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 오래된 새로움의 향연!

- 2025년 8월 5일 화요일 -

by 최용수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1685~1759)/요한 할보르센(Johan Halvorsen, 1864~1935)

<헨델 건반 모음곡 7번 중 '파사칼리아' HWV 432의 할보르센 현악 2중주 편곡/ Handel - Keyboard Suite No.7 HWV 432 'Passcaglia' arranged by Halvorsen>


https://www.youtube.com/watch?v=coFxZiekya0


갑자기 찾아온 선선해진 바람이 아침 산책길에 나선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이치는 후덥지근한 열기에 아침 산책을 머뭇거리곤 했는데,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 일출 때문인가 '극한의 폭염'이 이제 한풀 꺾인 느낌이다. 아직 섣부르게 '가을'을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이제 한 달만 더 지나면 '반드시' 이 뜨거운 여름은 '찌르르르 찌르르르'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들의 소리로 채워질 것이고 가을은 조용히 아파트 화단을 노랗고 붉게 물들이며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좀 씩씩하고 열정적인 곡을 골라 듣는다. 뜨거운 여름 아침에 듣기엔 아주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오늘같이 뭔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날(오늘은 클래식 음악 관련 강의가 있는 날이다)엔 딱 어울리는 곡이다.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분명 같은 곡인데 작곡자가 두 명이다. 클래식 음악 중에 이렇게 두 사람의 작곡가 이름이 함께 병기된 경우는 대개 원작곡자가 잘못 알려졌다가 나중에 새로 밝혀지면 혼돈을 피하기 위해 잘못 알려진 작곡자와 원작곡자의 이름을 한시적으로 함께 표기할 때다. 하지만, 이 곡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 곡은 원래 헨델이 1720년에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곡이 맞다. 그런데, 이로부터 173년이 지난 1893년 노르웨이의 작곡자이자 지휘자로 활동했던 할보르센은 이 곡에 완전히 매료되어, 하프시코드 원곡의 분위기는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악 듀오’(바이올린과 비올라 또는 첼로)의 격정적이고 화려한 곡으로 재창조해버렸다. 원곡에 못지않은 아니 원곡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의 편곡작품이 마치 새로운 걸작이 탄생한 것처럼 연주자와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표기된 것이다. 오늘 브런치스토리의 제목처럼 클래식 음악의 가장 모범적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사례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파사칼리아'는...


파사칼리아는 17세기 초 스페인에서 탄생한 무곡(舞曲) 형식이다. 그 어원은 ‘거리에서 걷다’라는 뜻의 스페인어 ‘파사칼레(pasacalle)’에서 유래했는데,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던 느린 3박자의 춤곡이 그 원형이기 때문이다. 파사칼리아가 유행할 당시 비슷한 형식의 샤콘느(Chaconne) 또한 스페인에서 유행하며 유럽으로 퍼졌는데, 두 형식은 점점 구별이 모호해지다가 바로크 시대 대표적 변주곡 형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무곡 형식은 프랑스 궁정으로 건너가 발레 음악과 궁정 연회에서 애용되었고, 자연스럽게 독립된 기악곡(변주곡)으로도 발전하게 된다. 이 형식의 주요한 특징은 동일한 짧은 음형 또는 선율이 저음 성부(베이스)에서 반복(ground bass, 바소 오스티나토)되면 그 위에 다양한 변주와 대위법적 선율이 점진적으로 얹혀지는 구조인데, 느린 3박자에 8마디 주요 주제가 계속 저음부에서 반복되고 이 위에서 화성, 리듬, 선율이 모두 다채롭게 변화한다.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프레스코발디, 프랑스의 라모, 쿠프랭 등은 파사칼리아를 바로크 모음곡의 어엿한 한 악장으로 끌어올려, 샤콘느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변주와 예술적 깊이를 더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바흐가 오르간과 바이올린을 위한 파사칼리아, 샤콘느 등의 명곡을 남기며 이 전통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칼리아 : 형식과 예술로의 도약


1720년 영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헨델(1685-1759)은 2권으로 엮인 첫 번째 건반 모음곡집인 '8개의 대모음곡집(8 Great Suites, HWV 426~433)'을 출판하게 되는데 이 모음곡의 7번째 곡(HWV 432)에 프랑스풍 서곡(French style Ouveruture), 사라방드, 지그 등의 바로크 무곡과 함께 스페인 무곡에서 유래한 바로크 변주악장 '파사칼리아'가 수록되어 있다.(7번 곡은 모두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Ouverture 2.Andante 3.Allergo 4.Sarabande 5.Gigue 6.Passcagli 순서다.)

