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얼 잊어버리고 사는가?

- 2025년 7월 10일 목요일 -

by 최용수

♡ 아스토르 피아졸라(Ástor Piazzolla, 1921~1992)

<'망각' / 'Oblivion' 외>


https://www.youtube.com/watch?v=dF-IMQzd_Jo


어젯밤 퇴임을 앞둔 선배의 환송회가 있었다. 그와 관계를 맺었던 꽤 많은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동안 잊고 있었던 10여 년도 더 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힘든 시기를 버텨냈던 것 같다. 그때의 그 기억때문이었을 것이다. 10여 년의 시간 공백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부산에서 창원에서 수원에서 달려온 이들의 마음이...

그 시절 우리의 목표이자 모토는 'KBS 국민품으로' 였다. 소위 공영방송인데, 국영방송도 아닌데, KBS는 여야할 것 없이 그들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정권과 코드를 맞춘 이를 사장으로 내려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도 거의 그랬다. 물론 KBS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때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는 소위 '4부'(행정, 입법, 사법에 더해 언론)의 입지를 가진 적도 있었다. 내가 언론사 시험을 치룰 때만 해도 언론사 입시를 '언론고시'라고 불렀던 이유도 (단지 입사하기 힘들다는 뜻이 아닌) 거기 있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공영방송이라는 제도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이미 다른 미디어들이 넘쳐나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 우리는 마치 정권의 전리품처럼 내려오는 낙하산 사장 임명을 막고, 정권을 지지하든 하지 않든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담아낼 수 있는 말그대로 '소통의 용광로'(충돌하는 모든 의견과 이해관계들이 녹아들어 합의에 이르게 하는 공론장)같은 KBS를 만들어 '국민품으로' 돌려주자고 했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는 이 과제를 남기고, 그때 그 전선의 선두에 있던 선배가 회사를 곧 떠난다니...

어제 술자리를 파하고 나온 9시 반 무렵의 여의도의 기온이 무려 섭씨 33도였다. 10여 년 전 우리의 뜨거운 마음 같긴 했지만, 너무도 불편하고 힘들었다. 예전에 환경스페셜을 제작하면서 결코 이런 세상을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세상은 정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아침에 잠시 산책가다 나뭇가지의 새들을 노리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아마도 녀석의 기대처럼 새들은 잡힐 리가 없을테고... KBS에 입사한 지 올해로 30년째인데, 여전히 30년 전 숙제도 못풀고 있는 내 모습같았다.

오늘 아침음악은 그래서 약간 허망하고 아련한 느낌의 피아졸라 곡 '망각'을 골라봤다.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에서 "위대한 아스토르"(El Gran Ástor)라 불리며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탱고의 혁명가'다. 그는 192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이발사였던 아버지 빈센테와 재봉사인 어머니 아순타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오른발을 절었던 그를 보고 친구들은 '렝고(절름발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졸라의 아버지는 오히려 이런 장애에 굴복당하지 않도록 피아졸라를 더 강하게 키우려고 노력했고, 훗날 피아졸라는 그런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모든 금지된 것에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아버지의 격려대로 피아졸라는 결코 주어진 도전을 피하지 않았고, 탱코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925년 피아졸라가 4살때 그의 가족은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뉴욕에서의 힘든 생활을 달래기 위해 피아졸라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사다 준 반도네온을 열심히 익혔다. 당시 뉴욕에서는 라디오를 통해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피아졸라는 이런 음악들을 반도네온으로 연주하는 걸 즐겼다.

이 덕분에 피오졸라는 각종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반도네온으로 이런 저런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연주하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피아졸라의 재능을 눈여겨 본 아버지는 그를 헝가리 피아니스트 월다(Bela Wilda)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우연히 탱고가수이자 작곡가인 가르델(Carlos Gardel)이 피아졸라의 뛰어난 연주실력을 알게 되고, 그의 영화에 피아졸라가 출연해 직접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장면을 넣어보자며 피아졸라의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피아졸라의 아버지는 그가 아직 어리다며 거절해 버린다.

