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으로 앉은 자세에서 가슴 앞에서 두 손 합장. 가슴을 위로 끌어 올리며 합장한 손을 턱으로, 이마로, 머리 위로 뻗고 그대로 두 팔을 머리 뒤로 넘겨 양손이 매트 바닥 터치. 그대로 손을 한 걸음 한 걸음 더 걸어들어와서 발 뒤꿈치를 잡고 팔꿈치는 벌어지지 않게 매트 바닥에 사뿐.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인간이 가능한 자세란 말인가.
카포타사나. 출처 : https://www.yogajournal.com/
지난 2월 아쉬탕가 세컨시리즈의 카포타사나 진도를 받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다음 진도를 못 받고 낑낑거리고 있으니 벌써 석달이나 되었구나. 덕분에 매일 아침 매트 위에서 극한 체험을 하고 있다. 혼자서는 아직 아사나를 만들지도 못하는 극한의 도전.
선생님은 손이 바닥에 닿을 때 정수리는 바닥에 닿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내려가라고 하셨는데 그것 하나만 해내기까지도 한 달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요즘엔... 내려가서는 무릎 사이가 더 벌어지지 않게 다리에 힘을 주라고 하셨고, 윗등을 끌어올려서 쓰라고 하셨다. 그대로 팔을 쭉 펴서 밀어내라고 하셨... 지만 사실 그 많은 말씀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이미 헬 컴 투 카포타월드에 있기 때문에. 어깨가 워낙 타이트한 편이라 손을 바닥에 짚는 순간부터 이미 어깨가 찢어질 것 같은데 선생님은 그때쯤 되어서야 각을 잡고 매트 옆으로 오신다.
어깨는 찢어질 것 같고 허벅지는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고, 숨은 배꼽까지 가 닿지도 못하고 가슴 앞에서 가쁘게 왔다 갔다 한다. 이제 그만 올라오고 싶은데 여기서 “한 걸음만 더” 하... 이대로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걸음마도 이렇게 힘들게 떼진 않았을 것 같은데... 살려주세요 카포타월드.
그렇게 애처롭게 바닥을 긁고 긁어서 겨우 기어들어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발가락 끝이 손을 겨우 스쳐 지나간 느낌에 ‘와 뭐가 닿긴 닿았네’ 찰나의 뿌듯함이 스치는 것도 잠시, 선생님께서는 내 손목을 하나씩 당겨서 발을 잡을 수 있게 핸즈온을 해주신다. 와.. 허벅지 터질 것 같다. 어깨 찢어질 것 같아. 숨... 숨... 살려주세요...
이렇게 죽을 것 같이 하는데 아직도 손이 발바닥이네. 발뒤꿈치는 언제 잡아볼 수 있을까. 선생님이 다 만들어주셔도 못 잡는 발뒤꿈치를 내 평생 혼자서 잡아보는 날이 이번 생에 오긴 올까. 그대로 매트 위에 팔꿈치가 닿는 순간, 타이트한 어깨는 그냥 떼어내고 싶을 만큼찢어질 듯 아프고, 허벅지는 불타 없어지는 느낌을 넘어 다리가 하얘지는 듯한 느낌이다. 눈앞은 핑 돌기 직전이고, 다섯 호흡을 어떻게 버티... 숨.. 숨... 아 정말 죽을 것 같다. 살려주세요. 누가 됐든 살려줘.....
링 위에 올라갔다 치면 난 이미 백기를 백만 개쯤 던졌는데 카포타사나 B도 남아있다. 그대로 팔을 쭉 펴서 가슴을 밀어내고. ‘와 나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래 죽진 않겠지만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몰라 몰라 숨만 쉬자. 이 모든 찰나의 순간은 지나간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겨우 호흡을 이어가는데 거기서 또 한 번!!!!!!!! 허벅지 힘을 있는 힘껏 쥐어짜서 매트 위로 상체를 세워 컴 업.
양다리로 온몸을 들어올려야 하는 부자피다사나를 할 때도, 양발을 목뒤에 거는 숩타쿠르마사나를 할 때도.. 선 채로 몸을 뒤로 후굴해 손을 등 뒤 바닥에 짚고 다시 올라오는 드롭백 컴업을 할 때도 이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는데 카포타사나는 정말 얼마나 힘들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들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매트를 펼 때면 양가감정이 올라온다. ‘와 아직 카포타사나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힘들어 벌써 하기 싫어’하면서도 ‘오늘은 카포타사나 언저리에라도 혼자 갈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정작 카포타사나를 하다가 턱 막히는 구간이 나오면 ‘몰라 그냥 하자 어차피 안 돼’ 하고 카포타사나를 마치고 매트 위에 다시 올라오면 ‘에라이 오늘도 안 되네’ 하다가 ‘됐어! 했어! 했잖아! 그냥 했으면 된 거야!“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언제쯤이면 할 수 있을까. 함께 수련하는 선생님 한 분은 카포타사나 다음 진도를 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어깨가 타이트해서 한의원에서 침 맞으면서 수련했다고. 아니 왜... 좋자고 하는 수련인데 그렇게까지 수련해야 하는 걸까 싶으면서도 내 어깨는 더 타이트한데 설마 나도??? 하 저 선생님이 1년 걸렸으면 나는 3년이면 될까. 아니 정말 이것을 이번 생에 혼자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냔 말이다.
