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25일 월요일 -
♡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가곡집『백조의 노래 』 중 4번 '세레나데' D.957/ 'Ständchen', 『Schwanengesang 』D.957/4 >
■ https://www.youtube.com/watch?v=oaq-6U7ZJt8
지난 밤 창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던 매미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그쳤다. 10여 일 전부터 맹렬한 매미 소리에 묻혀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소곤거리듯 "뚜르르 뚜르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엔 다정한 귀뚜라미 소리만 남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조용한 아침, 산책을 나서다 화단에서 지난 몇 주 맹렬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던 울음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이제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조용히 풀 숲에 누워 영원의 침묵 속으로 들어간 매미들이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들의 소중한 자양분(滋養分)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미는 종에 따라 짧게는 2~3년, 길게는 7년 이상을 땅속에서 보내고, '우화(羽化, 탈피라고도 한다)'해 고작 2~3주 동안 성충으로 살며, 짝짓기와 산란을 마친다고 한다.
7년의 기다림과 목숨을 건 2주 남짓한 사랑...
지난 몇 주 동안 너희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울어야 했던 이유...
"나 여기 있어!", "나 살아 있어!", "나 사랑하고 싶어!"
미안하다. 네 그 절박한 외침조차 올여름은 제대로 들어주질 못했구나.
요즘은 인간들도 매일 소리 없이 "나 여기 있어!", "나 살아 있어!", "나 사랑하고 싶어!"를 외치며 살아가는구나.
그래서 너희들에게 존재의 고독을 이기는 법을 다시 배운다. 단 한 번의 사랑이라도 맹렬하고 처절하게...
이 곡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났던 그 해에 쓰여진 가곡집 '백조의 노래(Schwanengesang)'에 수록된 14곡 중 4번째 곡이다. 이 작곡집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829년 빈의 악보출판업자 토비아스 하슬링어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가곡집의 제목 '백조의 노래'는, 백조는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운다는 전설에서 차용해 토비아스 하슬링어가 붙였다.
'세레나데(Serenade)'는 이탈리아어로 '저녁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집 창가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부르는 노래를 가리킨다. 한자로는 소야곡(小夜曲)이라고도 한다. 원래 세레나데는 밤에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따뜻하고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곡이지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평소 "이 세상에 흥겨운 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삶을 살아야 했던 슈베르트였기에 왠지 모를 쓸쓸함과 아련함이 배어 있다.
특히 이 세레나데는 슈베르트의 첫사랑이었던 테레제 그로브(Therese Grob, 1798~1875)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슈베르트는 그의 나이 17살 때인 1814년 리히텐탈 교회에서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를 맡았던 테레제를 처음 만났다. 테레제는 뛰어난 소프라노였고, 그녀가 맑고 고운 목소리로 부른 슈베르트의 미사 솔로는 단박에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슈베르트의 집안과 테레즈의 집안은 가까운 이웃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음악으로 맺어진 둘의 인연은 곧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다.
당시 습작기를 지나고 있던 슈베르트는 매우 가난했었고,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경제적 부양능력이 없는 남성의 결혼을 법으로 막고 있었다.(당시 오스트리아 재상(宰相) 메테르리히(Metternich)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테레제와 결혼하기 위해 1816년 4월 뮌헨 교사연수대학(Lehrerseminar München)의 음악교사 채용에 지원했으나, 최종적으로 낙방하고 만다. 슈베르트는 미처 경제적 준비는 안됐지만 1816년 청혼을 하게 되고, 그녀의 부모는 가난한 슈베르트에게 딸을 맡길 마음이 전혀 없었다. 테레제 자신도 이후 당시에 대한 회상에서 “나는 슈베르트에게 특별한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했단다.
결국 1820년 11월 테레제는 마을의 빵집 주인 요한 베르그만(Johann Bergmann)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이루게 되고 이 소식을 친구의 편지로 전해 들은 슈베르트는 큰 실연의 상실을 이겨내야 했다.
슈베르트는 테레제에게 청혼을 시도한 직후인 1816년 초, 테레제 그로브와의 관계를 기념하기 위해 17곡 분량의 가곡 모음집 ‘테레제 그로브 가곡첩(Therese-Grob-Lieder)’을 스스로 편집하였다. 17곡 중 14곡은 이미 출판되거나 타인들에게 바쳐진 곡이었으나 세 곡(“Sehnsucht”, “An den Mond”, “Trost im Liede”)은 오직 이 필사본 한 권에만 존재한다.
