 숨을 안 뱉고 하고 있었네. 뜨끔한 내게 또 한 마디가 연달아 훅 꽂혔다. 



내가 또 중간을 제대로 못 찾고 달리기만 했구나. 너무 서두르지도 너무 늘어지지도 않고 다시 해보자. 다시 또 나와 약속을 하며 매트 위에 섰다. 그런데 중간을 찾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 또 너무 늘어져 버린 것이다. 빈야사할 때의 몸은 이미 천근만근, 한 번 늘어진 에너지를 다시 일으키는 게 내겐 너무 어려웠다. 어렵다는 이유로 그 중간을 찾지 못하고 늘어졌다 급해졌다 방황하는 동안 이번에는 더 정직하게 삑사리가 났다. 이번엔 부자피다사나였다. 


부자피다사나 (출처 : ashtangayoga.info)

이렇게 양다리를 양팔에 걸어 앞에서 발을 교차해서 잠근 채로 바닥에서부터 몸을 띄워야 한다. 그 상태로 몸을 숙여 턱을 바닥에 찍고 (턱을 찍...어야 하지만 난 아직 안 되니까 이마를) 다시 올라와야 하는 내게는 엄청난 고난의 아사나. 팔에 힘도 없고 몸은 무겁고 복부 힘은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호흡 하나하나가 숙제다. 그런데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그동안은 내려갈 때 살짝살짝 바닥에 발을 붙였다 떼면서 했는데 며칠 전부터인가 발을 붙이고 하면 쌤이 얄짤없이 다가와서 “발 떼고 해야죠, 내려와서 다시 하세요” 하시는 거다. 하 저도 정말 발을 떼고 싶은데 그놈의 발이 눈치 없이 자꾸 바닥에 달라붙네요.... 


그래서 요즘 나의 부자피다사나는 제발 발을 떼보자는 욕망으로 구성돼 있다. 여차저차 안간힘을 쓰면 휘청일지언정 내려갈 때만큼은 바닥에서 0.1mm라도 발이 떼고 있지만, 올라올 때 다시 와르르 무너진다. 안간힘에 안간힘을 써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착붙해버리는 나의 발이여. 그래도 해보겠다고 어제는 안간힘의 안간힘의 안간힘! 안간힘의 삼승 정도 썼다. 기반이 덜 잡혔건만, 넘어지고 무너지기 전에 후다닥 몸을 끌어 올리자. 그 과도한 욕심이 문제였는지, 준비되지 않은 몸은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였다. 역시나 바닥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발부터 매트에 닿았는데 사건의 시작을 알린 건 발가락이 만든 B.G.M이었다. 우두둑- 뭐야 지금 내 발가락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는데? 부러진 건가 설마? 아니야 그만큼 아픈 것 같지는 않아 일어나보자 으어어. 발가락을 또 짓눌렀네. 잠깐만 엉덩이는 왜 또 무겁니 아니야 그것까지 하지 말자, 하지 말라고!! 쿵- 매트 위에 엉덩방아를 찧고 내려오며 나의 욕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 그렇게 발가락을 다쳤다. 고작 5센치도 안 되는 발가락이 그 짧은 순간 내 온몸의 무게를 버텨냈으니 성할 리가 없지. 하지만 무식하게도 빈야사를 할 정도는 되길래 마지막 사바사나 전까지 발가락을 혹사시키고 말았는데, 오늘 일어나보니 허허 역시나 발가락을 굽히니 아프다. 빈야사를 하면 더 아프겠지. 도대체 어제 내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오늘 수련은 생략해야만 했다. 아픈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며, 난생처음 발가락 얼음찜질을 하며, 황당하게도 수련을 못 간 게 화가 났다. 하루 쉰다고 무슨 무슨 아사나가 더 안 되면 어떡하지? 이게 무슨 감정이란 말인가. 왜 이런 집착이 생긴 거지? 길게 보자 길게 보며 수련하자 생각하면서도 내일은 수련 갈 수 있을까 내일은 안 아팠으면 좋겠다 따위의 생각이 빠르게 쫓아왔다. 그때야 선생님의 한 마디가 다시 생각났다 “너무 급해요, 서두르지 마세요”


아, 내가 또 휘청이고 있구나. 수련에 성실하되,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사실 수련에 많이 집착한다. 어떤 아사나들은 빨리 됐으면 좋겠고, 사정이 생겨서 수련을 못 가는 날이 생기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화가 난다. 수입 0원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프리랜서의 업보인 불안과 무너진 자존감을 요가에 너무 기댄 탓인가보다. 처음엔 그저 무언가가 내 안에 막 쌓이는 에너지가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안 하는데 요가라도 열심히 해야지’ ‘해! 더 하라고’ 보채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런 집착하는 마음을 위해 수련을 시작한 게 아닌데, 그래 선생님 말대로 너무 급하다, 서두르지 말자. 이제야 제동이 걸렸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이렇게 그 마음을 기록한다. 그러고 보면 마이솔 수련은 참 신기하다. 매일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는데, 어느 날은 몸이 가볍고 어느 날은 무겁고, 어느 날은 안 되던 동작이 갑자기 되고, 어느 날은 잘 되던 동작이 갑자기 안 되고, 나 좀 늘었나? 싶어지다가도, 이 모든 게 우연으로 된 건가 긴장하게 되고. 어느 날은 수련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하는 걸음으로 경쾌하게 집에 돌아와 잠들 때까지 마음이 가벼운데, 어느 날의 수련은 아쉬움만 남아서 그날 하루가 내내 찝찝하다. 언젠가부터 내 하루의 기분이 수련의 만족도에 따라 좌우됐다.  



뭔가 잘 되는 것 같아서 앞서 나가게 되거나, 너무 안 되는 거 같아서 조급해지면 딱 그 중간을 찾아야 하게끔 매트 위에서의 숙제가 주어진다. 돌아보니 마음이 가벼웠던 날엔 그저 잡생각 없이 수련에만 집중했던 날들이었다. 얼음찜질을 하며 생각했다. 결국엔 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중간을 찾지 못해서 다친 발가락이구나. 요즘 요가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매트 밖에서 보내는 삶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서구나. 적당히 덜어내야 할 것들과 부지런히 채워가야 할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내는 일. 너무 욕심내지도 너무 겁내지도 않고, 너무 조급하지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게, 마음의 균형을 찾는 일. 결국엔 또 매트 위에서의 숙제가 매트 밖에서의 숙제와 다를 바 없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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