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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Apr 20. 2022

[쓰는 요가] AM 5:50, 아침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요가로 바뀐 아침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 나란 인간은 유전적으로 ‘롱 슬리퍼’에 ‘저녁형 인간’이었다. 맞아 난 진짜 밤에 더 생생한 인간이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아침까지 안 자는 게 더 수월한 쪽이었고, 날이 어두워지면 긴긴밤 홀로 이것저것 영화도 보고 일기도 쓰고 밀린 예능도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사부작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오던 그런 사람이었다.



수련을 가기 위한 나의 아침은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새벽 5시 50분이 되면 울리는 알림. 하지만 5분 뒤 다시 울리는 알람은 국룰이니까 5분 정도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10여분 안에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요가복으로 후다닥 갈아입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2번의 환승을 거치면 6시 45분에서 50분쯤 요가원에 도착한다. 1시간 반 정도의 수련을 한 후 20여분의 찐한 코골이 사바아사나와 함께 나의 아침은 가득 채워진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부지런하게 일어났으면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진 않았을 텐데.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심지어 고3 때도 매일 스쿨버스를 놓치기가 십상이었고, 그럴 때마다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택시비가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던 중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 엄마가 이불을 홱 낚아챘다. “네가 무슨 부잣집 딸인 줄 알아? 툭하면 택시타고 학교 가게?” 와- 그날의 팩폭이란. 그래서인지 수련을 마치고 올 때면 그날의 아침이 종종 생각난다. 고3 때도 이렇게 부지런한 아침을 보내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련을 가겠다고 전날 밤부터 컨디션을 조절하며 자발적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게 낯설고, 같은 이유로 기특해진다.


평범한 직장인들이라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싶겠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프리랜서이다. 불안정한 수입 패턴만큼이나 불안정한 수면 패턴을 가진 채 살아온 인생. 오후 출근을 한다고 하면 부럽다고들 하지만 “오후 출근 = 늦은 퇴근”은 공식이었고, 프리랜서에게 퇴근이란 퇴근이 아니지. 밤샘 대본을 쓰고 아침에 잠들거나, 혹은 촬영 때문에 새벽 4~5시에 기상을 하거나, 혹은 촬영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오거나, 말 그대로 불안정이 패턴이 된 삶이었다. 이렇게 문장으로 쓰고 보니 더 지긋지긋하네 허허허.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침형 인간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래서 마이솔 새벽 수련을 처음 시작했던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늦을까 봐 나름대로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찍 일어나 6시 20분쯤 요가원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가며 생각했지. 내가 제일 먼저 왔으려나? 그런데 웬걸. 문을 열고 나니 충격적인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련실이 가득 차서 나는 매트 펼 자리도 없었던 것. 뭐야? 내 시계가 잘못된 거야? 내 핸드폰 시간이.. 뭐지? 응? 6시 20분 맞는데?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선생님은 수련을 마친 이의 빈자리가 나올 때까지 잠깐만 서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순간 뇌 회로가 정지. 지금 6시 30분인데.. 지금 수련이 끝나려면 뭐야? 못해도 5시부터 와서 수련했단 건가? 그러고선 앞을 보니 꽤 많은 이들이 심지어 세컨 수련 중이었고, 프라이머리 중후반부를 수련하고 있는 이들이 다수. 그렇다면 못해도 다들 3~40분 전에는 도착했다는 거네. 내가 제일 먼저 일 거란 김칫국은 감히 어떻게 마셨던 것인가.



요가를 하지 않았다면 잠이나 자고 있었을 시간, 혹은 숙취에 미슥거리며 일어나 냉장고 문이나 한번 열어봤을 시간, 혹은 이때까지 마시고 있는 내 간을 칭찬하고 있을 시간... 정도였겠지만 너무나 강력한 ‘집단 부지런함’에 나는 그날 무릎을 꿇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수련하는 도반으로부터 5시부터 와서 수련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말에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지. 이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세계구나.


