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27일 수요일 -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교향곡 40번 사단조 K.550 / Symphony No. 40 in G minor, K.550>
■ https://www.youtube.com/watch?v=r2-asx8cY0s (1악장 Molto allegro)
오늘은 조금 일찍 잠에서 깨었다. AI 강좌를 들으러 부천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퇴직이 4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니 휴가를 내서라도 이런 수고쯤은 감내해야 한다. 70살까지는 어떻게든 세상에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할 것 같으니까.
에어컨이 언제 꺼졌는지 조금 후덥지근해진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느라 창문을 여니 좀 습하기는 하지만 바람의 열기는 확실히 식었다. 9월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겠지만, 확실히 짧아진 낮의 시간만큼 바람에 남아있는 태양의 열기도 줄었다. 모처럼 시원해진 새벽바람을 느끼며 아파트를 벗어났다. 8월의 폭염만큼 요 몇 주 맹렬했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어느새 '귀뚤귀뚤~'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들이 새벽대기를 경쾌하게 진동시킨다. 아파트 입구를 나서자마자 어스름한 동쪽하늘에선 "달이 없는 새벽하늘은 내가 주인공이야"라며 노랗고 선명한 금성의 밝은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시나브로 여름이 지나간다.
지난 몇 달 중 가장 상쾌한 아침이다. 폭염에 찌들었던 지난여름은 내 생체시계가 뒤죽박죽, 이런저런 번잡한 일들도 많아서 정리되지 않는 혼돈의 일상 그 자체였는데 오늘 아침은 새로운 계절에 대한 귀뚜라미들의 귀띔 때문일까?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다시 질서 정연하게 돌아온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의 음악은 조화와 균형의 정점이라고 할만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골랐다. 이 교향곡은 모차르트의 단 2개밖에 없는 단조 교향곡으로 모차르트 시대의 음악평론가들은 이 곡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음악'이라고도 했는데, 내겐 '이 세상은 비록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한 괜찮은 곳이야'하며 눈물을 꾹 참고 미소 짓는 모차르트의 모습 같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은 1788년 7월 25일 빈에서 완성되었는데 교향곡 39번, 41번과 더불어 단 6주 만에 연이어 작곡된 3부작의 중심을 이루는 작품으로, 모차르트가 생애에 단 두 번만 사용한 단조 교향곡 중 하나다.
1788년은 여러모로 모차르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그 시작은 그 해 2월에 발발한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이었다. 전쟁의 여파로 빈의 음악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고, 전쟁자금을 대느라 귀족들의 후원은 거의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해 6월 넷째 딸 테레지아가 장 질환으로 생후 6개월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모차르트와 콘스탄체 부부는 모두 6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성인까지 살아남은 자식은 둘째 칼 토마스와 여섯째 프란츠 크사버 볼프강 밖에 없었다. 테레지아 이전에 첫째 라이문트 레오폴드는 1783년, 셋째 요한 토마스 레오폴드는 1786년, 넷째 테레지아는 1788년, 그러니까 모차르트 부부는 3년간 3명의 자녀를 잃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
1781년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와 결별하고, 빈으로 건너와 활동을 시작했을 때 모차르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780년대 중반까지 모차르트는 빈 최고 스타로 군림했다. 하지만, 1786년 셋째 아들 레오폴드의 죽음 이후 그는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모차르트의 새로운 음악은 조금씩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잃어갔다.
1781년 모차르트가 빈에 정착했을 무렵의 수입과 비교해 보면, 1787년에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1788년에는 1781년의 34% 수준이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가족들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빈 외곽의 알저그룬트(Alsergrund)로 이사해야 했고, 자녀들의 잦은 출산과 사망으로 아내 콘스탄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요양비에 치료비 부담까지 가중되었다.
모차르트는 이 시기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며 1788년 여름 요양지에 있던 아내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죽음과 같은 검은 생각들(schwarze Gedanken)"에 사로잡혀 있다고 썼다.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던 친구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돈을 빌려달라며 보낸 편지들에는 늘 '불쌍한 내 처지'에 대한 애절한 호소가 담겨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작품 의뢰가 줄고 발표 기회조차 사라진 이 절망적인 시기에 모차르트는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3부작 교향곡 39, 40, 41번을 써낸다. 그것도 고작 6주 만에.
1788년 여름은 모차르트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이자 그의 천재성이 폭발한 기적의 계절이었다. 6월 26일 교향곡 39번을 완성한 후, 7월 25일에는 교향곡 40번, 그리고 8월 10일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차례대로 완성했다. 총 45일, 고작 6주 반이라는 놀라운 속도였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모차르트가 펜으로 악보에 쓴 원고에는 수정이나 지운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마치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된 음악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처럼, 한 마디씩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써 내려간 것이다.
후세의 모차르트 연구자들은 이런 놀라운 속도가 가능했던 이유를 모차르트의 천재적 재능과 함께 그가 5세부터 작곡을 시작해 32세까지 27년간 쌓아온 음악적 경험 때문이라고 본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며 작곡 기법을 체계적으로 습득했고, 이것이 토대가 되어 성인이 된 후에는 규칙을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란 것이다.
