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14일 월요일 -
♡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
<바이올린 소나타 Op.5 중 12번 '라 폴리아'/Violin Sonata, Op.5-12, 'La Follia'>
■ https://www.youtube.com/watch?v=cRZU5gbqyJg
밤새 태백에는 비가 왔다. 꽤 길었던 가뭄에, 말라가던 땅처럼 타들어가던 농부들의 마음도 촉촉하게 적셔주는 고마운 단비다. 장마가 사라진 여름이라곤 하지만, 단군께서 터 잡으신 이 땅은 원래 물이 부족한 곳이 아니었다. 잠시 비가 그쳐 밖으로 나오니 앞산에서 숲냄새 물냄새 새소리까지 산비탈을 타고 어머니 계신 연립 아파트 단지로 밀려온다. 이 상쾌하고 맑은 기운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싱그러운 바람은 코와 허파로, 살갗을 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묵은 찌꺼기들을 녹여내 몸 밖으로 빼주는 듯하고 귀를 타고 들어오는 청아하고 맑은 소리는 뇌에서 심장으로 "생명의 소리는 이런 것이야"라며 맥박과 함께 공명한다.
서울 우리 집 아파트 화단에서 느끼는 그 아침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지키며 홀로 태백에 계신 어머니를 매 주말마다 찾아오지만, 항상 가족들이 함께 오지 못해 죄송하고 송구하다. "밥 먹자, 이제 내가 밥 차려 줄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아침 먹으라며 재촉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태백의 아침대기를 들이마시며 모았던 맑은 기운이 한 번에 다 빠져나가는 듯 한숨이 났다.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어머니와의 소중한 시간을 얼마나 더 예쁘게 보낼 수 있을 지 마음이 번거로워진다. 사납게 몰아치던 여름비도 차분한 대기의 숨결로 녹아들었듯이 내 지난 거칠고 뜨겁던 열정의 시간들도 머지않아 세상의 그 거대한 시간 속으로 녹아들겠지. 아버지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셨을지 궁금해진다...
‘폴리아(La Follia)’는 포르투갈어로 ‘광기’ 또는 ‘격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음악사에서는 격정적 리듬과 극적인 선율을 가진 포르투갈의 전통 춤곡을 가리킨다. 시작은 3박자의 느린 템포로 진행되다가 점차 격정적인 분위기로 고양되어 가는 것이 전통적인 폴리아의 특징인데, 샤콘느나 사라방드의 약간 변형된 느낌의 곡이다. 중세 시대부터 포르투갈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폴리아는 16세기에 스페인에 정착하면서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이국적인 매력을 가진 폴리아의 선율과 리듬은 코렐리와 비발디, 바로크 시대의 바흐는 물론 고전주의 시대의 베토벤과 20세기 초 라흐마니노프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여 명에 이르는 작곡가들에 의해 변주곡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리고, 그 무수한 변주곡의 정점에 이 코렐리의 '라 폴리아'가 있다. 코렐리 이후 많은 작곡가들의 폴리아 변주곡은 대부분 이 코렐리의 변주곡을 토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칸젤로 코렐리는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과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 등 기악곡의 악장 구성 및 형식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작곡가로 평가받지만, 사실 코렐리는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당대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바이올린의 새로운 주법과 연주기교를 개발하고 그 결과물을 직접 작곡에 반영하여 실제 연주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바이올린이 합주악기로서뿐만 아니라 독주악기로서도 큰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 ‘세계 최초의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 ‘합주 협주곡의 아버지’, ‘현대 바이올린 주법의 창시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라 폴리아'가 포함된 이 바이올린 소나타(Op.5)는 코렐리가 바이올린에 쏟은 그의 애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집으로 바이올린 소나타로는 그의 유일한 작품집이다. 그의 이 작품 이전의 곡들 'Op.1'에서 'Op.4'까지는 트리오 소나타 형식의 작품들이었고 이 작품집을 계기로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를 살린 음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집은 1700년에 로마에서 출판되었는데, 마지막 12번('라 폴리아')은 앞의 다른 곡처럼 실내 소나타 형식을 택하지 않고, 아다지오로 시작하는 16 소절의 주제를 따른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했는데 춤곡 폴리아(follia)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라 폴리아(La Follia)'라는 이름이 붙었다.
폴리아는 파사칼리아(passacaglia)나 샤콘느(chaconne)와 같이 하나의 아리아 선율을 주제로 삼아 이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주시켜 만드는 변주곡 양식의 3박자 춤곡인데, 중세 포르투갈에 전해져 내려오던 민속 춤곡이 원형이다. 이 춤곡 형식이 스페인에서 유행하게 되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도 전파되었는데, 프랑스인들이 이 춤곡을 ‘폴리 데스파뉴(Folie d’Espagne, 스페인의 광란)’라고 부르면서 스페인의 춤곡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폴리아의 기본 멜로디와 화성은 2개의 짧고 동일한 악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곡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기본 멜로디와 매력적인 화음에 더해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기교가 함께 어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올린이 너무 높은 음을 쓰지 않고, 느린 부분에서는 깊은 명상의 울림을 남겨두고, 빠른 부분에서 화려한 기교를 뽐내면서 코렐리 음악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준다.
■ 코렐리의 폴리아 변주곡을 다시 피아노 변주곡으로 작곡한 라흐마니노프의 곡도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Ccaga98UFuk
■ 앞서 코렐리의 폴리아 변주곡과 비슷한 듯 조금 다른 느낌의 프란체스코 제미니아이(Francesco Geminiani, 1687~1762)의 폴리아 변주곡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7a_Dt8AnGaU
■ 마지막으로 폴리아 변주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비발디의 폴리아 연주를 바로크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클리블랜드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i4qePY2Wdss
♡ 길 위에서 말하다
- 유하
길 위에 서서 생각한다
무수한 길을 달리며, 한때
길에게서 참으로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찬미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온갖 엔진들이 내지르는 포효와
단단한 포도(鋪道) 같은 절망의 중심에 서서
나는 묻는다
나는 길로부터 진정 무엇을 배웠는가
길이 가르쳐준 진리와 법들은
왜 내 노래를 가두려 드는가
길은 질주하는 바퀴들에 오랫동안 단련되었다
바퀴는 길을 만들고
바퀴의 방법과 사고로 길을 길들였다
상상력이여,
꿈이여
희망이여
길들여진 길을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보이는 모든 길을 의심한다
길만이 길이 아니다
꽃은 향기로 나비의 길을 만들고
계절은 바람과 태양과 눈보라로
철새의 길을 만든다
진리와 법이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길을
도시와 국가로 향하는 감각의 고속도로여
나는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버릴 것이다
나를 이끌었던 상상력의 바퀴들아
멈추어라
그리고 보이는 모든 길에서 이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