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30일 수요일 -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v, 1873~1943)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Op.43 /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 https://www.youtube.com/watch?v=AGdV_DJ1gBg&list=RDAGdV_DJ1gBg&start_radio=1 (18번째 변주)
지난 며칠 동안 뜨거운 아침 햇살이 창문을 뚫고 내 방을 데우며 하루가 시작되더니 오늘은 모처럼 구름이 하늘을 덮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햇빛 쨍한 아침이 늘 반갑더니 극한 폭염에 시달린 지난 며칠의 기억 때문에 햇빛 없는 오늘 이 아침이 너무 고맙다. 그런데도 우리 동네 현재 온도는 벌써 섭씨 28도(오전 6시)...
밤새 에어컨 켜두느라 꽁꽁 닫아둔 창문을 열어놓고 아침 산보에 나선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 옆 대추나무에 매달린 대추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폭염에도(?) 아니 그 폭염 때문에(!) 늘어진 가지마다 대추알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TV뉴스에서는 폭염과 이상기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 거라는데, 우리 아파트 대추나무들은 오히려 예년보다 더 많은 대추들이 달렸다. 아마도 후끈한 태양의 열기에 나무와 흙이 마르지 않도록 경비아저씨들이 제때 물을 잘 뿌려줬기 때문일 것이다.
따가운 햇살이 없어도 대기가 후끈한 때문인지 금세 몸이 땀에 젖어 버렸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돌아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Op.43) 중 18번 변주곡을 듣고 있다.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뽀송뽀송한 면티로 갈아입은 후 선풍기를 틀어놓고 듣고 있으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가슴속을 꿈틀거린다. 너무 짧은 감동... 리플레이를 반복하며 모처럼 느긋한 여름 아침을 만끽한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곡을 완성한 시기는 1934년, 딱 지금과 같은 여름의 절정기 7월과 8월이었다. AI에게 1934년과 2025년 현재의 세계의 평균기온 차이를 물어보니 약 1.46도 정도 1934년이 더 낮았다고 한다. 게다가 라흐마니노프가 이 곡을 쓰기 위해 머물렀던 스위스 루체른 지역은 알프스 고산지대다 보니 당시 낮 최고기온도 22~25°C 정도였다고 한다. 어쩌면, 이 곡을 들으며 느끼는 청명하고 서늘한 기운은 이 곡이 작곡된 곳의 기후적 특성이 반영된 건 아닐까?
라흐마니노프는 제정 러시아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육군 장교, 어머니 또한 장군의 딸로 어릴 때에는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라흐마니노프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했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귀족 집안에서 음악교육을 받았던 터라 라흐마니노프는 4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고작 10살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공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렵 아버지가 벌인 사업들이 실패하고 친누나가 사망하는 등 갑작스러운 불행들이 겹치면서 가족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좁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 라흐마니노프의 학업 또한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어머니의 격려와 친척들의 도움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 진학하게 된다. 이미 어릴 때부터 뛰어난 청음 능력과 악보를 기억하는 탁월 한 능력을 보였던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곳에서 니콜라이 즈베레프와 같은 뛰어난 교수들로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지도를 받으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적 재능은 한층 더 깊어졌다.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원 조기 졸업은 물론 졸업 금메달을 수상하며 19살에 음악원을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그의 여러 작품들이 사람들이 주목을 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빠른 인정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그의 첫 교향곡이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혹평받으며 대실패를 하게 되자 이 때문에 무려 3년 이상을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시기 니콜라이 달 박사의 최면·심리치료를 받고 용기를 얻어 피아노 협주곡 2번(1901)을 작곡하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그런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라흐마니노프는 정치적으로는 특별한 활동도 없었고, 몰락한 귀족집안으로 영지나 재산도 별로 없었지만 단지 '귀족'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신체적 위협과 경제적 위협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는 가족과 함께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서둘러 러시아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1917년 10월 혁명 3주 후, 그는 스웨덴에서의 공연 요청을 핑계로 가족과 함께 기차로 국경을 넘었고,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스웨덴을 거쳐 1918년에 미국 뉴욕에 정착한 라흐마니노프는 이때부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치열하게 살아갔다. 다행히 그의 빼어난 피아노 연주실력은 1년에 30~40회에 이르는 연주투어와 녹음으로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인 안정을 얻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빠듯한 연주활동은 그가 더 이상 작곡에 전념하기 힘든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자 1930년 스위스 루체른 호수 근방에 토지를 구입해 스위스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빌라 세나르(Villa Senar)'를 직접 설계‧건축하게 된다. 이 건물의 이름이 '세나르'가 된 이유는 'Se(Sergei)-Na(Natalia)-R(Rachmaninoff)' 그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을 함께 따서 지었기 때문이다.
