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26일 화요일 -
♡ 에르만노 볼프-페라리(Ermanno Wolf-Ferrari, 1876~1948)
<오페라『성모의 보석 』중 '간주곡 ' / ' Intermezzo' from Opera『I gioielli della Madonna/The Jewels of the Madonna 』>
■ https://www.youtube.com/watch?v=pVcKnGWQ_Xc
오늘 아침 거리는 천천히 걷는 사람들보다 유독 뛰어가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띈다. 좀 늦은 시간에 동네 산책을 나선 때문일까? 그들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미련이 남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후회가 남기 때문에 전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이 한 인권운동가를 취재하면서 인터뷰했던 내용이다.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은 생계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계를 위한 일들에서 어떤 숭고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때쯤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자신의 존재적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별다른 생각 없이 해왔던 수많은 일상의 행위들 - 잠자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다투고 했던 - 에 대해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행히 존재론적 허무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처음의 존재론적 질문을 다음의 질문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돌이켜 보면 내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다고 느낀 바로 그 시점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책임과 의무에 해당하는 질문에 굉장한 부담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일상에 지쳐가는 이유가 반복되는 규칙성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젊었던 시절 선배나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꿈을 꾸더라도 현실에 발을 딛고 꾸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원대한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잘 따져서 실사구시 하는 자세를 가져라'라는 말로 이해했는데, 요즘 나는 이 말을 '지금 현재를 사는 존재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되, 하고 싶은 꿈과 욕망 또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해라'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존재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들이다.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의무와 책임,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의무와 책임같이, 남편으로서, 언론인으로서, 친구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조카로서...
그리고, 그중에서도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존재로서의 의무와 책임이다. 내 존재가 행복해지도록 내 존재가 존재적 허무에 빠지지 않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일...
그래서, 요즘 나는 내가 죽기 전에 도전해야 할 목록들을 다시 정리해보고 있다. 내 존재론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동시에 또 내가 하고 싶은 그 일들을.
오늘 아침에는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현실의 팍팍함을 느낄 수 있는 사실주의 오페라에서 곡을 고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고르고 보니 애절하고 잔잔하다. 오페라 간주곡이지만, 오페라는 거의 공연되지 않고 이 간주곡만 널리 알려진 에르만느 볼프 페라리의 '성모의 보석' 간주곡이다.
볼프-페라리는 오페라 부파(희극적 오페라)의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으며 기억에 남아 있는 곡은 3막의 베리즈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 <성모의 보석>(1911) 중 1막과 2막 사이의 이 간주곡뿐이다.
<성모의 보석>은 제목만 들었을 때는 종교적 내용의 오페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은 실제 범죄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오페라다. 성모 축제로 들뜬 나폴리를 무대로 자유분방한 여주인공 마리엘라와 어릴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의붓오빠이자 대장장이인 젠나로, 그리고 부랑자들의 두목이자 비밀결사의 리더 라파엘레 등이 벌이는 사랑의 치정극을 다룬 오페라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극 중 '성모의 보석'은 나폴리의 한 마을 성모상에 박혀있는 보석으로 마을의 상징으로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이 보석에 손을 대면 저주가 내린다는 전설이 있다. 이 마을의 부랑자의 두목 라파엘레는 아름다운 처녀 마리엘라를 유혹하기 위해 그 보석을 훔쳐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의붓여동생 마리엘라를 사랑해 온 의붓오빠 젠나로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이 그 보석을 먼저 훔쳐 의붓여동생 마리엘라에 주며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에 라파엘레는 젠나로에게 순결을 잃은 마리엘라를 버리게 되고, 마리엘레는 저주받은 성모의 보석까지 바치겠다고 한 라파엘라의 유혹에 넘어가 있던 상태라 근친상간을 당하고 믿었던 사랑에게도 버림을 받게 되자 그것이 성모의 보석의 저주라 생각해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젠나로 또한 성모의 보석을 훔쳤다는 두려움에 자살하고 만다.
