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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Dec 04. 2020

2. 머리가 짧은 아이

초등학교 짝꿍의 생일파티


영화나 드라마 속에선 검사와 변호사가 침을 튀기며 설전을 벌인다. 방청석에선 야유가 쏟아지고 이에 판사가 망치를 두드리며 “모두 정숙하세요!”하고 큰 소리를 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단 망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건은 큰 공방 없이 5분에서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판단을 해야 하는 판사나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검사·변호사는 지겨울 여유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나는 이 시간이 지겨울 때가 많다. 나는 법원서기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살아온 내가 법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법원에 근무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적성에 안 맞는 건지, 그래서 법정 안에서 종종 딴생각에 빠지거나 졸기도 한다.



오늘도 졸음을 쫓아내려고 기록을 뒤적인다. 특수상해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운행 중인 두 차량이 서로 끼어들기를 하면서 다툼이 있었다. 한 차량이 도로 한가운데서 다른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곤 막아선 차량의 운전자가 트렁크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그 야구방망이로 뒷 차를 부수고 운전자를 폭행했다.

‘이거 뭐.. 조폭영화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기록을 넘기려는 순간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뒷 차의 블랙박스를 통해 찍힌 정지화면 속, 앞 차량의 뒷좌석에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실루엣이 보인다. 이 아이는 누굴까? 아무 일도 없었을까? 사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록을 더 넘겨 본다. 피고인은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이다.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초등학생인 어린 딸을 데리고 살고 있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이런 정신적 불안과 폭력 성향으로 이미 전과도 있다. 피고인은 현재 구속상태다. 그럼 딸은 어디에 있을까? 문득 초등학교 짝꿍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짝꿍에게 생일파티 초대를 받았다.  별로 친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다니던 학교엔 큰 주택에 사는 부잣집 아이들이 많았기에 집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생각했다.


나는 짝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선 짧은 머리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여자 짝꿍인데 나만 남자 짝과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자애들을 뭔가로 홀리는 게 만드는 이상한 능력을 보유한 미용사 아주머니가 우리 동네에 사는지, 학교에 남자처럼 머리가 짧은 여자 아이가 제법 많았다.


수업을 마치고 청소시간이다. 어김없이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형이 우리 교실 창문을 닦아주러 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키와 팔이 짧다. 교실 바깥쪽 창문을 닦으려 몸을 밖으로 꺼냈다간 추락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학교에선 저학년 교실의 바깥 창을 고학년들이 대신 닦게 했다.


우리 교실 창을 닦아주는 형은 5학년이었는데, 말수는 적지만 소위 미소년이었다. 형은 요령을 피우거나 동생들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표정도 항상 밝고 성격도 상냥했다. 아마도 유복한 집에서 자라서 저렇게 밝으리라 상상했다. 유일하게 더벅머리가 거슬렸을 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향해 말없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준다.


청소를 마치고 짝꿍이 알려준 집으로 찾아갔다. 입구가 무척 컸다. 대문짝.. 아니 이건 거의 학교 건물 수준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운동장이 나왔다. 이게 뭐지? 정말 대저택인가? 생일파티는 지하식당에서 한다고 했다. 지하실도 있는 대저택이라니. 식당은 넓고 음식도 사람도 다 많았다. 학교에서 나랑 친한 친구들도 몇 보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파티를 정말 크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짝꿍 혼자만의 생일파티는 아닌 것 같았다. 단체 생일파티.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어른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


조금 눈치를 보고 있다가 짝에게 물었다.

“근데.. 엄마·아빠는 어디 계셔?”


순간 이 머리가 짧은 아이의 눈에서 왕사탕만 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쿵쿵!”


