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한 번은 소개하고 싶었던 음악

- 2025년 7월 15일 화요일

by 최용수

♥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

<전주곡 Op.28, 15번 '빗방울 전주곡' / Prelude, Op.28, No.15 'Raindrop'>


https://www.youtube.com/watch?v=pCx5g4FnAXU&t=227s


비 오는 날 아침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이 곡은 지난 몇 년 동안 내 아침 음악 리스트에서는 빠져 있었다. 너무 익숙한 느낌도 그랬지만, 아침에 듣기에는 꽤나 감정의 소모가 필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서정적인 선율, 그리고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반복적인 Ab음이 만들어내는 명상적인 분위기로 시작하는 이 곡은 비 내리는 평온한 아침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만, 그렇게 명상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어둡고 무거운 C#단조로 곡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면 마음은 이내 까닭 없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버린다. 빗소리 같던 차분한 선율이 '왜 세상은, 사랑은 이래야 하냐'고 따지듯 묻다가 이내 다시 첫 시작의 그 차분하고 평온한 멜로디로 '그게 사랑이야'라고 속삭이며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이 곡은 짧지만 그렇게 깊은 감정의 골을 지난다. 오늘 모처럼 이 곡을 골라 듣는 이유는 이 곡이 전하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출근하지 않는 아침'이기 때문이다.(출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맨 마지막에 이 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비 오는 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즉흥 환상곡 링크를 올려두었다.)




이 곡은 1838년 늦가을, 쇼팽과 연인 조르주 상드가(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추운 파리의 겨울을 피해 머물렀던 따사로운 지중해 연안 마요르카 섬(스페인)에서 작곡되었다. 두 사람이 파리를 떠난 명목은 쇼팽을 괴롭히고 있던 지병,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요양이었지만, 당시 파리 사교계를 들끓게 했던 두 사람에겐 일종의 도피성 허니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4052315367589477


상드가 쇼팽을 처음 본 것은 1836년, 프란츠 리스트의 연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이 주최한 살롱에서였다. 상드는 당시 이미 여러 편의 소설을 써 명성을 얻은 작가였고, 남성적인 옷차림과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프랑스 사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쇼팽은 처음 그런 상드에게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쇼팽은 친구들에게 "상드라는 여자, 정말 혐오스럽군! 과연 여자이긴 한 건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이는 당시 쇼팽이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에다 폴란드 특유의 보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드에 대한 쇼팽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쇼팽의 천재성에 매료되어 어떻게든 그를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녀는 두 사람이 함께 알고 지냈던 보이치에흐 그르지만스키(Wojciech Grzymanski) 백작에게 무려 32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 쇼팽을 향한 자신의 강렬한 감정을 고백했다. 이 편지에서 그녀는 쇼팽을 위해서 당시 그녀가 만나고 있던 모든 연인들과의 관계들을 정리할 것을 암시하면서 쇼팽의 이전 연인 마리아 보진스카(Maria Bodzinska)와 완전히 끝난 사이인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당시 상드는 이미 결혼한 상태에 아들과 딸까지 있었지만(자녀들의 아버지는 법적으로는 모두 그녀의 남편인 카지미르 뒤드방(Casimir Dudevant)이지만, 딸 솔랑주 상드 (Solange Sand)의 생부에 대해서는 그녀의 연인 중 한 명이었던 스테판 아자송 드 그랑상뉴(Stéphane Ajasson de Grandsagne)라는 설도 있다.) 쇼팽에 대한 감정만큼은 어떤 연인들의 그것보다도 뜨거웠다. 그녀는 쇼팽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했다. 그리고, 상드의 끊임없는 구애는 결국 쇼팽도 마음을 열었다.(쇼팽의 전기 작가들은 '상드의 유혹'은 치밀했고, 결국 그녀가 쇼팽을 사로잡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마요르카 해변의 빌라촌


1838년 늦여름, 그렇게 두 사람은(상드의 자녀들과 함께) 지중해의 마요르카 섬으로 왔고 이후 9년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이 시기 동안 상드는 쇼팽에게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쇼팽은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서 발라드, 폴로네즈, 스케르초 등 주옥같은 명곡들을 다수 작곡할 수 있었다. 비록 쇼팽의 첫인상으로는 최악의 연인이었지만, 상드의 적극적인 사랑은 그의 예술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마요르카에서의 생활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들이 처음 머무른 곳은 마요르카 섬의 수도 팔마(Palma) 근처에 있던 '손 벤트(Son Vent)'라는 저택이었다. 그런데, 파리 사교계의 소문은 이곳 주민들에게도 빠르게 퍼져나갔고, 보수적인 섬사람들에게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의 동거는 불편하고 도덕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들을 싸늘하게 맞이했다. 그런데 쇼팽과 상드가 손 벤트에 머물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민들은 쇼팽이 당시 유럽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알려진 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섬주민들에게 결핵은 재앙과 같은 병이었고 결국 쇼팽과 상드는 손 벤트에서 쫓겨나고 만다.


