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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Dec 10. 2020

3. 쇼핑몰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맙시다.

“좀 깎아 주이소.”

“이 정도 금액이면 안 되겠습니까?”

“요새 증말 힘듭니더. 좀 깎아 주이소.”


낡은 갈색 가죽점퍼를 입은 아저씨가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뒷 좌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에 찬, 또는 긴장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높은 책상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남자가 서류와 아저씨를 계속 번갈아 본다. 갈등하고 있음을 누가 봐도 안다. 나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다.


여기가 쇼핑몰이냐고? 아니다. 이곳은 형사법정이다.


징역형처럼 신체의 자유를 박탈해야 할 만큼 죄질이 무겁지 않은 범죄라면, 검찰에선 피고인을 벌금형으로 처벌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한다. 그러면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서류만으로 피고인을 벌금형에 처할지를 결정한다. 약식으로 처리한다고 해서 이런 형태의 형사재판을 약식명령이라고 한다.


약식명령 벌금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는 걸 정식재판 청구라고 한다. 본인이 정식으로 재판을 열어 달라고 하였으니 법정에 출석하여 검사와도 대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식재판 청구 재판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보는 형사재판의 엄중함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돈을 얼마나 내느냐가 중심이라 그런지, 지은 죄에 대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못 부과된 과태료나 공과금을 내는 정도의 경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전화로 따지거나 일단 이의신청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 많다. 벌금을 흥정을 하려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럼 벌금을 20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낮추어 드리겠습니다.”

고민하던 판사가 흥정에 응한다. 방청석에서 자기 사건을 기다리는 피고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 판사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오늘을 할인행사 날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는 이 액수에도 만족 못한다. 더 깎아 달라고 한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 판사가 더 물러설 뜻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법정을 나간다. 그러나 잠시 후 컴퓨터에 항소장이 접수되었다는 알림 창이 뜬다. 항소심에서 조금 더 흥정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첫 사건 벌금을 깎아주니 다음 사건의 피고인들도 모두 벌금을 깎아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마음이 여린 판사와 피고인의 흥정 속에 재판은 예정보다 두 시간이 더 흘러서 마쳐졌다.



한 달 후,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판사가 왔다. 원칙론자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첫 회식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혹시나 하는 오해를 사기 싫어서 변호사 친구들한테 제가 형사 재판장으로 있는 2년 간은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일단 재판을 보면 원칙론자라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얼마를 더 깎을 수 있을지 흥정하던, 쇼핑몰 같던 법정의 모습이 사라졌다. 음주운전 사건이라면 판사는 단호하게 음주수치, 전과 등에 따른 양형 구간을 설명하고 그 구간 안에서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고 마음씨가 나쁜 것 같지도 않았다. 사회적 약자는 배려했다. 차를 몰지 않으면 이동조차 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경우 검사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 최대한 선처를 해줬다. 설명도 다 하고 상대 얘기를 다 들어주고도 자로 잰 듯 정시에 재판이 끝났다. 항소율도 낮아졌다.


하루는 어떤 아주머니는 법정으로 들어오다가 놀란 눈을 하며 잠시 멈춰 섰다. 판사가 말했다.


"저 아시지요?”

아주머니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판사와 서로 마주 보고 허허 웃더니 재판을 취하하고 갔다. 예전에 서울에서 이 판사에게 재판을 받았는데, 부산까지 내려와 똑같은 사고를 친 것. 하필 이 원칙론자를 다시 만났으니 굳이 결과가 뻔한 걸 시간 들여 재판받을 필요가 없었나 보다.


일전에 가격 흥정을 성공했던 아저씨도 얼마 후 다시 법정을 들렀다. 형사법정이 단골손님을 좋아할 리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뀐 판사는 그의 흥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 아저씨가 기록을 정리하는 내게 와서 물었다.

“전에 판사님은 잘 깎아 주시더만, 이번 판사님은 와 안 깎아 줍니꺼?”


내가 답했다.

“여긴 쇼핑몰이 아니니까요.”




장발장 청년과 머리가 짧은 짝꿍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둘의 공통점은 가정이 튼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명은 부모에게 완전히 버림받았고, 다른 한 명은 부모가 자식을 부양할 능력이 안 되었다. 그리고 둘은 보육원에 맡겨졌다. 어쨌든 이렇게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사회가 보호해 주어야 하고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보육시설이다.


