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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식 Jun 27. 2023

레트로에 대해 말할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옛날 것들을 좋아한다. 옛날 음악, 옛날 방식, 옛날 물건 등등. 옛날이라는 표현이 자칫하면 굉장히 촌스럽고 꼰대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 그 기능을 잃지 않은 것들을 좋아한다. 요즘 쓰는 단어로는 ‘레트로’ 혹은 ‘빈티지’ 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정교한 의미로 ‘레트로'라는 말보다 ‘빈티지’ 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레트로는 옛날에 있던 것을 현대에 와서 복원한 느낌이고 빈티지는 옛날에 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느낌이 든다. 그래서 빈티지가 더 좋다. 나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본질은 그대로인 것들을 좋아한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빈티지다.


사실 빈티지는 이미 많은 분야에 매니아 층을 보유하고 있는 취향의 한 형태이다. 빈티지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 출시되는 현행 신발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오래된 나이키 신발이나 컨버스, 반스 등을 모은다. 빈티지 티셔츠는 또 어떤가. 20년 전에 출시된 티셔츠 하나에 100만원이 넘는 현상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패션만이 아니다. 30년이 훌쩍 넘은 빈티지 바이크는 왠만한 대형차 가격이고 빈티지 가구는 억소리가 날 정도다. 가격만으로 그 물건의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빈티지란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구입할 수 있는 취향이다’ 라고 했다. 이렇게나 오래된 중고 물건을 신제품보다 더 비싸게 구입하는게 일반적인 형태의 소비는 아닌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해서 빈티지를 좋아하는 것을 두고 누군가는 정신병이라 말할 수도 있다. 온전한 새 제품을 두고 그것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중고 제품을 사는게 이해되는 행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그 물건의 사용 여부나 겉모습의 상태에만 치중되어 있는 판단 방식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빈티지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그 기능과 본질은 그대로인 것들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명품 중에 명품이다. 그만큼 만듦새가 완벽한 것이니까. 그 만듦새 만으로도 빈티지에 빠질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사회의 잣대보다 내 신념을 더 중요시 한다. 그래서 물건에 담긴 역사와 세월의 가치가 ‘brand new’ 의 가치보다 월등히 높다고 믿는다. 단지 만듦새를 넘어서 오래된 물건 안에 깃든 이야기들과 역사가 그 물건들의 가치를 높인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에겐 정신병처럼 보일지라도. 나 같은 사람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빈티지를 사랑한다. 빈티지 물건들이 견뎌온 세월과 안에 담긴 그 고유의 역사를 늘 동경한다. 빈티지 바이크에 앉아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7번 국도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100만원이 넘는 빈티지 반스 슬립온을 플렉스해서 당당하게 가로수길을 거니는 꿈을 꾸기도 한다. 빈티지는 내 꿈이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그 꿈을 이뤄낸 나의 첫 빈티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세월의 소리를 품어 깊은 울림을 내는 악기. 내 빈티지 역사는 올드 기타로 시작되었다.


내 첫 빈티지는 1976년도에 생산된 올드 기타였다. 2012년의 21살 청년에게 15년이나 더 앞서 존재했던 물건이 온 것이다. 같은 가격으로 혹은 그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좋은 새 제품을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새 것보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그 빈티지 기타가 내가 연주하고 싶은 소리를 냈다. 어쩌면 내가 닮고 싶은 소리였을 수도 있다. 많은 세월을 이겨내 익을대로 익은 나무에서 나는 그 소리는 아무리 좋은 기술을 사용해 악기를 만들어도 구현할 수 없는 소리였다. 이는 시간 앞에 선 우리가 늘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올드 기타의 깊은 소리는 내게 새로운 기타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더 이상 변형이 이루어 지지 않을 만큼 마른 나무에서 나는 소리는 내게 기타라는 악기가 ‘울림악기’ 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것이다. 내 마음을 울린 울림악기. 명쾌하게 앞서다 가도 뒤에선 묵직함을 잃지 않으려는 그 균형감각 또한 감동이라고 할까. 이래서 내가 빈티지를 좋아하지. 잘 구입한 올드 기타 하나로빈티지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빈티지에 대한 사랑이 식을 것 같진 않다. 내 빈티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아직 많은 날들이 남기도 했고 모아야할 돈도 많이 남기도 했다. 첫 시작을 올드 기타로 했지만 다음 빈티지를 어떤걸로 이어 나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뜬금없이 올드카에 사로잡힐지 빈티지 롤렉스에 사로잡힐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에 사로잡혀 빈티지 물건을 구입한다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간헐적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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