누군가 나를 깨운다고 책상을 발로 찼다. 딴생각을 하다가 잠시 졸았나 보다. 다시 기록을 뒤적인다. 어디까지 봤더라. 아! 피고인의 초등학생 딸의 행방을 찾고 있었지. 2차 피의자 신문조서를 넘긴다. 추측한 대로 딸의 행방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씁쓸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는 좋은 의미로 통용된다. 그런데 내게 법이 없어도 산다는 평가는 규칙을 잘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걸 혐오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피고인들에게 좀 냉정하다. 누군가 죄를 짓고 사정을 하소연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요.”


그런 오늘은 그런 기분이 아니다. 피고인을 동정하는 건 아니다. 피고인도 동정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며 자신에 대한 법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피고인을 선처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가슴속을 파고든다.


피고인의 어린 딸이 걱정되어서 일거다. 하지만 피고인은 비슷한 전과도 있고 피해자도 많이 다쳤다. 풀려 나기에는 죄질이 안 좋다.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2주 뒤로 선고기일이 잡혔다. 피고인은 90도로 인사를 하고 구치소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법정에서 퇴정 했다.




짝꿍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빠가 나 다시 데리러 온댔어! 돈 많이 벌어서 꼭 데리러 온다고 했어.”


아.. 나는 그날 처음 보육원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다. 내가 고아원으로 알고 있던 곳은 보육시설이고, 고아뿐만 아니라 여러 사정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함께 생활한다는 것을 알았다. 짝꿍의 아빠가 정말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딸을 사회복지시설에 맡겨두고 돈을 벌러 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짝은 그렇게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특수상해의 피고인 경찰을 통해 자신이 구속될 것을 예감한 듯하다. 그래서 딸을 사회복지시설에 맡겼다. 어린 딸에게 구속된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가 멀리 돈 벌러 간다고 했을지 모른다. 돈 많이 벌어서 데리러 온다고도 했을 것이다. 물론 딸이 거짓말임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진실을 알고 있다 하여도 돈 많이 벌어오겠다는 아빠의 말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선고기일이 기다려진다.




어느새 2주가 지나 선고 기일이 찾아왔다. 판사는 특수상해를 저지른 피고인의 범죄사실, 증거의 요지, 양형에 대해 긴 설명을 무감정하게 덤덤히 이어갔다. 그리곤 판결을 내린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다음과 같이 형을 선고합니다. 피고인을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3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피고인에게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한다.”


귀를 의심했다. 집행유예 판결이다. 피고인은 이제 곧 풀려난다. 피고인을 바라봤다. 피고인도 고개를 들어 우리 쪽을 바라봤다. 그리곤 눈이 벌게져서 고개를 다시 숙였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이 뭔가 참는 모양이다. 참는 것은 눈물이었으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집행유예를 선고를 받아 자유인이 다시 돌아간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안도감과 함께 떠올렸을 누군가. 그가 참고 있는 눈물이 자신의 딸을 향한 것이리라 나는 추측한다.


못 벌고 돌아왔으면 어떠하며, 죄를 짓고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아빠면 어떠한가. 식판으로 밥을 먹고 어색한 이들과 어울려 자야 하던 딸이 아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부족한 아빠라도 약속대로 자신을 찾아 돌아와 줄 텐데.  나 역시 안도했다. 초등학교 짝꿍의 기억이 다시 소환되었다. 머리가 짧았던 짝꿍에게 전해지지 않을 안부를 마음속으로 건넨다.


 “아빠랑 잘 지내지?”





짝꿍의 생일파티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어찌어찌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다 이제는 대저택으로 보이지 않는, 이곳 보육원의 운동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교실 창문 청소를 도와주는 더벅머리의 미소년 형이었다. 형은 다정하게 어린아이들과 공놀이를 해주고 있었다. 아까 지하에서는 못 봤는데, 형도 생일파티에 초대받았었나 보다. 큰 소리로 “형!” 하고 부르며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이상한 공기를 감지했다.

주변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뿔싸..

내가 지금껏 무슨 실수를 했던 건가.

형이 아니었다.



그녀도 역시 머리가 짧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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