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학교 다닐 때, 이 질문하는 게 무척 창피했다.
조용한 수업 시간에 겨드랑이까지 번쩍 드러내며 소리를 내는 건
잔잔한 연못에 바위를 내리꽂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후다닥 안 다녀오면 큰일을 보는 거라고
누군가 오해할까 봐 걱정도 됐다.
그래서 화장실은 반드시 쉬는 시간에만 친구들과 팔짱 끼고 가는 아지트였다.
화장실 출입여부를 교수님께 묻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을 지나
직장인 2년 차가 되던 해부터, 화장실 가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간단한 사생활 정도로 생각됐다.
설령 큰 일을 본다고 할지라도.
이때 처음, 어른의 길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어른이 됐다고 깨달은 몇 가지 근거.
관계의 끈끈함에 연연하지 않을 때,
내가 베푼 배려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을 때,
싫어하는 사람과 능청스럽게 눈 마주칠 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자존심 상하지 않을 때,
말과 행동을 나란히 할 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을 때,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을 때,
웬만한 건 웬만하게 넘어갈 때,
불현듯 스며드는 고독함이 싫지만은 않을 때,
누구에게도 내 색깔을 강요하지 않을 때,
멜로디보다 가사가 더 잘 들릴 때,
상대방의 눈빛에 담긴 내용이 보이기 시작할 때,
혼자 밥 먹는 게 쑥스럽지 않을 때,
양보하는 게 속 편할 때,
조건 없이 사랑할 때,
친구보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 때,
피곤한 몸과 고단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숨길 때,
연락처를 차근차근 정리할 때,
엄마, 아빠가 늙어가는 게 보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