거기서 끝일 줄 알았지. 그런데! 그럼 선생님들은 언제 수련하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새벽부터 우리 수련을 봐주시는데 새벽 마이솔이 끝난 후에 선생님의 수련이 시작되는 걸까. 그럴 리가.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었다. 어나더클라스. 선생님 두분은 그보다 더 일찍 요가원에 도착해 각자의 수련을 마친 후에야 우리들의 수련을 봐주시는 거라고. 미쳤다. 뭐야 그럼 새벽 4시에 일어나시는 건가. 새벽 3시에 일어나시는 건가. 말도 안 돼....


그래서 내가 새벽 수련을 한다는 말에 누군가 부지런하다고 하면 속으론 ‘진짜 부지런한 걸 한 번 봐야지. 나는 암것도 아니여요’ 하며 부끄러워진다. 6시 45분에 요가원에 도착해도 이 부지런한 세계에서는 간당간당한 시간이다. 요가원에 가려면 2번이나 환승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지하철을 한 번이라도 놓친 날엔 마음이 다급해진다.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은 각자 선생님께 받은 진도까지 정해진 시퀀스를 매일 반복 수련하는 방식이다. 우르드바 다누라사나, 드롭백 컴업을 마치고 나면 선생님과 함께 후굴연습을 한다. 그 후엔 쭉 피니싱 시퀀스라 선생님은 후굴까지 봐주신 후에 귀가(?)를 하신다.


문제는 내가 늘 거의 마지막에 도착하는 수련생이라는 것이다. 한창 수련하고 있는데 옆에서 하나둘 매트를 접고 나가기 시작하면 마음이 어찌나 조급해지는지! 아직 우르드바 다누라사나까지 못 갔는데 드롭백 컴업도 해야 하는데 나 빼고 수련을 다 마친 것 같네? 어..? 다들 피니싱이네? 나밖에 없다. 나 기다리느라 선생님이 못 가시는 거지.. 싶을 때면 몸과 마음이 어찌나 조급해지는지.


그래도 새벽 수련이 일상이 된 덕분에 아침엔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매일 같은 시간 기상. 수련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수련일기를 쓴다. 에세이 같은 건 아니고, 오늘은 뭐가 됐다 혹은 안 됐다, 발가락을 잡았네 뒷꿈치를 잡았네,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이런 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내일은 이렇게 해봐야겠다 뭐 이런 기록들?


그래서 작년 이맘때의 수련 일기를 읽어보는 게 또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뭔가 아사나가 늘고 있긴 한 걸까 매일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은데 막상 작년 이맘때쯤의 수련일기를 읽어보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적어놓은 아사나들을 지금은 매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 식으로 적어놓은 일기를 마주할 때면 ‘그래 아사나 욕심내지 말고 그냥 하자 꾸준히만 하자 때 되면 알아서 온다’ 하고 마음이 저절로 다스려진다.


그리고 나서 샤워하고 밥을 챙겨 먹고 커피를 내리고 불어 공부를 조금 하고 유튜브도 보다가 빨래를 돌리고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나면 12시 . 그 후엔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다. 보고 싶었던 어제의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아침을 가득 채워 보내고 나면 오후에 좀 빈둥거리고 늘어져도 마음에 면죄부가 좀 생긴다. 그래도 오늘 열심히 수련했잖아. 됐어 오늘의 할 일을 다 했다! 기특해! 끝! 자학 금지. 내일 수련 준비하자. 뭐 이런 날들의 반복이다.


평생을 야행성 인간으로 살다 죽을 줄 알았는데 아침형 인간이 되고 보니 하루가 훨씬 더 풍요롭다. 그래서 난 반농담으로 요가를 시작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악인에서 선인으로 바뀌었다거나 엄청난 인생의 철학을 얻었다거나 뭐 그런 거창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아침까지 술이나 마실 줄 알던 아이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해 자신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수련 가야 하니까 늦게 먹지 말아야지, 술은 마시지 말아야지, 일찍 자야지 내가 나를 챙겨야 할 소소한 것들이 꽤 있다.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이 꽃밭이 된다.
매트 밖으로 나오면
다시 검은 물이 들기도 하지만.
꽃밭이 된 그 순간에 매트에 누워
마지막 사바아사나를 하면
정말 꿀이다. 꿀.
현실은 '설마 코 골았나?'
머쓱해하며 일어나지만
뭐 어떤가.
오늘도 내가 나를 잘 챙겼다.
이것이 내 하루의 첫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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