3곡의 유일본은 모두 테레제의 이름이 명시된 헌정 제목을 갖고 있어, 슈베르트가 테레제 그로브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사랑을 보여준다. 실연의 슬픔과 결혼의 실패에 대한 상실감이 가곡 곳곳에 담겨있는데, 특히 “Sehnsucht(그리움)”에서는 첫사랑의 애틋함과 이루지 못한 결혼 생활에 대한 마음이 함께 담겨있다.
(*“Sehnsucht(그리움)”은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5CSjPd0Ifec)
테레제의 다른 남자와의 결혼 소식은 슈베르트에게 깊은 상실감의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한 편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승화시켜 그의 가곡 속 서정적 멜로디에서 살려내기 시작했다. 테레제가 결혼하던 그해 작곡된 그의 세레나데(봄의 믿음, D.686)에는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아픔이 서정적 멜로디에 실려 묘한 아름다움으로 되살아난다.
* 프리츠 분덜리히의 노래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q9zsIcYyjxY
테레제와 슈베르트의 관계는 비록 결혼으로 이어지진 못하고,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끝나버렸지만, 섬세하고 내성적인 슈베르트에게 테레제는 평생 슈베르트의 감정과 음악에 남았다. 슈베르트는 테레제에 대한 감정에 영감을 받은 많은 가곡들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Grechen am Spinnrade"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그레첸이 연인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담고 있는데, 슈베르트는 주인공 그레첸을 통해 테레즈에 대한 그의 감정 그리움, 열정, 고통 등을 표현하고 있다.
1827년부터 1828년까지 슈베르트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가운데도 창작 의욕이 폭발하며 가곡·실내악·합창곡 등을 쏟아냈다. 1827년의 대표적인 기악곡들은 <현악 4중주 제13번 D.804 “Rosamunde”>,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D.958 in C장조>, <현악 4중주 제14번 D.810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등 이 있고, 1828년에는 <교향곡 제9번 D.944 “The Great” in C장조>, <피아노 소나타 제18번 D.959 in A장조>, < 피아노 소나타 제19번 D.960 in B♭장조> 등의 걸작들을 쏟아냈다. 이외에도 피아노를 위한 다수의 즉흥곡·환상곡·연습곡(예: D.946 연습곡 세 곡)과, 장례 미사 D.950·미사 C장조 D.452 등 대규모 성악·관현악 곡들까지...
이 두 해에 슈베르트가 쏟아낸 걸작들을 감안하면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인생의 끝에 다다른 비애와 성찰’이 음악에 깊이 스며든 이 시기 슈베르트는 테레제 그로브와의 첫사랑이 남긴 그리움과 상실감이 더욱 짙게 투영된 가곡집 또한 남겼다. 1827년 긴 겨울밤 죽음의 고독과 싸우며 완성한 가곡집 “겨울나그네(Winterreise, D.911)” 그리고, 1828년 건강이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서 그의 마지막 남은 창작의 불꽃을 피워 완성한 가곡집 ‘백조의 노래(Schwanengesang, D.957)’... 이 가곡집 중 처음 소개한 네 번째 곡 “Ständchen (Serenade), D.957/4”을 듣고 있으면 평생 고단한 삶 속에서도 그의 음악을 지탱해 온 테레제를 향한 플라토닉한 사랑의 힘을 느끼게 된다.
■ 리스트는 슈베르트 사후 17년이 지난 1845년 무렵, 슈베르트의 가곡 D.957/4 “Ständchen”을 바탕으로 한 피아노 전주곡 겸 편곡 작품을 완성했는데, 슈베르트 원곡의 투명한 멜로디와 6/8박자 리듬을 화려한 피아니즘으로 재해석하여, 당시 피아노 살롱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의 연주로 감상해 보자. 이 곡은 TV드라마 ‘여름향기’(2003)에서도 사용되어 특히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슈베르트의 대표곡이 되었다.
- https://youtu.be/9h35VSz2Kkc?si=oKB0wwYDnta_58tk
♥ 매미가 없던 여름
- 김광규
감나무에서 노래하던 매미 한 마리
날아가다 갑자기 공중에서 멈추었다
아하 거미줄이 쳐 있었구나
추녀 끝에 숨어 있던 거미가
몸부림치는 매미를 단숨에 묶어버렸다
양심이나 이념 같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후회나 변명도 쓸데없었다
일곱 해 동안 다듬어온
매미의 아름다운 목청은
겨우 이레 만에
거미밥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걸리면 그만이다
매미들은 노래를 멈추고
날지도 않았다
유달리 무덥고 긴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