이 별장은 그의 러시아에 있던 '이바노프카' 영지에 대한 향수를 담아 만든 창작의 피난처였으며 라흐마니노프 부부는 매년 여름을 이곳에서 보냈고,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주요 후기 작품(코렐리 및 파가니니 변주곡, 3번 교향곡)을 여기서 집필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가끔 미국 공연 활동 중에도 빌라 세나르에 들러 작곡에 몰두할 정도로 이 곳은 그에게 제 2의 고향같은 곳이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자유와 경제적 안정은 주었지만, 그에겐 늘 러시아를 떠난 상실감과 그리움이 마음 한편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유럽의 문화계를 바라보며 장년의 라흐마니노프는 이전과 다른, 보다 절제되고 내면화된 음악어법을 찾게 된다. 이 무렵에 작곡된《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1931)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1934)는 이런 라흐마니노프 후기 양식의 전형으로, 당시 유럽 음악계의 혁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전적 변주형식에 더 집중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적 정체성, 그리고 내면의 상실감과 향수에서 비롯된 음악적 자기 고백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20세기 초 유럽 음악계의 인상주의, 신민족주의, 신고전주의 등 다채로운 실험과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급격한 양식적 전환보다는 러시아적 고전미와 구조적 완결성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음악적 원형에 충실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의 유산과 정체성을 지키는 예술적 선택이자, 잃어버린 고향과 과거에 대한 음악적 추모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후기 작품들은 감정은 절제되고, 구조는 더 간결하고 치밀해졌으며, 화성은 더 맑아졌다.
그중에서도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을 주제로 한 변주곡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평생 피아니스트이자 최고 명연주자로서 활동하며 ‘초월적 기교’의 대명사였던 파가니니에 대한 존경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도전과 같은 곡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리스트 등 여러 뛰어난 작곡가들이 이 곡의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곡을 남긴 선례도 있어서 라흐마니노프는 그만의 음악적 색채와 감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곡으로 여긴 듯하다.
'악마와 거래했다'는 파가니니의 전설 같은 스토리텔링은 그가 말년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세 성가(특히 ‘Dies irae’)의 숙명적 정서와도 어울렸다. 라흐마니노프는 그렇게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주인공이 악마와 예술을 두고 거래한다는) 드라마틱한 구조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써내려 갔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피아노 협주곡과 비슷하지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곡'으로 파가니니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 작품 중 마지막 24번 a단조를 주제로 하여 만든 24개의 변주곡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단일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속도와 성격에 따라 3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부 (서주~10변주): 빠른 템포의 1악장 성격
2부 (11변주~18변주): 느린 템포의 2악장 성격
3부 (19변주~24변주): 빠른 템포의 3악장 성격
일반적인 변주곡과 달리, 라흐마니노프는 첫 번째 변주 후에 주제를 제시하는 독특한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피날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변주부분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7변주(Meno mosso, a tempo moderato)는 라흐마니노프가 즐겨 사용한 가톨릭의 전례미사의 부속곡인 그레고리안 성가 중 는 "분노의 날(Dies Irae)" 주제가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는데, 이는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전설과 연결되는 악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한다.
