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11일 금요일 -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K.466 (Piano Concerto No. 20 in D minor, K.466)>
■ https://www.youtube.com/watch?v=t9d3Q8l8rMM&list=RDW44aZnSW1TU&index=4
갑자기 아침 바람이 바뀌었다. 습하고 더운 기운이 사라지고 마치 늦여름, 초가을 아침의 상쾌한 느낌이 바람에 묻어왔다. 아침 햇살조차 날카로움이 무뎌진 듯 피부를 태울 듯이 파고들지 않는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전날 태양이 남기고 간 열기를 느낄 수 없는 아침다운 아침이다.(내게 아침다움은 새로움이다. 전 날의 기억, 기온, 느낌이 다 초기화된) 인간들이 에어컨과 선풍기 같은 기계들로 고작 몇 평도 안 되는 공간의 온도를 맘대로 낮출 수 있다며 우쭐되도(그 얼마 되지 않는 공간을 식히는데 드는 엄청나게 비싼 에너지 비용과 낮은 효율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전체를 지표부터 10km 이상 상공까지, 온도를 일거에 낮춰버리는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는 무조건 겸손해져야 한다.
기상이변은 이제 인류의 존망이 걸린 전 지구적 문제인 것이 명백해졌는데도 인류사회는 여전히 난마(亂麻)처럼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대응 수위와 속도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사적 이윤 추구를 핵심원리로 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상이변'은 대표적인 '공유지의 비극'으로 이 시스템에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기와 바다, 그리고 지구의 수많은 인류 공동의 자산(미래세대를 포함해)들이 사적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훼손되어도 그 사실을 알기 힘들다. 그런 일들은 인간의 얼굴이 아닌, 기업과 법인이라는 감정 없는 조직에 의해 수행되고 우리들에겐 그들이 이윤을 얻는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자연의 착취에 대한 어떤 정보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법을 동원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우리는 그 사적 이윤의 일부를 국가라는 경제 단위에서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우리나라는 여전히 석탄, 석유, LNG 등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를 61기나 운용하고 있다. 폭염에 전력 사용치가 최대를 찍고 있는 마당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문제라며 당장 발전소를 세울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풀 수 없는,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이 골치 아픈 인류 공동체의 숙제를 누가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지혜로 풀어낼 수 있을까? 미국 중심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외치는 지도자를 내 생전에 볼 수는 있을까? 자본주의를 넘어선 경제이념은 생전에 나타날 수 있을까?
음악 천재 모차르트의, 상쾌한데도 뭔가 안타까운 애절함을 담고 있는, 딱 지금 내 마음 같은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을 듣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대개 밝고 명랑하지만, 몇몇 작품은 그의 내면에 숨겨진 깊은 어둠과 열정이 뒤섞여 있다. 피아노 협주곡 20번 라단조가 그런 작품이다. 격정적이면서도 짙은 고뇌가 드리워져 있는.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들 중에서 단 두 곡만이 단조로 작곡되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이 곡이다.
이 곡에 사용된 라단조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이에 맞서는 내면의 두려움을 상징하는 조성'으로 모차르트는 훗날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복수의 화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미완성 유작인 <레퀴엠>에서도 이 조성을 사용한다.
장조와 단조는 음계(Scale)를 구성하는 음들의 간격 패턴의 차이에 따라 나뉘는데, 밝은 느낌을 주는 장조(Major Scale)는 '온음(도)-온음(레)-반음(미)-온음(파)-온음(솔)-온음(라)-반음(시)'의 간격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둡고 슬픈 느낌을 주는 단조 (Minor Scale)는 '온음(라)-반음(시)-온음(도)-온음(레)-반음(미)-온음(파)-온음(솔)'의 간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조와 단조의 느낌을 좌우하는 것은 으뜸음으로부터 3번째 음의 높이인데, 장조의 3번째 반음은 단조보다 반음이 더 높다.(장조의 3번째 반음은 앞서 두 개의 온음 뒤에 붙어 오기 때문에) 바로 이 3번째 음의 미세한 차이가 신기하게도 전체 음계와 화음의 색채를 장조는 밝고 명랑하게, 단조는 어둡고 우울하게 만든다.
19세기 독일 과학자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는 장조와 단조는 단순히 음의 간격뿐만 아니라 화음이 만들어 내는 물리적 특성도 다르다는 사실을 단조 화음의 음파가 장조보다 더 복잡하다는 점을 통해 밝혀냈다.
이 곡은 단조의 비장함조차 아름다운 감동으로 승화시킨 대단한 명곡이지만, 고전주의 협주곡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음악적 실험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기존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명확하고 기억하기 쉬운 주제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이 곡의 1악장은 뚜렷한 주제 선율 없이 시작되는데,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불안한 싱코페이션(당김음)과 어두운 저음의 움직임이 1악장 전체를 지배하며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는 현악기들이 단순히 곡의 배경을 그려내는 게 아니라 곡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를 처음부터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효과를 낸다.
현악기 파트뿐만 아니라 모차르트는 독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관계 또한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데, 이전까지의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주로 독주자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 곡에서 오케스트라는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특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제를 쟁취하듯 주고받거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치며 경쟁하는 듯한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오페라 무대 위에서 두 주인공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는데, 이러한 '교향악적' 구성과 '연극적' 성격의 결합은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이는 독주자를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힘에 맞서는 고독한 영웅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이러한 기법은 훗날 베토벤을 거쳐 낭만주의 시대 협주곡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모차르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피아노 협주곡에 처음으로 트럼펫과 팀파니도 함께 편성했는데, 이 악기들의 추가는 단순히 음량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곡의 극적인 긴장감을 높이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팀파니가 긴박하게 연주되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부분은 이전의 협주곡에서는 듣기 힘든 강력한 표현이었다. 이러한 관현악법의 확장은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장르를 교향곡에 버금가는 규모와 표현력을 지닌 장르로 격상시키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실험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중 단조로 작곡된 것은 이 곡과 함께 피아노 협주곡 24번 다단조(K.491)가 유일한데, 20번이 마지막 악장에서 밝은 장조로 전환되며 희망적인 결말을 맞는 것과 달리, 24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인 단조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끝을 맺는다. 특히 24번은 20번보다 더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동원하면서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클라리넷과 오보에를 편성하여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관악기 음색을 활용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더 깊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 앞서 조성진의 연주로 2악장 로만체를 들었다면 이번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클래식계의 반항아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로 조성진의 연주와 비교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p_33zTtiWPA
■ 모차르트 해석에 있어 정밀함과 감성의 균형을 잘 잡아낸 것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Alfred Brendel)의 피아노와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빈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전곡을 함께 감상해 보자.
- https://youtu.be/gHub_GpmRGs?si=5L2M8dvOsGxG4O_o
■ 피아노협주곡 20번과 함께 유이한 단조(C단조) 피아노 협주곡인 24번(K.491)도 브렌델과 세인트 마틴 실내악단의 협연으로 함께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5qiLcLioz7s&list=RD5qiLcLioz7s&start_radio=1
♥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그러나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 걸음(201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