하지만 단 45일 만에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형식의 완성이라고 평가받는 교향곡 39번, 40번, 41번을 썼다는 것은 여전히 "상상하기 어려운(a feat that's difficult to imagine)"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는 개인적 비극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차원을 넘어서, 극도의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창작 의지를 잃지 않은 예술가의 의지와 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신이 천재 예술가를 일깨우기 위해 그 고통을 안겨준 건가? ㅠㅠ)
모차르트는 41개의 교향곡 중 단조로 쓴 작품이 단 두 곡뿐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40번이다(다른 하나는 25번 K.183).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단조 교향곡은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이는 당시 교향곡이 주로 "오락과 즐거움을 위한 음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 작품에서 과감히 사단조를 택해 자신의 내면적 고뇌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20세기 음악학자 찰스 로젠은 그의 대표적 저서 『고전 양식』(1971)에서 40번 교향곡을 "열정, 폭력, 그리고 슬픔의 작품"으로 규정하여 이후 현대 연주자들이 40번 교향곡을 비극적이고 격정적인 작품으로 해석하게되는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1악장 Molto allegro -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첫 악장은 사단조의 비장하면서도 긴박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마치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듯한 "da-da-da-DUM"의 유명한 동기가 전체 악장을 지배하며, 이 단순해 보이는 네 개의 음표가 놀랍도록 강력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베토벤도 후에 자신의 5번 교향곡에서 이와 비슷한 운명적 동기를 사용했을 정도로, 이 주제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작 중 하나다.
소나타 형식의 완벽한 구조 안에서 주제들이 대화하고 발전하며 변주되는 과정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이 서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듯한데, 빠른 템포와 단조의 어두운 색채가 어우러져 모차르트 특유의 천재성과 극적 표현력이 잘 드러난다.
2악장 Andante - "폭풍 속의 고요"
두 번째 악장은 1악장의 격렬한 감정을 진정시키듯 E♭장조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된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후 찾아온 고요한 순간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완전한 평온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간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단조로 전환되며 불안과 고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이는 마치 "눈물을 참으며 미소 짓는" 모차르트 자신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순간으로, 위로와 체념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과 개인적 고통을 겪고 있던 작곡가의 내면이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나타난 듯하다.
3악장 Menuetto: Allegretto – Trio - "슬픈 무도회"
세 번째 악장은 전통적인 미뉴에트 형식을 따르지만, 사단조의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 일반적인 궁정 무곡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마치 "춤추기에는 너무 슬프고, 슬퍼하기에는 너무 우아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궁정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독을 드러내는 듯하다.
중간부의 트리오에서는 밝은 G장조로 전환되며 목관악기들의 따뜻한 음색이 마치 "잠시 찾아온 희망의 빛"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미뉴에트로 돌아가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씁쓸한 대조를 이루며, 이는 모차르트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음악으로 완벽하게 포착한 것으로 해석된다.
4악장 Allegro assai - "절망적 질주"
마지막 악장은 다시 G단조의 긴박함으로 귀환하며, 악장의 시작부터 폭풍우 치는 바다와 같은 격정적인 에너지가 분출된다. 1악장보다도 더욱 빠르고 격렬한 이 피날레는 마치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을 보는 듯하다. 주제들의 대위법적 발전과 극적인 전개는 "절망적 질주"라고 할 만한 압도적 에너지를 선사하며, 특히 마지막 코다 부분의 프레스토는 말 그대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1악장의 주제가 직접적으로 재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극적 긴장과 사단조의 비극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통일감을 완성하고 있다.
이 교향곡은 모차르트가 인생 최대의 시련기에 작곡한 작품답게, 개인적 고난을 보편적 예술로 승화시킨 불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각 악장은 인간의 감정이 가진 복잡함과 깊이를 보여주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원한 음악으로 남아 많은 음악에 그 영향을 끼쳤다. 록과 팝 음악에도...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는 "Child in Time" 작곡 시 40번 1악장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스카이의 "Toccata"는 아예 40번의 주제를 직접 인용했다.
영화 음악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아마데우스"(1984), "쇼생크 탈출", "엑스맨: 아포칼립스" 등 수많은 영화에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으로 활용되었다.
■ 칼 뵘(Karl Böhm)과 빈 필하모닉의 1977년 녹음은 "오스트리아 정통 해석"으로 평가받지만 칼 뵘의 나치 활동 전력때문에... ㅠㅠ
- https://www.youtube.com/watch?v=qX7J1HejyHU&t=7s
■ 레너드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의 1962년 연주는 "감정의 깊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https://youtu.be/aU8mGCcTp5U?si=nu7TCgdgibNZykwS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고악기 연주는 "모차르트 시대 원음 재현"에 도전한 혁신적 해석으로 평가받는 데 당연히 개인적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z_4jMxbwmVc&t=17s
♥ 어떤 첼리스트의 노동
- 한혜영
연주자는 꽃잎을 불러모으거나
깃털을 불러모으는 마술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므로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란
깃털로 만든 이불을 덮고 누워
꽃잎에서 추출한 향기를 맡는 것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방금 전에서야 연주자들 역시
노동자라는 사실을 어이없이 깨달은 것이에요
탄맥(炭脈)을 찾아 끝도 없이 내려가는
광부(鑛夫)라는 거, 삽 한 자루가
전 재산인 저 첼리스트를 보란 말이지요
땀 뚝뚝 흘려대며 필사적으로 놀려대는
저 삽질
어지간해서는 가슴 더워지지 않는
뭇 영혼에게 땔감 대주는 일이란 얼마나
고단하고 숨막히는 작업인가요
진작 땔감 떨어진 무쇠난로처럼
싸늘하게 식어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있던
내 가슴에 석탄 한 삽을 막 집어넣고 돌아서는
첼리스트의 등허리가 그사이 부쩍 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