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여름도 곧 지나갈 것이다...

- 2025년 8월 4일 -

by 최용수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1685~1759)

<미뉴에트 사단조, HWV 434/4(빌헬름 켐프 편곡)/ Menuett in G Minor, HWV 434/4 (Arr. by Wilhelm Kempff)>


https://www.youtube.com/watch?v=5ctnesYYicM&list=RD5ctnesYYicM&start_radio=1

어제 내린 비 때문이겠지만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졌다. 그동안 극한의 폭염에 시달리며 에어컨 바람으로 버텨내던 긴 여름의 시간이 이제 드디어 그 끝을 향해가는 건가 싶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주 일기예보를 보니 주중 내내 비소식이 있어서 최저기온은 오늘 아침처럼 섭씨 24도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쫓아 아파트를 벗어나니 주변에 휴가를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늘 아침은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동네 거리가 여유롭고 한산하다.

밤늦게 태백에서 운전해 오느라 일어날 때는 몸이 제법 무거웠는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동네 거리를 걷다 보니 마치 물에 소금이 녹듯이 피로가 시원한 바람에 대기 중으로 녹아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산책 중에 휴대폰으로 듣고 있는 헨델의 미뉴에트 G단조의 아름다운 멜로디도 내 가볍고 여유로운 발걸음에 한 몫했을 것이다.




헨델의 음악에는 '유려한 벨칸토의 성악적 멜로디'가 담겨 있다는 음악학자들의 평가 그대로 이 곡은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의 우아한 궤적처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대지를 적시듯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빌헬름 켐프의 편곡은 헨델이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하프시코드의 연주보다 더 편안한 속도와 부드러움을 담고 있어서 좋았지만, 헨델의 하프시코드 버전은 우아하지만 부산하게 월요일 아침 출근준비를 하며 듣기에는 또 괜찮다.

곡이 길지 않아 빌헬름 켐프의 피아노 편곡 버전 다음으로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미뉴에트 G단조(HWV 434)를 듣는다.

- https://www.youtube.com/watch?v=RzwPkPb7KPg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이 곡이 관심을 모았던 때는 아마 재작년 봄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헨델의 작품과 브람스가 편곡한 헨델 곡들을 모은 앨범, <헨델 프로젝트>가 미국 빌보드 클래식 주간 차트 '트래디셔널 클래식 앨범(Traditional Classical Albums)' 부문 1위를 기록한 기념으로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이 곡을 연주했을 때였을 것이다.

쇼팽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동북아시아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조성진은 이미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슈베르트, 리스트, 브람스 등의 연주에서 세련되고 우아한 해석과 기교를 선보이며 피아노계의 비루투오소로서 이력을 찬찬히 채워가고 있던 무렵이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 미국의 빌보드 차트의 클래식 부문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클래식 쪽 음반 판매량은 팝 부분과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이슈들이 미국 쪽에서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임윤찬의 등장으로 요즘은 분위기가 좀 바뀌기는 했다.)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클래식 음반시장의 원탑,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고 세계 각지의 연주회와 음반녹음을 이어가고 있는데, 작년 2월에 발매한 <헨델 프로젝트>는 그가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한 6번째 정규앨범이다. 이 곡은 이 앨범의 맨 마지막 트랙에 실려있다.


(이 앨범은 모두 4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헨델의 건반모음곡 중 HWV 427, HWV 433, HWV 430에서 발췌한 13곡, 그리고 헨델의 곡들 변주한 브람스의 편곡 소품(Op.24)들이 가장 많은 26곡, 그리고 다시 헨델의 사라방드(Bb장조, HWV 440/3)와 빌헬름 켐프가 편곡한 미뉴에트(G단조)가 마지막에 수록되었다.)


헨델의 건반 모음곡은 악보에 디테일한 지시가 거의 없어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색깔과 음악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별로, 편곡된 버전 별로도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빌헬름 켐프의 편곡 버전이 가장 감정적으로 와닿는다. 특히 오늘 아침처럼 비가 내려 차분해진 대기 사이를 뚫고 부드럽게 살갗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곡의 느낌과 너무 잘 어울린다.

원래 이 곡은 헨델의 Bb장조하프시코드 모음곡(HWV 434) 중 하나로 듣기에는 우아하고 편안한 곡이지만,

당시에는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난곡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왜 헨델이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인지 왜 바흐를 '엄격한 아버지'에 헨델을 '우아한 어머니'에 비유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생전에 베토벤은 헨델의 작품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배우고 싶으신가요? 그럼, 헨델에게 가서 간단한 방법으로 큰 효과를 얻는 방법을 배우십시오."라고 했단다. 바흐를 흔히 '푸가의 대가'(사실 바흐는 푸가뿐만 아니라 화성과 리듬 모두에서 혁신적이고 뛰어난 천재적 작곡가였지만)라고 한다면, 헨델은 '오라토리오의 대가' 혹은 '드라마와 합창의 대가'로 부를 수 있을 텐데, 그건 아마도 헨델이 섬세하지만 우아하고 매력적인 아리아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걸 잘 꿰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곡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월요일 아침부터 깊은 감상에 빠져있지 않아도 되는 곡이라 더 어울리는 것 같다.


■ 앞서 조성진의 연주는 빌헬름 켐프 편곡 버전을 들어보았다면, 정통 낭망주의 해석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던 빌헬름 켐프 본인의 연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5VMMwcnSu0E&list=RD5VMMwcnSu0E&start_radio=1


■ 헨델의 미뉴에트를 주제로 1861년 브람스가 작곡한 피아노 독주를 위한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Op. 24)도 조성진의 연주로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7NWfc21yuUE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숲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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