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 12,310원. 인터넷 26,396원.. 어제 오늘사이에 빠져나간 자동이체 내역을 보며 생각했다. 아 며칠 뒤면 또 월세 내야 하는데. 통장잔고는 내게 여유로운 삶을, 여유로운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 프리랜서의 기본 옵션은 ‘불안’이다. 슬프게도 불안을 베개처럼 끌어안고 잠들어야 하는 삶이다. 난 이제 그만 불안해하며 살고 싶은데, 생활의 불안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일을 쉰 지 겨우 두 달이 되어간다. 겨우 두 달, 육십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인데 그 시간을 한 달 단위로 쪼개보면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핸드폰 요금, 보험금, 인터넷, 월세, 후불 교통카드까지 알차게 타이밍을 나눠 나를 쪼아댄다. 십만 원도 채 남지 않은 잔고를 보며 ‘일해야겠지’와 ‘일하기 싫은데’ 두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하지만 어느 마음이 이긴다고 해서 딱히 소용없는 게 프리랜서의 삶이다. 딱히 뭐 지금 자리도 없는걸. 영끌하면 버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친한 친구 중 하나는 나와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일주일만 쉬어도 불안해하는 나와 달리 지금 2년 가까이 일을 쉬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불안이 없다. 물론 동종 업계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나는 그 불안 없는 성격이 너무 부럽다.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몇일 날 뭐 빠져나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삶 역시 부럽다. 주위를 둘러보면 별거 아닌데 온통 부러운 것 투성이다. 나만 왜 이렇게 불안하게 사는 걸까.
속상하게도 불안이 찾아오면 아주 쉽게 자존감을 다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하면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벽을 쌓고, 그 작은 틀 안에 나를 있는 대로 구겨 넣는다. 그 많던 질문들은 다시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래서 넌 앞으로 뭘 할 수 있는데?’ ‘앞으로 뭘 할 건데?’ 그 어려운 질문을 매일의 관문으로 받아들이며 솔직히 나는 자주 지친다. 남들은 쉴 때 자기 계발도 잘하고, 여행도 곧잘 다니고, 밀린 약속들도 잡으며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불안만 쌓이는가.
친구들은 말한다. ‘야 네 경력이 뭐 어디 가냐’ 그렇게 듣다 보면 ‘그래 내 경력 나쁘지만은 않아’ 하다가도 ‘근데 뭐 좋지도 않아’ 하고 삐딱선을 탄다. 신이시여, 왜 나를 이리도 작은 마음으로 만드셨나이까. 그까이꺼 쯤!!! 하면서 호탕하게 사는 사람으로 좀 만들어주지. 되든 말든 지르면서 좀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어렸을 때는 나도 분명 뭔가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할까 말까 망설이고 될까 말까 맘 졸이는 콩알 같은 사람으로 자란 걸까.
이거 해도 될까 내가? 이거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내가? 아주 구질구질한 각주가 붙는다는 게 불안의 가장 큰 폐해다. 평생 글 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신의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을 맘껏 재단하며, 결국 오늘 하루도 노트북 앞에 앉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지 하는 걱정만 또 밥 대신 먹었다. 그러다가 또 ‘그래 내가 착하게만 살지는 못했어도 악하게 산 인간은 아닌데, 센스 있게 살지는 못했어도 꼼수 쓰며 살아온 인생은 아닌데, 인생 어떻게 되겠지. 죽으란 법은 있겠어?’ 억지로 맘을 크게 질러도 본다.
당근에 뭐 팔 거 없나 옷장을 휘릭 훑으며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맞다 400유로! 남자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은행에 가서 환전하는 대신 그의 400유로를 한국 돈으로 바꿔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나도 프랑스 갈 때 귀찮게 환전 안 해도 되니까 하며 바꾼 400유로였다. 지금 환율을 검색해보니 1,300원대 얼추 50만 원. 와 그래도 내가 50만 원 정도 되는 비상금은 갖고 있구나. 그게 또 위안이 됐다. 다음 달 월세까지는 어떻게 저떻게 막아볼 수 있겠어. 불안해하지 말자. 죽으란 법은 없는 거야.
