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
♡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
<'화성(조화)의 영감' 모음곡 중 6번 바이올린 협주곡 가단조, Op.3 RV.356/ "L'estro armonico",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3-6, RV 356>
■ https://www.youtube.com/watch?v=46w3KOy_ros
오늘 소개하는 곡은 '조화의 영감(調和의 靈感)', 또는 '화성의 영감(和聲의 靈感)'으로 번역되는 비발디의 협주곡 모음집의 6번째 곡이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곡일 텐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서울 지하철의 환승역 및 종착역 안내방송 배경음악(BGM)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사적으로 비발디는 아르칸젤로 코렐리와 함께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독주 악기를 위한 콘체르토 형식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당시 협주곡은 크게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과 독주 협주곡(Solo Concerto)의 두 가지 형태로 발전했는데, 코렐리가 소규모 독주자 그룹인 '콘체르티노(Concertino)'와 전체 합주단인 '리피에노(Ripieno)'가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경쟁하듯 연주하는 구조의 합주 협주곡을 정착시켰다면, 비발디는 한 명의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와 기량을 겨루는 독주 협주곡 형식을 완성하고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협주곡(콘체르토)'이라는 개념은 본래 여러 성악 파트가 함께 어우러지는 종교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소리가 함께 '협력하고 경쟁한다'는 이 아이디어가 기악으로 옮겨와 합주 협주곡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특히 바로크 시대 협주곡이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음악적 기술과 개념의 발전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통주저음 (Basso Continuo)'이다. 통주 저음은 첼로나 바순 같은 저음 선율 악기가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면, 그 위에 하프시코드나 오르간 같은 화성 악기가 숫자로 표기된 약속에 따라 즉흥적으로 화음을 채워 연주하는 방식이다. 통주저음은 곡 전체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화성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고, 이 단단한 '음악적 뼈대' 위에서 독주 악기나 독주 악기군이 자유롭게 선율을 연주하고 기교를 뽐낼 수 있었다. 즉, 통주저음은 협주곡에서 독주와 합주가 어우러지는 바탕을 마련해 준 핵심적인 엔진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가 '조성(Tonality)의 확립'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선법(Mode) 체계에서 벗어나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장조와 단조를 기반으로 하는 조성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으뜸음을 중심으로 기능적인 화성 진행(예: 으뜸화음-딸림화음-버금딸림화음)을 사용하면서 음악에 명확한 방향성과 구조감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조성 체계 덕분에 작곡가들은 종지(Cadence, 화음이 최소한의 의미전달을 달성하고 마무리되는 기본적 화음의 진행법/긴장감을 만드는 화음 G코드(솔-시-레)에서 안정감을 주는 C코드(도-미-솔) 화음으로 종결) 등을 활용하여 더 길고 복잡한 형식의 곡을 체계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협주곡의 각 악장들이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극적인 전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조성의 힘 덕분이다.
세 번째, 협주곡의 핵심인 '대비'와 '경쟁'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곡 기법들이 등장했다. 콘체르타토(Concertato) 양식은 소규모 독주 악기 그룹(콘체르티노)과 전체 합주단(리피에노 또는 투티)이 서로 음량이나 기교를 대비시키며 대화하듯 연주하는 방식인데, 이는 바로크 예술이 추구하는 극적인 표현미학이 음악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비발디가 정립한 리토르넬로(Ritornello) 형식은 바로크 협주곡의 구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전체 합주단이 연주하는 반복되는 주제 부분(리토르넬로) 사이에 독주 악기가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 독주 부분(에피소드)이 삽입되는 구조다. 이 형식을 통해 질서와 자유, 합주와 독주가 규칙적으로 교대하며 안정감과 동시에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협주곡 형식이 가능했던 이유는 '악기 제작 및 연주 기법의 발전'이었다. 음악연구자들은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 제작 기술이 정점에 달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아르칸젤로 코렐리와 비발디 같은 작곡가 겸 연주자들이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 기법과 교수법을 개발하여 악기의 표현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로써 작곡가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기교적인 독주 파트를 작곡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독주 협주곡의 탄생과 발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음악사에서 협주곡(Concerto)의 역사만큼 시대정신과 음악적 미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주제가 있을까 싶다. 특히 '대결(극적 대비)'과 '경쟁'의 미학이 지배했던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이 계몽주의 사조가 전파되면서 점차 '대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시대의 독주 협주곡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 음악이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과 고전주의 시대의 협주곡은 단순히 형식의 변화를 넘어, 음악의 주인공과 그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로크 시대(약 1600~1750년) 협주곡의 핵심은 작은 독주 악기 그룹인 '콘체르티노(Concertino)'와 전체 오케스트라인 '리피에노(Ripieno)'가 서로 음량과 기교를 겨루며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이는 웅장하고 화려하며, 때로는 복잡한 다성음악(폴리포니)을 통해 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던 바로크 시대의 예술관을 그대로 반영한다.