숙소에서 쫓겨난 두 사람이 피난처로 찾은 곳은 발데모사의 카르투하 수도원이었다. 마침 이 수도원은 당시 스페인 정부의 정책으로 수도사들이 떠나 비어있는 상태였고, 개인들에게 '수도실(cell)'을 임대해주고 있었다. 처음 상드와 쇼팽은 이곳이 오히려 적대적인 시선의 세상에서 격리되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다. 상드는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거처"라고 부르며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쇼팽의 병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편견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찾아 들어간 고립된 피난처였다.

두 사람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필 두 사람이 마요르카로 온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비가 많이 내렸다. 석조로 된 수도원 건물은 습하고 차가웠으며 이는 쇼팽의 폐결핵을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상드는 지극 정성으로 쇼팽을 돌봤고, 쇼팽 또한 상드의 이런 헌신적 사랑에 감동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곡은 바로 이런 어려움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염려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다.




이 곡에 '빗방울'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이유는 조르주 상드의 회고록 『내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다.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던 저녁, 상드가 아들과 함께 볼 일을 보러 나갔다가 궂은 날씨 탓에 밤늦게야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쇼팽은 창백하게 질린 채 극심한 불안에 떨며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상드를 본 쇼팽은 “아! 나는 당신이 죽은 줄 알았소.”라고 외쳤다. 그는 피아노를 치는 동안 자신이 호수에 빠져 죽는 끔찍한 환상을 보았다고 했다. 차갑고 무거운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자신의 심장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상드는 실제로 지붕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려주며 그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쇼팽은 자신이 들은 것은 그 소리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자신의 음악이 실제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는 그런 '유치한 모방' 쯤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어떻든 상드의 기록에 따르면 이 곡은 비바람 몰아치던 밤 자신과 아들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며 쇼팽 스스로 물에 빠지는 끔찍한 상상까지 담아낸 명곡이다.


(이 곡에 대해 쇼팽 본인이 직접 제목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없어 이 곡의 제목이 '빗방울 전주곡'이 된 것은 아마도 상드의 이 회고록 때문에 붙여졌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공식적인 '빗방울 전주곡' 제목에 대한 기록은 독일의 지휘자이자 음악 평론가였던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와 관계돼 있다. 그는 쇼팽의 24개 전주곡 각각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제목을 붙였고, 오늘 소개하는 15번 곡에는 왼손으로 규칙적으로 연주되는 Ab의 8분 음표가 빗방울을 연상시킨다며 '빗방울'이라는 구체적인 제목을 달아놓았다.)


사실 이 곡을 들으며 상드가 빗방울을 떠올렸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쇼팽이 이 곡을 쓰면서 상드와 그녀의 아들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하는 그 사랑과 염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한 편의 아름다운 피아노 곡을 지금 우리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말과 글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사랑과 염려의 감정'을... 클래식 음악은 거의 듣지 않으시는 어머니께서도 들으시면서 좋다 하시며 느끼는 그 감정같은 것 말이다.


■ 앞서 조성진이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 진면목을 보여준 쇼팽 피아노 콩쿠르 실황연주로 빗방울 전주곡을 들어보았다면,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노 거장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의 연주로도 비교 감상해 보자. 이 연주는 중간 부분의 C#단조 전환되면서 들려오는 장엄한 저음이 이전 연주와는 차별화된 압도적인 연주라고 평가받는다.

- https://www.youtube.com/watch?v=J_6APTb3RNQ


■ 사나운 폭풍우 치는 날이면 개인적으로 이 즉흥환상곡(Fantaisie-Impromptu, Op. 66)이 더욱 비오늘날 정서와 맞는 것 같다. 이브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uJfNkEth-9Y



♥ 사랑


-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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