하지만 보육시설이 제대로 돌보기는커녕 학대를 해서 탈출한 게 장발장 청년이었고, 시설에서 정상적으로 보호를 해줬지만 가슴 한편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 쪽이 머리가 짧은 아이였다.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관련 법을 만들며 감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입법자나 행정기관의 역할이다. 여기에 당장 개인의 역할은 없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국내 아동 결연 후원을 하고 싶습니다. 보육원에서도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긍정적인 답변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후원은 밥을 먹거나 출근하는 것처럼 생활 필수영역이 아니다. 바쁘다 보면 후원 아동을 찾아가는 일을 뒤로 미룰 게 뻔하다. 그래서 부모님 댁 근처의 보육원을 찾았다. 부모님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뵈러 가니, 그때 후원 아동을 만나러 가면 좀 덜 소홀해 질거라 생각했다. 미루다 보면 마음이 떠날 것 같아 퇴근 후 바로 보육원으로 향했다.



보육원으로 향하면서 궁금해졌다. 장발장 청년에게는 후원자가 없었을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후원자가 있었다면 보육시설에서 그렇게 학대할 수 있었을까? 어린 장발장이 보육시설의 정상적인 관리 속에 후원자의 지원까지 받았다면 절도범이 아닌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머리가 짧은 아이는 가정의 손길이 그립다.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그런데 꼭 가정이어야 하는가? 먼 친척 어른이나 키다리 아저씨라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응원을 해준다면 어느 정도 마음의 공백을 메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먼 친척이나 키다리 아저씨 같은 후원자를 둔 두 아이를.

결국 개인인 후원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학대를 예방하거나 아동에게 정서적 안정성은 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 친척 정도의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인연을 이어 나가며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잘 성장한 아이가 사회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면 자신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을까. 한 명의 사소한 실천이 범죄예방 효과와 선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노력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보육원에 도착하니 40대 중반 가량에 뿔테 안경을 쓴, 똑 부러져 보이는 여성 분이 맞이해 주셨다. 명함에 과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아이를 후원하길 원하는지, 생각해둔 게 있는지를 물었다.


‘어! 생각해 놓은 게 없는데.’

떠오르는 대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다. 남자 조카보다 여자 조카들과 더 잘 어울려 놀기도 했고, 어린 여자애들이 말도 잘하고 애교도 있어서 재미있으니까. 또 너무 나이가 많은 아이는 이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서 친해지지 힘들 거라 생각했다.


과장님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그 나잇대에 여자아이들은 인기가 많아서 후원자가 다 있다고 했다. 대학 선배가 예전에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어떤 나라에서 제일 먼저 입양되는 아이는 금발의 어린 여자아이라고. 입양도 그러하다는데 후원도 쇼핑몰처럼 고를 수 있다면 후원자들도 공부를 잘하거나 잘 생기고 예쁘거나 어려서 친해지지 조금 더 쉬운 아이들을 선호할 것 같긴 했다. 한편으론 처음 온 아직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 어린 여자아이 후원을 원한다고 했으니,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받은 거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이 아이는 어떤가요?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예요. 태어날 때부터 여기서 자라서 제가 주욱 봐온 터라 잘 아는데, 성적도 무난하고 컴퓨터도 잘하고 착한데 아직 한 번도 후원자가 없었답니다.”


과장님이 사진을 보여주며 남자아이를 추천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13살이다. 13년 동안 후원자가 한 번도 없었다니..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검증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좋은 일하러 왔는데 고집을 피우기도 곤란하다.



“이 아이로 후원할게요.”

원하는 조건은 전혀 아니었지만 선택권이라는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추천해준 아이로 하겠다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과장님은 아이와 인사시켜 주겠다며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10분쯤 후 한 남자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12월 말, 겨울이었다. 달려온 아이의 얼굴은 추위에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입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났다. 입김으로 인해 안경에는 서리가 끼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치고는 키도 몸집도 너무 작았다. 반에서 첫째 줄을 넘기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하고 깨끗했다. 인상이 순했다. 추위에 붉게 물든 볼은 자신에게도 후원자가 생긴다는 기쁨에 상기된 표정 같기도 했다. 원치 않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아였지만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국내 첫 후원 아동과 만났다. 우리는 7년 동안 대외적으로 후원자와 후원 아동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나와 이 아이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녀석을 "김 조카"라고 부르며, 나는 지금까지 녀석과 삼촌·조카 사이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리고 말 잘 통하고 애교 있는 여자 꼬맹이를 바랐는데, 초등학교 6학년의 남자아이를 후원하게 된 데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의지로 스스로 보육원을 찾아왔고 아이들을 상품 고르듯 할 수는 없으니.


“여긴 쇼핑몰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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