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김 조카를 후원하게 됐을 때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놀이공원도 같이 가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모르는 것도 가르쳐 줘야지. 청년 장발장이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자라게 도와줘야지. 이런 설렘으로 주변에 많이 소식을 알렸다. 국내 아동 결연 후원도 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는데, 50대 사업가 부부가 특히 관심을 보였다. 나보다 20배는 더 벌 텐데, 자신들은 한 달에 3만 원 기부하고 뿌듯해했다며 부끄러워했다. 국내 아동 결연 후원을 주선해 달라고도 했다.
나도 막 후원을 시작한 터라 아직 보육원 직원분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좋은 일이니 기꺼이 응했다. 시설에 두 부부의 경제력과 아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혹시나 마음에 들면 ‘입양을 할지 어찌 알겠냐’며 조금 포장을 했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1학년 여아를 소개해 주었다.
‘어라? 내가 요청했을 땐 없다며?’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후원자가 없었던 남자애를 연결해 주고, 이 부부는 내가 원하던 조건의 어린 여자애를 소개해 주다니. 역시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봐 의심했었나 보다. 조금 섭섭하지만 이해도 됐다. 사회복지사들은 아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기 위해선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고 젊은 남자가 어린 여자애를 후원하게 해 달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막상 아이에 대한 소개를 듣다 보니, 내가 이 소녀의 후원자라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소녀, 조카 S는 4남매 중 첫째였다. 자기 밑으로 남동생 셋이 있다. 그런데 그 남매들의 성이 다르다. 아이들은 부모의 방임을 신고한 이웃 덕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카 S가 겨우 7살 정도였고, 동생 중 둘은 갓난아기였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무책임하게 아이들만 방에 가둬 놓고 일을 하러 다녔다.
조카 S의 4남매 얘기를 들으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 작, <아무도 모른다>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엄마는 4남매를 집에 두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만 남긴 채 어딘가로 떠나 버린다.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돈이 떨어지자 먹을 것을 살 수 없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전기와 수도까지 끊긴다. 아이들은 정말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소재로 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감독이 연출이 아이들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해서 그렇지, 실제 사건은 엄청 끔찍했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이 슬펐음에도 그 끔찍한 현실에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아무도 모른다>의 한국 현실판 주인공들을 소개받고 있다.
어른이 없는 공간에 말 못 하는 동생들과 갇혀 있다 보니, 조카 S 역시 7살임에도 말을 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언어치료부터 받았다. 사람을 대할 일이 없었으니 사회성도 부족했다. 마치 야생동물 같은 사나움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짐승처럼 사람을 깨물고 할퀴었다고 한다. 처음 조카 S를 만났을 때, 보조개가 들어간 귀여운 볼살과 달리 눈에서 레이저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늑대소녀가 앞에 있는 기분이었다.
KBS 드라마 <굿닥터>에 나왔던 늑대소녀, 드라마 설정에선 반응성 애착장애가 있었다.
다행히 50대 사업가 부부에게 소개했을 때는 언어치료를 한 터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사업가 부부는 아이를 보고 사정을 들은 후 동정심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서 나도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아이의 무뚝뚝함과 공격성에 실망했는지, 따로 찾아가 만나지는 않았다. 결국 주선자로서 책임감 때문에 내가 김 조카와 함께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언젠가 조카 S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무책임한 부모라도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을까? 한 번 씩 보러 오지 않을까? 부모가 찾아온다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머리가 짧은 아이처럼 돈 많이 벌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할까?
그러던 차에 마침 후원자들을 위한 밤이 열렸다. 나는 김 조카와 조카 K 등 김 조카의 시설 친구들, 그리고 조카 S가 함께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조카 S에게 직접 부모에 대해 묻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내 옆에 앉은 김 조카에게 귓속말로 조용히 물었다.
“조카 S의 부모님이 한 번씩 찾아오시니?”
헌데 김 조카는 조심성이 없었다.
“어? S, 부모님이 있어요? K야, 너는 부모님 있니?”
“아니,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기 있어서 그런 거 없는데? 너는?”
“나도 너랑 똑같잖아. 야! S, 너 엄마 있었어?”
김 조카와 그 친구들은 조심성 없이 조카 S에게 물어보았고, 고아라는 자신의 처지마저 농담 취급하며 깔깔댔다. 물론아이들의 그런 웃음과 농담 속에 눈물자국이 보이는 듯했다. 조카 S는 얼굴이 벌게져서 식탁 아래로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너무 경솔했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너무 몰랐다. 조카 S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 그 와중에 송년의 밤 이벤트를 진행하던 마술사가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한 아이를 무대 위로 불러 냈다. 그리고는 마술에 필요하다며 이렇게 물었다.
“엄마, 아빠 어디 계시니?”
어이쿠야.. 없는 엄마, 아빠를 마술로 만들어 줄 건가?
내 실수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하던 차에 마술사의 실수마저 더해지니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가정에서 자라난 우리는 아직 너무도 모른다. 사회복지 시설에 대해서, 그리고 이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