11변주(Moderato)는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신비로운 음향 커튼을 만들고 하프가 마치 신비의 베일을 짜내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선율이 인상적이고, 12변주(Tempo di minuetto (D minor)는 미뉴엣 형태로 '여인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소개한 18변주(Andante cantabile (D♭ major))는 이 작품 전체의 백미로 꼽히는 변주로 이 부분은 파가니니의 원래 주제를 완전히 뒤집은(반전시킨) 형태로, A단조 주제가 D♭장조로 전환되어있는데, 라흐마니노프 스스로도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던 그리고, "이것은 내 매니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확신했던 변주부분이다.
22-23변주(Marziale. Un poco più vivo (Alla breve))는 지시어 그대로- 행진곡 성격의 변주로 앞서의 "분노의 날(Dies Irae)"의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24변주(A tempo un poco meno mosso)는 A단조에서 A장조로 전환되며 글리산도로 화려하게 마무리된다. ("분노의 날" 성가 주제는 모두 4번(7, 10, 22, 24변주) 등장한다.)
18변주는 영화 <Somewhere in Time>(1980년, 감독 자노 슈바르크)와 드라마 <밀회> 등에서 OST로 사용되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 영화 <Somewhere in Time>(1980년, 감독 자노 슈바르크)에서는 영화 <슈퍼맨>(1978년, 감독 리처드 도너)의 히어로 크리스토퍼 리브의 전성기시절의 매력을 살펴볼 수 있어 소개한다.(크리스토퍼 리브는 1995년 승마경기 중 낙마사고로 척수를 다쳐 ㅠㅠ 전신마비가 되어 평생 장애인을 위한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 https://youtu.be/DsCowtIGK_4?si=L2ftGFhmASgVurNv
원곡 자체가 워낙 어렵다 보니, 10대 시절에 헨델의 어려운 변주곡을 이틀 만에 완주해 버렸다는 피아노의 천재 라흐마니노프조차 1934년 11월 볼티모어에서의 초연(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당시 완주에 대한 두려움때에 평소에 마시지 않던 술(crème de menthe, 박하 칵테일)을 마시고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를 계기로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박하 칵테일을 마셔서 '박하술 변주곡(Crème de Menthe Variation)'이라는 애칭이 붙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진실 여부보다 이 곡 연주의 어려움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 안나 페도로바의 피아노와 제라드 오스캠프가 지휘하는 Südwestfalen 필하모니의 연주로 먼저 감상해 보고,
- https://youtu.be/ppJ5uITLECE
■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초연 당시의 녹음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함께 들어보자.
- https://youtu.be/_KfDZmCgwYo
♥ 더위 그까짓 것
임인규
지독한 탱볕 측정온도는 38도씨
온몸에 땀이 줄줄 더위 그까짓 것
공사 현장 철근 위를 걸어봤니?
운동화 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
살이 익을 정도이다.
그래도 공사는 해야 하고 그래야 돈을 번다.
섭씨 2000도 3000도를 오르내리는
용광로 앞에서 방열복입고
쇳물을 퍼날라 보았는가?
더위 그까짓 것
그래도 쇳물은 부어야 하고
그래야 수도꼭지는 생산이 된다.
수백 톤 강열 철판을 이어 부치는
조선소 배 위에서 용접을 하는 용접공들
더위 그까짓 것
그래도 용접을 해서 철판은 이어야 하고
그래야 제 날짜 맞추어 배는 완성된다.
덥다고 에어컨 팍팍
덥다고 물속에 풍덩
더위를 더위로 피하는 그들
그들에게 더위 그까짓 것
견뎌야 하는 것이다.
탱 볕에 지심 매던 아버지가 그랬듯이
탱 볕에 콩밭 매던 어머니가 그랬듯이
몸으로 때우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더위 그까짓 것
올 여름도 그렇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