헨델이 활동할 당시 하프시코드는 피아노가 보급되기 전 가장 중요한 건반악기로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악기였는데, 특히 헨델은 하프시코드의 맑고 또렷한 음색이 현란한 장식음과 꾸밈음에 잘 어울리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많은 변주곡들을 남겼다.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들은 다양한 춤곡(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등) 형식들을 엮어 각각의 춤의 색채와 느낌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가 모음곡 7번(HWV 432) 마지막에 파사칼리아를 배치한 이유는 꾸준한 베이스 라인과 변주를 통해 곡 전체에 통일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주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파사칼리아 형식은 고정된(반복되는) 저음 위에서 다양한 감정, 기교, 구조의 변화가 전개되고 이를 통해 변주마다 새로운 느낌의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서 바로크적 변주기법의 정수로 받아 여겨졌다. 동시대의 바흐뿐만 아니라 세기를 넘어 브람스, 베베른 등도 이런 파사칼리아 형식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계승하며, 클래식 변주곡의 전형적 모델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헨델을 재해석한 할보르센


헨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1864년, 노르웨이 드람멘에서 요한 할보르센(Johan Halvorsen)이 태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스톡홀름 왕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유럽 곳곳의 오케스트라(헬싱키, 라이프치히,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를린 등)에서 연주와 지휘, 교수로 활동한다. 귀국 후에는 베르겐 극장, 베르겐 필하모닉, 오슬로 국립극장 등 노르웨이 음악계를 이끈 지휘자이자, 새로운 민족적 낭만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잇는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할보르센은 단순히 ‘작곡가’라기보다, 다채로운 연주 경험과 자신의 뿌리(노르웨이 음악), 그리고 끊임없는 음악적 호기심을 함께 품었던 실용적 음악인이었다.

1893년, 할보르센은 우연히 발견한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G단조 중 마지막 악장 파사칼리아에 매료된다. 그리고, 173년 전 건반음악으로 쓰였던 곡을 ‘현악 듀오’(바이올린과 비올라 또는 첼로)가 격정적이면서도 화려한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할보르센은 변주악장 '파사칼리아'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 중주곡으로 편곡하면서 G단조 선율을 더 깊고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이는 여러 음을 동시에 누르는 건반악기의 화성을 표현하기 위해 현악기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술인 더블 스탑, 트리플 스탑 같이 여러 현을 동시에 연주하는 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찰현악기는 타건 악기보다 선율과 화성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연결력이 크기 때문에 감정의 전달력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데, 그래서 헨델의 하프시코드보다 훨씬 격정적으로 강렬한 감정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게 연주자들에게는 극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명곡으로 청중들은 170여 년 이후 새롭게 부활한 헨델의 격정적인 새로운 걸작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헨델의 '파스칼리아'에서는 15개로 구성된 변주를 할보르센은 12개의 변주로 재구성했지만, 한 대의 건반악기 소리를 현악기 두 대의 강렬한 연주로 깊이와 폭을 확장시킨 할보르센의 편곡 능력 때문에 이 곡은 항상 '헨델-할보르센의 파스칼리아'로 헨델의 원곡과 구분되어 표기된다. 할보르센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2 중주곡으로 편곡했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2중주로도 자주 연주된다.

할보르센은 원곡을 그저 옮기거나 덧칠한 것이 아니라, 헨델 시대의 정신과 자신의 음악적 언어, 노르웨이적 감수성을 섞어 완전히 새로운 작품, 즉 ‘온고지신’(옛것을 익혀 새로움을 만든다)의 완벽한 본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2 중주곡으로 앞서 한국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의 연주로 들었다면, 이 연주의 가장 유명한 버전인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 바이올리니스트와 비올리스트 모두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핀커스 주커만의 2중주로도 들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pAKA3rLENGU&list=RDpAKA3rLENGU&start_radio=1


■ 헨델의 원곡, 'Keyboard Suite No.7 HWV 432 'Passcaglia'을 페르난도 코델라의 하프시코드 연주로도 들어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13oQxH21TWg&list=RD13oQxH21TWg&start_radio=1


■ 건반 위의 거인으로 불렸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사위)의 피아노 연주로도 들어보고,

- https://www.youtube.com/watch?v=bLgovhUUS6E


■ '파사칼리아' 주제를 모티브로 한 재밌는 편곡들이 있는데, 플루트 합주곡과 할브로센의 편곡 버전을 다시 세미 클래식 버전의 피아노 곡으로 연주한 버전(어디선가 자주 들었던)도 들어보자.

(플루트합주곡) https://www.youtube.com/watch?v=2aCeYZekP0E

(세미 클래식 피아노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LFcvYKB0f5E



♥ 그늘 만들기


- 홍수희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


손바닥 하나로

하늘 가리고


애써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홀로 선 내 그림자

너무 작았네


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 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


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 가듯

우리도 손깍지를

끼워봅시다


네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고

네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


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 아래 쉬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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