(바흐의《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 협주곡의 정점이라 할만한데, 총 6개의 곡은 각각 다른 악기 조합의 콘체르티노를 내세워 다채롭고 화려한 음색의 대비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5번 협주곡은 하프시코드를 독주 악기로 전면에 내세워 다가올 독주 협주곡 시대를 예고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계몽주의 사상은 신 중심의 복잡하고 장대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중시하는 풍조를 확산시켰다. 음악 또한 귀족과 교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점차 대중을 위한 예술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바로크의 화려한 장식과 복잡한 대위법을 점차 구시대의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단순하고 명료하며, 듣기 편안한 단선율 중심의 음악(호모포니)을 선호하게 되었다. 음악의 무게중심이 '그룹'에서 '개인'으로,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오면서, 한 명의 뛰어난 연주자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독주 협주곡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를 준비를 마친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약 1750~1820년)에 이르러 협주곡은 비로소 한 명의 독주자(Soloist)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정교한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협주곡의 핵심은 '대결'이 아닌 '조화로운 대화'와 '균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 가장 결정적인 혁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나타 형식'의 도입이었다. 특히 1악장에 적용된 소나타 형식(제시부-발전부-재현부)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제를 주고받으며 극적인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완벽한 틀을 제공했다. 또한,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의 반주 없이 화려한 기량을 과시하는 '카덴차(Cadenza)'를 삽입하여 전체 속의 독주자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하며 고전주의 시대 협주곡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고전주의 협주곡을 완성한 인물은 단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수많은 피아노 협주곡, 특히 피아노 협주곡 21번이나 만년의 걸작 클라리넷 협주곡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유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면 독주자가 이를 이어받아 화려하게 발전시키고, 서로의 선율을 모방하고 변주하며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이러한 고전적 형식을 바탕으로 개인의 감정과 극적인 표현을 더욱 확장하며 낭만주의 시대의 문을 연다. 얼마 전 소개한 그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시작부터 독주 피아노가 웅장한 카덴차풍으로 등장하여 오케스트라와 당당히 맞서는 등, 독주자의 위상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며 협주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오늘은 좀 갑작스레 음악의 역사 이야기로 흘러 버렸다. 뭔가 활기찬 음악 중 대중적인 음악을 고르다 보니 하필 비발디의 협주곡 작품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조화의 영감'은 발랄한 주제와 생동감 넘치는 리듬, 명쾌한 형식미를 갖춘 전형적인 이탈리아 바로크 협주곡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비발디는 기존의 합주 협주곡 형식을 넘어 현악기들을 여덟 개의 파트로 나누어 각 파트별로 자율적이고 다양한 화성을 연주하게 함으로써 더욱 풍성한 화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은 바로크 음악이 바흐와 헨델에 이르러 더욱 자유롭고 세련된 형태로 발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비발디는 바이올린과 첼로 등의 현악기를 위한 협주곡(concerto grosso) 뿐만 아니라 현악기와 관악기를 위한 독주 협주곡과 합주 협주곡도 여러 편 작곡했는데, 이를 통해 이탈리아 바로크 협주곡의 전형적인 3악장 구성을 확립한다.
비발디의 음악의 매력은 '조화의 영감'이라는 제목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 이전 코렐리 식의 전통적인 합주협주곡들이 악기별로 연주파트가 엄격한 규칙에 따라 각자 부여된 역할의 연주만 맡았다면, 비발디는 이런 정적인 형식을 거부하고, 현악기들을 여덟 개의 파트로 나눠 각 파트별로 자율적으로 다양한 화성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각 파트들의 조화로운 구성을 찾아내며 더욱 풍성한 화성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존의 규칙을 깨뜨리며 더욱 풍성한 주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비발디의 음악은 훗날 독주악기들의 매력이 더 부각되는 고전주의 시대의 협주곡들과 비교해서도 결코 그 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비발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비교적 최근에(20세기 초) 대거 발굴된 이유도 있을 것이고 생전에 수많은 연주회를 위해 비슷한 작품들을 너무 많이 남겼기 때문일 텐데, 어떻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비발디 음악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 '조화와 연감' 작품집 중 앞서 소개한 6번도 좋지만,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재치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제8번 가단조 (RV.522)'를 좀 생소한 연주단체지만, 2014년 스톤던 뮤직 페스티벌 실황연주로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hgYl4eE3WJA
■ 바흐는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에 깊은 영감을 받아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중 제3번과 제9번을 쳄발로협주곡으로 편곡했는데, 두 곡 중 3번을 원곡과 쳄발로 협주곡 버전으로 각각 들어보자.
-(비발디 원곡) https://www.youtube.com/watch?v=J6b7WH9Le-E
-(바흐 편곡) https://www.youtube.com/watch?v=FDI74Q4DnUU
♥ 아침, 그대를 맞으며
- 조희선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이야
하루를 산다는 건
그물을 싣고 바다를 향해 떠나는
싱싱한 희망이야
어젯밤의 졸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건 싫어
지난날의 어둔 습성으로 아침 창을 여는 건 싫어
살아간다는 건 설렘이야
하루를 산다는 건
인연을 따라 운명을 건져 올리는 황홀한 만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