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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Dec 25. 2020

7. 고급 액세서리

쉽게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


적은 월급에도 소득의 20%가량을 후원에 쓰고 있지만, 기부나 봉사 등 후원활동에 대한 내 인식이 마냥 좋지는 않다. 정부와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복지정책으로 지켜주어야 하는데 아직 그것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니 개인들의 선의에 기대어 그들의 금전과 노력을 통해 약자를 지켜주는 것. 이것을 나는 기부나 봉사라는 후원활동이라 본다.


기부나 봉사활동은 내가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활동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심리적 보상이 있을 것이고, 주변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후원활동을 고급 액세서리에 종종 비유한다.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하고 있으면 남의 눈에 띄고 본인의 자존감을 높여주니 말이다.


그런데 선의로 시작한 일도 보상심리에 의해 때론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누군가를 후원하게 되면 그 아이가 잘 자라서 자신에게 싹싹하게 행동하며 감사함을 느끼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 상황은 그리 쉽지 찾아오지 않는다.


2018년 JT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이지안(아이유)이라는 여성이 나온다. 여섯 살에 병든 할머니와 단 둘이 남겨져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꿈을 꿀 수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며 냉소와 불신만이 남은 차가운 성격의 21살 청년이다. 그런데 자신이 계약직으로 일하던 회사의 박동훈(이선균) 부장이 많은 걸 도와주자 이런 말을 한다


“내 인생에 날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거라 생각하진 마요. 많았어요. 도와준 사람들. 반찬도 갖다 주고, 쌀도 갖다 주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까지 하고 나면 다 도망가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 경멸하면서.. 지들이 진짜 착한 인간들인 줄 알았나 보지.”


2018년 JT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였다.


누군가를 돕기 시작하면서 후원자들과의 접촉면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후원을 중도 포기한 사람들을 보아왔기에, 이지안의 대사가 가슴을 후벼 팠다. 실제로 내 주변에 아이들을 돕던 몇몇은 나중에 그 아이를 비난하기 바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게 이런 귀띔까지 했다.


“내가 사람 잘 보는데, 저 아이는 나중에 커서 깡년이 될 거야.”


사람들의 변심이 안타까웠다. 미래가 무궁무진한데 소녀가 깡년이 될 것이 보인다면 후원자이자 어른으로서 오히려 잘 이끌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돈 몇 푼이나 지속적으로 후원해서 좋은 사람이란 평을 듣고 싶은 건가? 내색하진 않았지만 일부의 후원 이유를 의심하게 되었다.



한 번은 어느 지역에서 청년회장을 한다던 지인에게 연락을 받았다. 자신에게 수백억 자산을 가진 어떤 사업가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성공했고 나이도 들어서 이제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단다. 나를 소개해줘도 되냐기에 그러라고 했다.


통이 큰 사업가였다. 김 조카의 시설을 소개해주자 밥을 사고 싶다면 아이들과 선생님 인원을 물었다. 그리곤 버스 두 대를 대절하여 유명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파스타가 1만 5천 원 이상, 스파게티가 4~5만 원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수십 명의 밥을 사겠다니 고마웠다.


식당에는 키가 땅딸막하고 몸의 모든 부위가 두꺼워 보이는 60대 남자가 여유 있는 미소를 띠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를 했는데 손마저 두꺼웠다. 아이들을 만나는데 정장까지 잘 차려입은 걸 보고 성공한 사람은 만나는 상대와 상관없이 옷차림을 갖추는구나 생각했다. 식당에 앉자마자 내게 복지시설 현황 등 여러 가지를 묻기에.


“저는 여기 소속 사회복지사가 아닌데요. 제가 후원하는 조카가 있는 시설을 소개해 드렸을 뿐, 저도 후원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현황을 알려줄 만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찾았다. 그는 애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말할 기회를 달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회사 CEO라는 내용과 함께 어느 대학의 외래교수라고 쓰여 있었다. 나도 후원자 중 한 명일 뿐이라 대다수 애들은 나를 모를 텐데, 처음 보는 내가 누군가를 소개하는 건 애들 입장에서도 어색한 장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소개를 대신했다. 사업가는 식당 중앙에 서서 고개를 박고 자신이 사준 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 오늘 처음 본 아이들의 뒤통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 희망을 가지세요.”


아이들은 예의 바르게 “예”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식사 후 그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는 플래카드를 들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자리를 떠났고 그 후 연락은 없었다. 지방선거가 있던 때 온몸이 굵었던 사업가가 생각나서 그가 살던 지역구 기초자치단체 의원을 검색해 봤다. 사업가는 지역의 유력 정당 이름을 달고 당선되어 있었다. 성공하고 나이도 먹었으니 더 늙기 전에 좋은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단지 후원이라는 고급 액세서리를 차고 싶었던 걸까. 그 고급 액세서리가 선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 또는 이미지를 얻고 싶어서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쌀쌀한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들이 상처 받고 떠나는 후원자들도 있다. 한데 이미 아이들은 한 번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 줬으면 한다.  

누군가 다시 나를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떠난다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처럼 고마움 모르는 냉소와 불신만 가득한 채로 성장할 것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도 후원도 당신을 위한 고급 액세서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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