요즘 지하철에서부터 집에 와서도 카포타사나 동영상을 미친 듯이 찾아본다. 영상 속의 선생님들 모습처럼 나의 상상은 “부드럽게 내려가 발뒤꿈치 잡고 사뿐하게 팔꿈치 안착. 가볍게 다시 올라오는 우아한 카포타사나”인데 정작 나의 그것은 “이영차 끄영차 에휴우우우우 헛!”으로 끝난다. 안 되는 거 알지만 나도 하고 싶어. 카포타사나가 되는 건 정말 뭔가 레벨이 다른 느낌이잖아. 뭔가 잘하고 싶단 말이야.
뭐가 불만족이냐. 요즘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정말 말도 안 되게 빨리 간다. 뭐 한 것도 없이 하루가 끝나있고, 정신을 차려보니 묵혀둔 여름옷 빨래를 시작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계절이 왔다. 오늘 하루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왜 벌써 하루가 다 갔어? 올해 뭐한 것도 없는데 왜 벌써 여름이 오려고 그래? 내 인생 뭐 이룬 것도 없는데 왜 벌써 마흔이 코앞이야? 무서운 의식의 흐름이다.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나이는 마흔을 앞두고 있다. 꿈만 꾸면서 도전은 안 하고 혐생사는 어른을 제일 한심하게 생각했었는데 세상에나!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자려고 누워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 나 자신에게 얼마나 쪽이 팔리는지. 어후 쪽팔려. 어후 후져.
내가 카포타사나를 할 줄 알든 말든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카포타사나가 된다면 나 혼자 마음속에 폭죽을 터트리며 기분 째지는 날들이 며칠은 가겠지. 그러니 내일은 거짓말처럼 뒤꿈치가 좀 잡혀주면 안 될까. 그렇게 카포타사나 동영상만 또 몇 시간을 보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싶어서 현타가 왔다. 저기서 가슴을 열고 어깨를 열고 어쩌고저쩌고하라고 하는 걸 우리 선생님이 말씀을 안 해주신 것도 아니고, 말씀해주신다고 한들 내 몸이 저렇게 아직 써지지도 않는데. “됐어 그냥 내일 가서 할 때 제대로 해” 하고 유튜브를 껐다.
그리곤 오랜만에 <요가 말라>를 다시 읽었다. 작년에 프라이머리 워크샵을 들으며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들을 교재인 책 곳곳에 적어두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무릎을 탁 치는 구절이 어찌나 많은지.
지난날 적어둔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보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래 요가가 결국 인생이구나. 사실 마음에 안 드는 건 카포타사나가 아니라, 마음대로 안 되고 있는 내 인생이지 뭐. 마음처럼 안 열리는 어깨, 가슴. 불안한 다리 힘. 내 꿈대로 안 흘러가는 인생. 불안한 삶. 수련을 하다 보면 매트 위가 세계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얼마나 어려운 여정인가! 결국 그걸 받아들이며 수련하는 것이 요가이고, 인생인 걸까.
요가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많은 선생님들이 비슷한 말씀을 해주신다는 걸 알게 된다. 몸을 쓰는 이야기들인데 정작 움직이는 건 마음이다. 그냥 해보라는 것. ‘된다 안된다 기대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오늘 한다고 해서 오늘 되는 걸 바라지 않아요. 그냥 해보는 거예요’ ‘각자 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가장 중요한 건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냥-수련을 할 수가 있는가. 되면 되는대로 기쁘고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짜증나고 힘들면 힘든대로 피하고 싶지. 하지만 결국 이 마음마저 받아들이는 것이 카포타사나가 주는 수련의 몫인 걸까.
이런저런 불필요한 살들을 떼고 나니 오늘은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지 않고 그냥 하자”란 마음의 말만 남았다. 내 맘대로 안 만들어지는 아사나도, 내 뜻대로 안 흘러가는 인생도 뭐 어쩌겠어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여야지 뭐. 그러니 그냥 하자. 하기만 하자. 너무 실망하지도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 그.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