그렇게 불안과 함께 북 치고 장구 치는 하루를 보내고, 요가 갈 준비를 했다. 내가 유일하게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요가 매트 위에서의 시간. 내 삶이 불안한 건 불안한 거고, 그럼에도 그 매트 위에는 매일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의 설렘은 ‘세투반다사나’이다. 두둥- 드디어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마지막 진도를 받는 날. 세상에 내가 아쉬탕가 풀 프라이머리를 수련하는 사람이 되는 거란 말이야? 매트 위에서 몸개그만 하던 그 인간이!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다가 팔꿈치에 멍이 든 걸 발견했다. 뭐야 왜 멍이 들었지? 내가 차투랑가를 팔에 멍이 들 만큼 잘못하고 있는 건가 기억을 더듬다, 아 ‘가르바핀다사다’구나 했다. 파드마를 짠 다리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서 360도 굴러 올라와야 하는데, 아직 팔이 팔꿈치까지 완벽하게 들어가지 않는 터라 구를 때마다 나는 조금 과장해서 팔이 잘릴 것 같은 아픔을 참고 굴러 올라 온다. 어쩐지 복숭아뼈가 팔꿈치를 너무 찌르더라니. 아 몰라 멍들어도 좋아. 좋은 거 어떡해. 언젠가 멍 안 들고 팔 쑥 넣고 가볍게 360도 굴러 올라 올 수 있겠지. 내가 살면서 뭔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간다. 멍 들어도 간다.
그렇게 내게는 영영 먼일 일 것만 같았던 세투반다사나 진도를 받고, 선생님이 말했다. ‘차크라사나로 굴러 올라오세요’ ‘흐규흐규 선생님 저 아직 차크라사나가 안 돼요’ 그렇다, 나는 차크라사나가 ‘아직도’ 안 된다. 차크라사나는 아쉬탕가에서 누워 있거나, 다리를 머리 뒤로 넘긴 자세에서 (몸을 다시 앞으로 롤링해서 올라올 필요 없이 그대로) 뒤로 굴러 올라오는 건데, 쉽게 말하면 뒤구르기 같은 거다. 근데 매일 연습을 해도 난 뒤로 구를 때면 목에서 턱 막혀서 굴러올 수가 없는 거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내 엉덩이를 뒤로 쭉 당겨주면서 ‘팔로 밀면서’ ‘아니 배에 힘은 그대로 주고’ ‘아니 다리를 뒤로 밀고’ 하는데, 아니 선생님 그걸 어떻게 한 번에 해요. 팔로 밀면서 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뒤로 보내면서 이게 어떻게 동시 동작이 가능한 거냐구. 속으로 ‘안 돼요. 안 돼‘ 단언하면서 오늘도 다시 앞으로 굴러 올라올 준비를 하며 발을 뒤로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차크라사나가 되는 것이다. 뭐야 내가 어떻게 뒤로 굴러 올라온 거지? 찰나의 어벙벙함이 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데요. 뭐지? 이거 뭐야? 와 된다! 된다 된다! 마음속에는 또 시끌벅적한 낯선 아이가 와 있었다. 선생님은 ‘뭐야 할 수 있네요. 원래 그렇게 얻어걸리는 거죠’하고 쿨하게 사라졌다. 와씨 얻어걸려도 좋아, 우연이라도 행복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다음 차크라사나도 할 수 있게 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투반다사나 진도를 받은 것도, 아쉬탕가 풀 프라이머리를 수련하게 됐다는 것도 뒤로한 채 차크라사나가 갑자기 됐다는 게 난 너무 기뻤다. 그게 오늘 종일 자꾸만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되뇌던 내게, 나 자신이 주는 선물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할 수 있잖아 엉엉 왜 할 수 없댔어 엉엉하면서 찌질하게 울면서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