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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Dec 26. 2020

9. 어머니의 마음으로

옷장 속, 버리지 못하는 코트

“쌤(선생님), 언제또와여?”


페이스북 메신저가 울린다. 김 조카다. 카카오톡을 보내도 녀석은 잘 확인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쓴다. 또래가 다 이런 걸까? 맞춤법, 띄어쓰기 또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아이만 특수한 걸까? 단지 세대 차이라고 믿고 싶다.


묻는 것은 항상 ‘언제 또 오냐’ 뿐이다. 내가 좋아서가 아니다. 우선 나를 만나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 나는 크게 뭘 간섭하지 않으니 편할 거다. 나가서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고.


녀석은 일요일 오후에 만나길 원했다. 오전은 교회에 나가고 오후에는 보육원 단체 청소 시간이라, 오후에 만나면 청소를 빠질 수 있어서다. 후원자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준다는 건 녀석에서는 어깨뽕이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 조카 S를 데리고 나갈 때, 눈 끝이 쳐진 여서 일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언니야. 좋겠다.”라고 말하던 게 떠오른다.


만나면 필요한 걸 사줬다. 그러나 시설의 규칙과 그곳에서 공동생활하는 아이들의 감정까지 배려해야 했다. 너무 좋은 걸 사주면 다른 아이들에게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보육원에서도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사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건 김 조카의 바람과는 다르다. 김 조카의 자존감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 한 번은 스포츠 용품 매장에 코트를 사러 갔는데, 김 조카의 시선이 40만 원 대 물건에 가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20만 원 대 코트조차 내 돈 준고 사본 적이 없다.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인터넷 이월상품으로 10만 원 이하 가격까지 내려오면 산다. 


물론 40만 원 코트가 하나 있긴 하다.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처음 사주신 거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매장을 다녀도 20만 원 대 코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내 마음을 읽으시고 그 코트를 사주셨다. 당시 우리 집 형편에는 과한 가격이었으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셨을지 상상되었다.


그 감사함을 떠올리며 나도 어머니의 그 마음을 조금 가져보고자 노력했다. ‘내 아들이 싸구려 코트를 입고 가면 친구들이 무시할 텐데.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저걸 사주어야 겠다.’ 하고 마음먹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다행히 할인기간이라 30만 원 대로 살 수 있었다. 


일단 사고 보니 또 시설의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그 아이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 그래서 가격표를 바로 떼어 버렸다. 그리고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라며 말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물어보면 40만 원에 샀다고 말해. 그리고 시설에는 30만 원 짜린데 할인 많이 받아서 20만 원에 샀다고 말하렴.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다. 삼촌하고 보육원 선생님들하고 신뢰가 깨지면 다음엔 이렇게 못 사주니까.”


 주변에서 후원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런 어려움을 말하면, 다들  ‘그러다 버릇 나빠진다. 싼 거 사 줘라.’라고 조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말했다.


“유행에 민감할 사춘기예요. 브랜드 없는 싸구려만 사준다면 또래 친구들에게서 소외될 거예요. 평범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본인이 요구하지 않아도 부모가 때가 되면 적당한 걸 사줘요. 하지만 이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저 밖에 없어요. 한두 달에 한 번 밖에 못 만나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걸 사준다고 해도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할 거예요. 아이라도 자기 욕망을 분출할 해방구 하나 정도는 있어야죠. 녀석이 저를 만날 때마다 산타클로스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당장은 감사함을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이 봐도 고작 한 달에 한 번인데, 그때마다 아끼는 모습만 보여주고 잔소리만 늘어놓는다면 신뢰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내가 너의 편이다 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내게 해주신 감사함을 떠올리며 인내해야 했다. 

이제 유행이 지나서 입지도 못하는 40만 원짜리 코트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 옷장에 걸어두고 있다. 김 조카에게 큰돈이 쓰일 때마다 나는 그 코트를 떠올린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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