이후 1937년, 미국에서의 힘든 생활에 지쳐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피아졸라는 고작 17살의 나이로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최고의 탱고 악단이었던 아니발 트로일로의 악단 연주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 곳에서 피아졸라는 그의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자부심도 키워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부심은 1941년, 당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였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 1887~1982)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자 그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하는 패기를 보이게 된다. 이때 루빈스타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악보의 피아노 파트를 연주하고서는 '다 좋은데, 오케스트라 파트는 어디 있나?'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게 없었다. 음악이론이 부족했던 피아졸라는 피아노 독주곡을 쓰고는 협주곡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루빈스타인은 그럼에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동향의 아르헨티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 1916~ 1983)를 사사할 기회를 주었다.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누에보 탱고의 창시자 피아졸라

히나스테라를 통해 피아졸라는 음악이론은 물론 문학과 미술 등의 교양도 쌓을 수 있었다. 그의 무모한 듯 보였던 패기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후 그는 불편한 몸이지만 결혼에도 성공해 1남 1녀를 두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반도네온으로 대표되는 탱고음악 위에 클래식과 재즈 변주까지 가미된 그의 음악은 기성 탱고악단과는 맞지 않았다. 결국 피아졸라는 1946년 자신만의 악단('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오르케스타 티피카')을 만들어서 활동하게 된다. 당시 그는 악단활동 중에도 당시 현대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 바르토크와 프로코피에프 등의 작품들을 연구하며 1945년 그 첫 클래식 작품 '현악 합주와 하프를 위한 모음곡'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악단도 그의 클래식 작품들도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렇게 절치부심하던 중 1951년 피아졸레가 작곡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향곡(Sinfonía Buenos Aires)'이 파비안 세비츠키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비로소 클래식 음악계의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피아졸라는 1953년 소편성 관현악곡 '신포니에타(Sinfonietta)' 작곡해 이 곡 악보를 프랑스의 전설적인 음악 교육자인 나디아 불랑제에게 보내게 된다.(나디아 블랑제는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음악 교육자 중 한 명으로 그녀의 파리 아파트와 퐁텐블로의 미국 음악원은 전 세계 음악도들의 순례지였다. 그녀의 제자들 중에는 '미국 현대 클래식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런 코플런드 (Aaron Copland), 미니멀리즘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 (Philip Glass), 재즈 뮤지션이자 마이클 잭슨의 앨범 프로듀서로 유명한 전설적인 인물, 퀸시 존스 (Quincy Jones),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음악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미셸 르그랑 (Michel Legrand) 등 클래식, 재즈, 영화음악 장르를 불문하고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다.)

피아졸라의 이 악보를 받은 나디어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이듬해 피아졸라는 아내와 함께 파리로 향하게 된다. 블랑제는 피아졸라만의 음악적 역량이 탱고에 있음을 꿰뚫어보고 그에게 대위법과 푸가같은 작곡 기법뿐만 아니라 탱고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덕분에 피아졸라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재즈클럽에서 흑인들의 재즈를 들으며 클래식, 재즈, 탱고를 아우르는 그만의 독창적 탱고음악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후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그는 그만의 탱고음악을 선보였지만, 불안한 아르헨티나의 정치상황과 대중들의 무관심때문에 1974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전 세계들 떠돌며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렸다. 그의 노력때문이었는지 유럽에서 탱고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피아졸라의 새로운 탱고 역시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1992년 크로노스 4중주단이 발표한 피아졸라의 작품집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 Five Tango Sensation》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피아졸라를 일약 '탱고의 황제'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반도네온 연주 거장', 일명 '탱고의 전설' 피아졸라는 1990년 파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1992년 7월 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망했다.


■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연주로도 '망각'을 들어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jsXvLooj1OM


■ 리베르 탱고를 비롯해서 피아졸라가 남긴 최고의 곡들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통해 다른 곡들도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k3C9uk-zuwQ



♡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 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 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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