이 오페라는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이며, 신문기사를 토대로 이탈리아 극작가 골리스차아니와 찬가리니가 함께 대본을 쓰고 볼프-페라리가 곡을 붙여, 1911년 12월 23일 베를린 쿠르퓌르스텐오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이 오페라는 극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에서는 공연할 수 없었는데, 이복남매의 금지된 사랑과 성모의 보석을 훔친 자에게 여성의 순결을 바친다는 설정 등이 신성모독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가톨릭 교회에서 상연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의 공연은 1953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이 오페라는 독일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모두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베리스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를 지향하면서도 극본의 설정이 비현실적이고 무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성모의 보석을 훔쳐 오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무모한 발상'이나 '그것을 훔쳐 오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순결도 바친다는 어설픈 설정'은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공감하기 어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볼프-페라리는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에서 두각을 드러낸 작곡가로 그가 왜 <성모의 보석> 같은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에 나서게 되었는지 자료들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결국 오페라 <성모의 보석>은 그의 유일한 베리스모 오페라로 남게 되었다.(아마도 볼프-페라리가 <성모의 보석>을 작곡하게 된 특별한 개인적 동기는 없어 보이지만, 당시의 예술적 흐름과 오페라 시장의 요구, 그리고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대본은 문제가 많았지만, 간주곡 한 작품만으로도 볼프-페라리의 음악적 역량을 십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오페라였지만 그의 이름은 이 간주곡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듯하다.
베리스모(Verismo)는 이탈리아어로 '사실주의'를 뜻하는데, 보통은 19세기 후반(1875-1895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문학 및 오페라 운동을 가리킨다. 1890년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오페라 장르에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전통 오페라의 왕, 귀족, 신화적 인대신 노동자, 농민, 어민 등 평범한 서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불륜, 부정, 살인, 치정, 질투와 같은 인간의 추악함과 잔학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사회적 불의와 계급 갈등에 대한 비판 의식 또한 강하다.
음악적으로는 화려한 기교와 꾸밈이 많았던 전통적 형식을 거부하고, 인간 본연의 감정에 중점을 둔 단순하고 직관적인 멜로디를 사용한다. 강렬한 심리묘사를 위해 불협화음이나 반음계적 화성을 쓰기도 하고, 기교적인 아리아 대신 절규하는 듯한 레치타티보를 중시하였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마스카니(《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팔리아치》), 조르다노(《안드레아 셰니에》), 푸치니(《토스카》, 《나비부인》) 등이 있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뿌리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에 맞닿아 있다. 에밀 졸라, 헨리크 입센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베리스모 운동이 일어나면서 1900년대에 절정기를 구가하다 1920년대에 상징주의, 표현주의 등 새로운 예술 사조에 밀려 퇴조했다. 이 장르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 때문에 관객들이 더 깊이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베리스모의 미학이 작가는 주관보다는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가 주는 감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전통적인 오페라의 미학이 추구하는 카타르시스와는 다르다. 전통적인 오페라들이 신화와 영웅의 서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고통과 감정을 비극적 서사로 표현한다면, 베리스모 오페라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주제로 삼아 등장인물들의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19세기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오페라와 음악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베리스모 오페라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현실적 접근을 통해 관객과 예술 사이의 괴리감을 없애고,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감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오페라의 한 장르로 평가된다.
■ 앞서 들은 간주곡을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도 다시 들어보고
- https://youtu.be/x_B7Iavkuhs
■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오페라지만『성모의 보석 』중 '타란텔라'와 '세레나데'도 이어서 감상해 보자
*타란텔라는 전통적으로 3/8박자나 6/8박자의 회전하는 듯한 빠른 춤곡 형식으로 여기서는 1막 나폴리에서의 성모축일을 배경으로 여 주인공 마리엘라가 동네 건달들과 어울리며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드러낼 때 사용된 듯 하다.
* 이 세레다네는 제2막에서 라파엘레가 마리엘라에게 부르는 곡으로 정확한 제목은 "Aprila, o bella, la fenestrella"(아름다운 그대여, 창문을 열어 다오)이다. 극 중에서는 구체적으로는 "젠나로가 어디론가 나가자 잠시 후 라파엘레가 동료들을 거느리고 마리엘라의 집에 와서 세레나데를 부른다"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라파엘레가 마리엘라를 유혹하기 위해 부르는 곡이다.
(타란텔라) - https://youtu.be/BxpCNtAz9Ug
(세레나데) - https://www.youtube.com/watch?v=wYMgAd_nTR0
♥ 사형수의 인생
- 용혜원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아주 불행하게도
사형이 이미 선고된 사람들이다
사람마다 집행일이 제각기 다를 뿐
모두 다 동일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운명
순간순간 다가오는
죽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루라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알고 보면 한 서리고 수고스러운
허무한 삶이지만
아주 많이 쓸쓸하고
아주 많이 외롭더라도
잊고 사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고 축복인가
죽음을 정면에 내세우면
삶이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내일은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오늘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
조금은 덜 비참하고
더 나은 인생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